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르가데안내용간판>
파사르가데
세계첫통일제국아케메네스조페르시아의첫왕도였던곳이다.
"페르시아인의본영"이란뜻을가진이곳은BC539년에키로스왕이
메디아군을격파시킨후왕궁을세웠다.
페르시아의왕의길은이곳을중심에두고
북으로하마단,페르세폴리스,수사로이어진다.
거기에서서쪽으로이라크,시리아,아나톨리아를이어가는길인데
총2천6백98km에달하는‘왕의길’을건설했다.
<왕의길>
중간중간에가장빠른말을바꿔탈수있는역참(캬라반사라이)이
1백11장소가있었는데
아무리먼지역이라도긴급한서류가1주일안에
도달할수있었다고한다.
제국의안에서일어나는반란에즉각적으로대처할수있는
이런제도는페르시아를사상최고의제국으로만든다.
파사르가데로가기위해우리도이길의일부를걸어가게된다.
<키루스대왕의모습부조>
유네스코문화유산인파사르가데란도시로들어가는정문에왔다.
키루스의모습을새긴3m짜리석주가남아있다.
이기둥은땅에넘어져있었기때문에마모가되지않아
비교적원형을알아보기가쉽다.
바빌로니아의신발,엘람왕국의옷,
독수리날개의문양은앗시리아의것으로
태양신을상징하고,왕관은상이집트의것을쓰고있다.
이러한모습은아케메네스의힘이얼마나막강했었나를말해준다.
그들을다복속시켰던까닭이다.
<그리스신화박사,언어학자유재원교수님>
이곳을수도로정했을때는메도스강이유유히흐르고
푸른숲이울창했었다고한다.
그러나황량한벌판에버려진듯한석주의끝에쓰인쐐기문자에
"나는키루스,아케메네스의왕"이라고쓴
고대페르시아문자,바빌론문자,엘람문자등
세종류의문자가적혀있다.
정말로허무했다.
아무리고고학적인답사를한다고는하지만이런허무한돌덩이를보고
무언가를느끼기엔너무나한심했다.
아무리그시절을상상해보지만그상상의나래를펼칠수없는
실체앞에서무엇을상상한단말인가?
석주들위엔나무로덮었던지붕이있었다하는데
BC331년알랙산더대왕이이도시를완전히파괴한후
2500년동안거의방치상태에있었다한다.
<왕궁터>
허무한마음으로왕궁터로왔다.
정수일교수님은작년에와보았던것보다많이손을보았다고한다.
우리가보기에도장난처럼돌기둥만촘촘히박아두었다.
그사이공간으로어떤기능을한궁궐이있었단말인가?
고대페르시아어로정원을파이리다에자라고했다는데
이는울타리를뜻했고,그리스말로는파라데이소스,
라틴어로는파라디소스,영어로는파라다이스를뜻하는말이었다.
키루스왕은그의땅에다가세계각국의문화가융합된
조화로운파라다이스를만들고자했던모양이다.
그가새겨진돌기둥에그가복속시킨나라의것을
고루입고신고쓰고했던것처럼…
궁전뒤에는근동에서는볼수없는
직사각형의정원과수로를만들어
그정원안에각국으로부터조공받은
희귀한동식물을전시하기도했다한다.
<키루스왕의무덤>
그의무덤은황량한벌판에버려진듯놓여있는데
그나마기단과탑의모양이남아있는것은
솔로몬의어머니무덤이라고알려져있던탓에
7세기의이슬람군의파괴를면할수있었다고한다.
유네스코문화유산이라고한창무언가공사를하고있었다.
가까이가지못하게했지만모두줄을서서사진을찍고
너른벌판에서신명을못푼일행들중에연극인이있어서
춤이나한판신명나게춰보자고
"비내리는호남선,남행열차에…"
스텝을밟는데호르라기소리가요란하게울리고
알리가뛰어오며손사래를친다.
여기는거룩한묘지이니가무는금지이다라면서….
어디라고감히춤을추고노래를부를수있느냐는불호령이다.
너무나무색해진일행들은주춤주춤묘지의공터에서물러나와
버스에올랐다.
<불의신전터>
조르아스터교의식에쓰였던불의신전,
또는성소라고짐작이가는터는한창수리중이다.
한쪽벽만남은것을,낙쉐로트담에
거의원형으로남아있으므로그것을본보기로보수중이라고한다
결국역사는사람들이만들어가는것이다.
신화도전설도다사람들이만들어가는것이다.
사람들은자기가보고싶은것만보고,
듣고싶은것만들으며,
말하고싶은것만말한다.
몇덩이의돌을가지고온갖추측을하지만
정말로진실된것은무엇일까?
알수가없다.
왜냐하면그것을살았던사람은이미사라지고없으니까…
<멀리서본파사르가데>
화장실로가는길에전성기의대형지도가걸려있는데
정말로범위는거대한도시였던게짐작이간다.
부서진돌기둥을모아둔곳에는
우리나라아亞자문양이연속적으로새겨진돌기둥이뒹굴고있었다.
여기서도문명의이동현상을본순간이다.
<보수를위해모아둔돌기둥들>
얼마남지않은정해년을잘마무리하십시요.
새해에는더더욱풍성해지시기를빕니다
소리울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