병상일지 3

07년8월18일토

막내대자의딸이명동성당에서혼인식을하고바로미국으로떠나는날이다.
아프지않았으면가서축복을해주었어야하는데
토요일이라아들이계속병실을지켜주고
삼천포에서올라온남편혼자
큰대자랑혼인식에갔다.

오전내내아들과그가자랐던어린시절이야기
가슴아팠던순간들,아름다웠던시간들의이야기를나누었다.

"엄마,남자는엄마가20년을키우고
그다음은한10년자기마음대로살고
그다음은아내가길들이는것같아요.
저도지금그렇게살고있고
아빠가자기만아는에고로변한것도
엄마가길들인긴세월때문이란말이지요
그러니다엄마책임이예요."

‘그래맞다.다내책임이다.그러니이제어쩌란말이냐.
병들고서럽고힘없고…’

"지금부터라도마음다잡고잘해봐요."

남편의답답함을아는아들이한심하고걱정되어계속엄마를위로하고있었다.

저녁에식장에서돌아온남편은삼천포에다녀온여독으로
꼼짝도않고깊은잠에빠진다.
대여섯개의주사약주머니가주렁주렁달린주사대를잡고
서너번을화장실을다녀와서그걸기록해야하는데
저렇게깊이잠들수가있는가신기할정도였다.
"난70노인이야…"
이번에도그는나보다여섯살이많음을강조하고있다.
잠이오지않아서아무도없는병동의복도를조심스럽게어슬렁거린다

07년8월19일일

일요일,병실도비고병동이많이비어조용한틈을타예림,예서
내사랑하는손녀딸들이다녀갔다.
에델바이스등,뮤지칼사운드오브뮤직에나오는노래들을얼마나멋지게부르며재롱을떠는지..
주렁주렁달린주사약들을보며"할머니얼른나으셔요"
인사하며안타까운눈으로병실을떠난다.

밤에외과이아란의사가내일오후에있을수술에관해설명한다.
매우의례적이고차갑게…
간단하면2시간이면끝나고,복잡하면어떻게될지모를상황으로무섭게된다고…
그림을그려가며열심히설명을하다가
"질문없나요?"윽박지르듯말한다
"무서워요."
"그렇지만너무걱정은마셔요.통상적으로맹장수술처럼간단하기도합니다"
내가불쌍하게보였는지조금부드러운어조로바뀐다.
남편은예쁜여자의사가왜외과를택했는지
그딴것을질문하며흐물거렸다.
도무지긴장감이없는것같다.
수술전야,24시간비워둔속인데도아니열흘넘게
비워진속인데도복잡하고
계속더부룩하다

07년8월20일

드디어수술날새벽이다.
정말로잠이오지않아이른새벽부터복도에나가앉았다.
수술이쉽게되라고빌어본다
그러나내가살기위한내기도보다는남의기도를하며
나도함께좋아지자는기특한생각을한다.
그리고는2803호실의주인공에게기도편지를쓰기로정한다.
사실그꽃때문에많은위로를받았기때문이다.
아침에도물을주면서시든꽃들을정리하며자연의섭리를깨달으려애썼었다.
나고죽고병들고고통스러운것은인생에있어서피할수없는것,생로병사의일은엄밀하게말하면창조주의소관이아니겠는가?
아직시간이많이남았으니기도편지한장쯤,충분히쓸시간이남았으리라.

박희완님께
빠른쾌유를비는기도를드립니다
저는지난월요일부터지금까지매일귀하의병실앞에놓인아름다운꽃의향연을즐기는2802호실환자입니다.
응급실에서병실로옮겨지는8월14일새벽
복도에즐비한화분들의향기로움에
‘어느후덕한분의삶의향기가이렇게짙게온병원을
휘감아돌수있는가?’
생각하며행복하고감사했습니다.
그리고그분의일생에대하여존경의마음도생겼답니다.
그날부터저의일과는아픈중에서도귀하의병실앞에놓인꽃바구니에물을주고시든꽃을빼어내는작업으로하루가시작되었지요
망연히복도에앉아꽃을바라보며,매일물을받아먹고다시소생하여아름다움과향기를더하는꽃처럼
귀하께서도빨리쾌차하시기를비는마음으로말입니다.
오늘저는수술실로들어갑니다.
만가지의걱정이교차합니다.
죽지나않을까?
깨어나는데얼마나시간이걸릴까?
수술비는과연얼마나나올까?
의사선생님들의말씀대로만에일이라도불행한일이있을지모르므로긴장되는순간입니다.
그러면꽃을향유했던감사의마음이랑제기원의마음을
전할기회를놓칠것같아이편지를서둘러씁니다.
제하잘것없는기도의마음이귀하의빠른쾌유에도움이되었으면하는마음으로말입니다.

저는이병원에근무하는흉부외과이두연박사와초등학교동창이며시설팀의천석성과지금은신촌에가있는총무팀의이원식과는천주교대자녀관계로이병원과인연하였습니다.

