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11: 탕게초간 강 가에는-비샤프르

탕케초간강가에는


비샤푸르에닿았다.샤프르대제의도시

강이흐르고마른갈대가서걱인다.

강물따라좁은통로를걸어가면왼쪽언덕높이암벽에

거대한부조넷이있다.

입구에서부터의부조물들은

*첫째것은돌위로물이흘러내려꺼멓게변해있지만

샤프르의군사와말들의흔적이그런대로희미하게보인다.

보수를위해얼기설기첼제파이프가묶여있다.

*둘째것은샤프란1세라한다.그의승리를기념하여

만든부조물이라는데

많은병사들을앞에두고말을탄왕의모습이위풍당당하다.

*셋째것은바흐람1세,낙쉐로드탐에서보았던

내용과유사하다.

아흐라마스다에게신권을부여받는장면이다.

그의말발굽아래에는악의세력,

또는적군을상징하는병사하나가옆으로누워있다.

*넷째것은바흐람2세에게존경의예를드리는

손모양을한병사들의모습-

그들은손가락은상대에게향하고손등을입에대는모습으로

상대에게존경을뜻을표한다-

그리고포로를끌고온병사와포로들의모습이보인다.
강을따라그넷의부조물을보고더자세히보고싶어

언덕위로오르던사람들에게

관리인과알리가절대올라가지못하게한다.

그들의문화재관리는그냥방치하는것같으면서도

대단히철저하다.

문화재에대한긍지가얼마나대단하며

애국심이얼마나강한지…

페르세폴리스에서도파사르가데에서도느낀바였다.

잔잔히보랏빛풀꽃이피고민들레와같은

작은풀들이땅에누워피어있다.

날씨가제법쌀쌀한데도그들은벌써

봄의전령사가되어먼저와서피었다.

멀리자그르스산맥의눈은그냥하얗게덮여있는데……..

탕케초간을사이에두고다시건너편언덕으로가니

좀더높은언덕으로올라간곳에

이곳이란에서는너무나통쾌한장면의부조물이또나온다.

낙쉐로드탐에도있었던발레리아누스황제의항복장면…

그리스도인의박해에심하게가담했던로마의왕인그는

260년6월샤프르1세에게항복하고

포로가되어샤프르1세의도시비샤프르에서죽음을맞는다.

부조에서는발레리아누스왕의아들,필립하비스를

뒤에다세워둔채,

샤푸르1세에게무릎을꿇었고,샤푸르1세는적군을

그의말발굽아래밟고있는데

나팔을입에문천사가샤푸르1세의머리위로날고있다.

사산조페르시아의도시비샤프르에서로마의왕이죽다

폐허처럼흩어진유적앞에왔다.

사산조페르시아의도시

인포메이션센터에서일본어로된지도와

영문의안내서를받았다.

입장권을파는유적지에는간단한안내서를만들어관광객에게

주도록되어있는게상례인데

그권리를대개는찾지못한다.

게다가단체로온경우에는한꺼번에많은양을

비치해놓지않을수도있다.

여러곳을다닌경험으로알려주었더니

다른이들도자료를얻었다고고맙다한다.

공부하는이들이대부분이라가는곳마다

책이며자료를모으느라고모두들분주했다.

도성입구에들어서니벽돌로쌓은성벽이

둥글둥글둘러서있다.

샤푸르1세가266년에창건한도시로판명이난것은

1936년프랑스고고학조사단에의해서였단다.

도성전체는바둑판모양의계획도시로성벽과도량을두르고

모자이크와아치문이특징인도시이다.

멀리범상치않게벋어있는산에는망루가있었고,

그주변에는적의침입이있을때,노약자와여인들을

피신시켰던공간의입구가보인다.

AD260년에포로로잡혀왔던로마의발레리아누스왕이

살다가죽었다고하는

궁전인지감옥소인지알수없는공간도있었고,

불의신전,물의신전은

조르아스터교를신봉한도시답게멋있게지어졌을터이다.

지표면에서열계단쯤내려가니자그르스산맥의

눈녹은물을끌어들여신전바닥에

가두어두었다는연못이말라있었다.

네곳으로수로가연결되었던구멍이보이고마침

정오가까이라햇빛이반넘어들어오고있었다.

정면벽에는바위틈사이로살아남은보랏빛야생화가

환영의꽃다발처럼환하게피어드리워져있었다.

사람들이다살다가떠나도그들은살아남아

오고가는나그네에게속삭이고있다

‘튼튼할때부지런히걸어다니셔요.

