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각을 하며…

***참나무님의나무전시회를읽고생각이나서오래전에썼던글한편을올립니다

중견서양화가인친구예심이가바닷가에다별장을마련했다.

별장과첩은가지는순간부터골치가아프다는데어떤경우에나확실하고순발력있는그친구가그사실을모르고별장을마련했을리는만무다.

서해안고속도로변에서서산인터체인지로빠져나가안면도못미쳐서소나무가울창하고바다가보이는아름다운곳이란다.
여름내내수리때문에골치를썩이더니드디어입주를할수있었는지당호를해송우헌"海松友軒’"이라지었단다.유난히해송이많은동네라하여….

어느날,안부전화를하던중에추사선생의글씨체에매료된예심이가고졸하고우직한멋이넘쳐나는추사체에대하여찬사를쏟아내면서추사체로당호를서각해서조촐한현판을걸었으면했다.

한6-7년서각을하러공방을뛰어다닌끝에남은작품이라곤집뒷산에십자가의길을만들어드문드문놓고,오는사람들과함께기도를할수있어서각을배우기를잘했다고생각했지만,

더러소품들을만들어두면사람들이욕심을내어뺏아가곤했지만,남의것을해줄실력은되지못하는초보자다.

학교에근무하던사절목각을시작하여교사기능경진대회에서도내최우수를하고새마을기능경진대회에서입상하여청와대까지갔었던인연을합하면나의나무와의인연도30년을훨씬넘는다.

그러나서예를기본적으로알아야붓놀림에걸맞는조각을할수있고조각의기법을터득해야하는서각은일반목조각하고는다른고도의기술을요하는부분이다.

더구나나무의질감을알아야하고결에따라칼을대지않으면글자의획이떨어져나가므로여간조심하지않으면글씨가잘되지않는다.

칼과망치의힘이적당하게조화를이루어야제대로글씨가드러난다.
양각을하려면바탕의모든부분을들어내어야하기때문에힘은들지만기법은까다롭지않고,

가장기초인듯하지만음각은여간섬세히파지않으면기술의좋고나쁨이확연히드러난다.
그런기초적인지식도없는예심이가나무도막을구해주면직접서각을해서붙이겠다고기염을토한다.

나는속으로
‘겁도없이까불어.6-7년이나배워도잘안되는걸..’
했지만일단마음에드는추사체에서집자(集字)를하라고권했다.
같은크기,같은체에서’海松友軒’을찾아야하는데그작업이쉽지는않으리라.

그러나어렵사리조그만추사작품글씨에서집자를하고미진한부분은그려내어추사선생의고졸한냄새가묻어나는체를만들어동창회에가지고왔다.

나는처음으로예심이에게신세를갚을수있어속으로쾌재를불렀다.
꿈많던여고시절우리는서로다른길을택하며오랜세월동안우리의희망을나누었는데

나는이리도미미한아마츄어글쟁이로남았고예심이는한국여류화단의쟁쟁한중견화가가되어있다.
예심이는내가처음서울로올라와정말지독하게어려웠을때,

가르칠아이들을데려다주며일을할수있게도와주어오늘의나로일어서게만든고마운친구지만

한번도그신세를갚을수없었다.단한번도남의폐를끼치는일이라생각하면펄펄뛰며사양하는통에

오히려정이떨어질지경이다.

예심이의그림은희망의이미지가묻어나는초록이거나따스하고포근한색채를즐겨쓴다.

어떤신비한힘같은것을느낄수있는그녀그림을나는너무나좋아하지만아직도갖지는못했다.

고원김각한선생은서각계의대가로EBS방송에도시리즈로방송을맡아하기도한분인데

그분의기술보다도그분의인품에반해서오래동안스승으로모신다.

나보다젊었지만겸손하고욕심없는그분의고매한품격은작품에서도드러난다.
마침내가찾은시각에영주의어느사찰에걸주련작품을서각하고계셨다.

예심이가준글씨를적당한크기로확대복사를하고그맛이제대로살아나게손을본후,

적당한크기의나무를찾아야했다.이사를가실거라고정리를해서꽁꽁묶어둔나무더미속에서

소장하신지10년도더넘긴참죽나무조각을찾아내셨다.

선명한나이테가살아있었고글씨를붙이려고나무에물을뿌리니바알갛게빛이살아났다.
더러작은작품을만들때도내놓지않던귀한나무였다.

‘낙송재樂松齋’인우리집당호를서각할땐,그야말로제재소에서폐목으로버린

구멍숭숭뚫린얇은향나무도막에장난끼어린술취한글씨로삐뚤삐뚤파내었건만

이숱한세월에무수한역사와시련을견뎌낸이름다운참죽나무작은도막앞에

나의하잘것없는솜씨가안타까울지경이었다.

"복있는사람은역시달라…"
나는예심이의다복함에까지시샘을내면서도겸허한마음으로칼을붙들었다.

예스런맛이듬뿍들게멋있는현판을만들어주리라.
"똑딱똑딱"
칼과망치의적당한어울림에서나오는장단이작은공간을울리고있다.

내가슴에도우정의작은강물이소용돌이치고참죽나무나이테에서바다바람이묻어나고있다.해송의은은한향기도피어오르고있었다.


나는어느새예심이의별장해송우헌"海松友軒"에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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