친절하고사려깊고실력있는이병원의많은의사선생님과간호사들의기술로귀하께서나오늘수술하는저도쉽게낫게되리라믿어봅니다.
입원기간내내열어두었던제병실로아직도귀하의방에서전해지는향기가마치삶의메시지처럼흘러나옵니다.
그리고제자신에게체면을겁니다.
‘오늘수술은잘될거야.’
귀하께서도그렇게느끼게되시길빕니다.
‘그래,여태의내삶은성공적이었어.
많은사람들의기도의힘으로분명빨리일어설거야.’
귀하의방주변에있는꽃들이그렇게말하고있군요.

하잘것없는제기도의편지가귀하의미음에조금의평화라도드렸으면합니다.
감사하고행복했었다는인사를다시드리고싶습니다.

2802호환자하태무드림

별것도아니지만,남을위한기도를하고나니내마음이밝아졌다.
내과의사선생님들이다녀가시면서걱정말라고…
겁을준건통과의례에지나지않는다고..
주치의선생님은수술실에서만나자는간단한말만하고
떠나셨다.

점심후에보자더니오전11시가되자수술실로오라고한다.
마음을진정시키려고복도에서걷고있는데수술실에서
데리러왔다.
간단한샤워를하고옷을갈아입고주렁주렁달린수액주사중하나만남겨두고다떼어낸다.
수술에필요한마취주사따위를새로걸모양이다.
복도에나와운동을하시던2803호실박희완님이수술잘받고오라고,그런데수술받을환자가침대에눕지않고걸어가냐고말한다.걸을수있으니까요.
애써침착하려애쓰며걸어가는게더안정적이라는생각을한다.
남편과함께들어간수술실앞에서담당자가
"보호자는대기실에있거나병실에서기다리셔요."
라고말한다.
속으로’두세시간이라는데아무리대기실에서기다려주겠지.’
생각한다.
윗도리를벗고수없이물었던혈압약복용의문제의치의문제등을또묻고한참을의사는보이지않고보조자들이준비를한다.
기다리는시간이너무힘이든다,
드디어수술실로실려간다.
코에다마스크를쒸우고마취제주사가들어가고,
너무고약한냄새가코로스며드는순간까무룩정신을놓았다.

얼마나시간이흘렀을까?
빼가뜯겨나가는고통이느껴진다.
금방숨이멈출것만같다.
외마디소리를지르고싶은데신음소리만난다.
흐르는고름과피를빨리닦아라,빨리가재를대어라
그리고급박하게속삭이는전문용어들이난무하고있다.
500cc를놓아라.혈압이너무높아.
"환자분,평소혈압약드셨지요?"
흐릿하게소리가들린다.
아니라고그리고너무아프다고소리를질렀다.
계속왼쪽팔에는혈압을재는기구가불룩치솟았다갈아앉았다하고있다.
1분마다체크를하며상태를보고있는모양이다.혈압이190….
500cc의진통제가들어갔는데도배는찢어지듯아프다.

한참진땀을흘리는데다시500cc의진통제가들어가고
한참있다가혈압이진정되는듯했다.
병실로올라가도좋다는명령이떨어진모양이다.
함께수술실에있던많은환자들이아무도없다.
맨마지막으로수술실을나온다.
얼핏시계를보니6시가다되어있다.

아저씨가침대에누운나를끌고밖으로나온다.
"하태무보호자분요,하태무보호자분안계셔요?"
큰소리로외친다.
아무도나타나지않는다.
아저씨가혀를끌끌차며
"보호자도아무도안기다려."
재수없다는듯이중얼거린다.
왜냐하면엘리베이터에들어갈때,누가도와주어야쉽기때문이다.
그아저씨의말이아니었다면그냥병실에서기다리나보다
생각했을것이다.
아저씨의중얼거림에너무나챙피하고내존재가처량하게느껴졌다.그리고눈물이흐른다.
내가그들에게이것밖에되지않았구나.

병실로오니아들과남편이
"고생했다"
며서서기다리고있다.
장장7시간.
그긴시간을밖에서가슴을조였을것이다.
2시간이라던사람이안나오니얼마나놀랐을까?
정작마취약으로죽어있던나는몰랐으니까.
간단하게복강경으로한두시간이면끝내리라고
쉽게수술에임했던의사들은너무당황했단다.
담낭이온통상해있고염증마저심해서제거하기가쉽지않았단다.
모든검사를다했는데왜그게나타나지않았을까?
배꼽주위한군데만구멍을뚫는것을너댓군데를더뚫고
돌이대여섯개나박혀있는상한담낭을뜯어내는데
피고름이너무많이흘러미처봉합도다못한채로수술을끝냈다고했다.
그래서한군데는심을박아둔채라고한다.
옆구리에서피가많이배어나오고있다.

저녁에회진을온의사가
"고생하셨어요.정말큰일날번했어요.
그렇게인내심이강해요?
그정도면평소에많이아팠을텐데…
이제그나마수술은잘되었으니환자분의노력에달렸어요.
내일부터많이걸어야해요."
큰소리로시원시원하게말하는의사는눈에실핏줄이터져있었다.
얼마나어려운수술이었는지를몸으로말해주고있었다.
견딜수가없이아픈데아들이병실을지켜준다고했다.
예심이랑혜영이가다녀갔다.
무슨말들을나누었는지기억이없다.

생각해보니오늘이미국작은아들생일이다.
그는내가아픈줄도모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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