열심히사랑하며살아가셔요.

어느날엔흙으로돌아가보랏빛꽃을피울수있도록…’

그들의속삭임을들으며갑자기콧나루가시큰해진다.

메인홀이라는곳은페르세폴리스처럼

신년하례식이이루어졌었다.

이공간엔네개의문이있었고지붕은나무가아니라

아치로된돔이덮여있었다한다.

전쟁에이겨7만여명의포로가잡혀올정도의강력한힘으로

주변국을장악하고발레리아누스를항복시켜볼모로이곳에서

생을마감시킨이도시는

아케메네스조로부터내려온건축양식으로모든벽돌과

회칠을한장식품으로덮여있었고

바닥은검은색대리석으로깔려있었다.

기묘한바위산이비샤푸르를휘감고있는데적국의왕

발레리아누스도잠들고

샤푸르1세도떠난자리에사람들은살고떠나고,

살고떠나고그렇게천년이지나면서사원은기독교회가되었다가

모스크가되었다가

AL-BOUYEH라는천년되었다는모스크엔

넓은뜰안에둥근항아리모양의돌덩이몇개만

고즈넉이앉았다.

허물어진왕궁의돌을빼어다가후대사람들은또다시건물을

지어살았건만

천년전건물이나2천년전건물이나폐허로남은건

마찬가지이다.

교수를대동한몇몇외국인답사팀들이이형편없이허물어진

폐허의도시를천천히걷고있는,

살았던사람들이다떠나고없는자리에관리들의

호르라기소리만요란하다.

“담장위로걷지마시요.”

화려한삶의흔적인모자이크를볼수있다는박물관은

문을닫았는데

사진가남편은이쓸쓸한유적지에무엇이미련이남았는지

사람들을기다리게하며아직도사진을찍고있었다.

작은도시식당엔오른손으로밥을뭉쳐넌에다

싸서잘도먹는다.

수북하게밥을한쟁반넘치도록담았는데그것을다먹고있다.

오후엔오랜시간버스를타고아바즈로이동할것이다.
간간히들려주는정교수님과유교수님의백만불짜리

노상강의조차도

어쩌면자장가일지도모르는데.

자그르스산맥은유장하게도벋어서계속흐른다.

황량한산들은소나무한그루품고있지못하다.

마룸강을지나자어둑어둑해가저물고더러불을뿜어대는

굴뚝들이나타난다.

유전지대에들어선것이다.

저녁놀을보고가자고차를멈추었다.

자그르스산맥의저녁놀

하루를다태우고

마지막남은목숨

억겁시간너머

사위어간시린사연

오늘은

무엇이부끄러워서쪽하늘붉히는가

마른풀로목숨지는

반사막의유전지대

전쟁이앗아갔던

수많은영혼위에

피처럼

붉은저녁놀,초혼가를부르누나

<소리울의묵상시조>

사산조와비샤프르

정복시기인208~224년에아르다시르1세가세워637~651년아랍인들에의해멸망한고대이란왕조.

이왕조명은아르다시르1세의선조인사산의이름을따서지었다.

사산인들은아르다시르1세(224~241재위)의지휘아래파르티아인들을멸하고제국을세웠는데,

서쪽으로는로마와비잔틴에대응하고동쪽으로는쿠샨왕조와에프탈족에대응하여

그영토가끊임없이변화했다.샤푸르1세(241~272재위)때

왕국은북쪽으로는소그디아나와이베리아(게오르기아)로부터

남쪽은아랍의마준지역에이르기까지영토를확장했다.

또이당시동쪽의영토는인더스강에,서쪽은티그리스강상류와

유프라테스강계곡에까지이르렀다.

사산왕조의통치하에서이란의민족주의가부활했다.

조로아스터교가국교로인정되었으며다른종교의지지자들은

여러차례에걸쳐공공연히박해를받아야했다.

정치는중앙집권적이어서지방관리들은왕에대해직접적인책임을졌으며

도로와도시건설,그리고농업까지도정부의직접적인재정지원을받았다.

또한사산왕조하에서이란예술은다양한분야에서르네상스를경험했다.

사산의예술품들중가장특징적이고뛰어난유물은아마샤푸르(비샤푸르)와

낙쉐로스탐,낙쉐라자브에있는험준한석회암절벽에새긴조각일것이다.

금속세공과보석세공기술도대단히세련된수준이었다.

국가차원에서학문을장려하여동양과서양에서가져온책들이

사산조의언어인팔라비어로번역되었다.<백과사전에서>

아직도꿈을꾸는

소리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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