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실남참서글픈유년의기억들을많이도갖고있다.
그런데이런기억들에대하여행복해하다니나도모를일이다.
나의아버지는평생야인으로사시던고고한유학자셨다.
그리고아픈사람을신비롭게치료해주시던능력있는한의사셨다.
나는여태아버지만큼유능한한의사를만나본적이없다.
미치광이나앉은뱅이도아버지의길다란은침한대면
거뜬히낫게하시는걸무수히보아온나는
아버지가화타편작보다도더훌륭해보였다.
그러나아버지의의료행위는직업이아니었다.
돈을주면받고안주면그저도약을지어주셨다.
아버지에게고객관리장부라든가약값을따로받아야할사람의
이름이적힌쪽지하나도가지신게없었다.
그저사람의선한마음을믿는성선설의원리에따라
사시길원하셨기때문이었다.
이웃에ㅈ병원원장님이황달에걸렸을때도
유명한양의들을다두고아무도안오는새벽에
아버지에게약을지으러오셨던생각이난다.
그분은병이다낫자어머니에게고운비단한복감을선물로주셨다.
그러나대개는예나지금이나아픔을참다참다약을먹어야겠다고
찾아오는사람들은그리유복한사람들이아니었으므로
아버지의의료행위는지금의의사들처럼선망의대상이되지못했다.
외상으로가져간약값은거의받지못했다.
어려워서그렇지형편나으면줄거라고…
그러다까맣게잊고있는데,더러갖다주는사람도있긴했다.
신비하게병을낫게하는은침은늘공짜로놓아주셨고
우리의살림은늘가난에찌들어있었으므로
나는아버지가공무원이나회사원,은행원인친구들을너무나부러워했다.
친구중에아버지가세무서장으로부임하게되어전학온아이가있었다.
그집에놀러가면달콤하고부드러워입에살살녹는카스테라가
얼마든지있었다.
나는그런양과자를쌓아놓고먹을수있는능력있는아버지를가진
그친구가정말부러웠다.
혹시아버지의직업을묻는통계조사같은걸하는날엔
나는아무항목에도손을들지않았다.
공업,농업,회사원,공무원…..그아무것도아니었고
의사는돈벌이가아니었으니당연히손을들수가없었다.
나때문에선생님은숫자가모자란다고
아이들의손을계속들게했던기억이새롭다.
의료행위를하실땐,거룩하게까지보이시던아버지께서
훈장모자를쓰시고하얀도포자락을펄럭이며
허위허위우리학교교문안으로들어서시는날에는
나의가슴은포수에게쫓기는새가슴이되었다.
멀리아버지의도포자락이하얗게펄럭이면아이들이먼저알고
"태무야,너거할아부지오신다."
하고공부를하다말고나에게속삭인다.
그순간의막막한나의느낌을어떻게표현할수있을까?
학교에오시는날에는반드시수업참관을하신다.
선생님은잔뜩얼어가지고버벅거리며수업을하는게어린내눈에도보였다.
그날집에돌아가면선생님께서사용하신용어의재해석,
학교의규칙이나잘못된제도까지그모든것은
아버지의신랄한비평대상이된다.
학교에서사친회안내서를배부하는날에는이런이유때문에
선생님들이오빠와나에게는안내서를주지않았다.
그어떤선생님도고루한유학자의이상주의에빠진교육철학에
귀를기울이지않으셨다.
한늙은이의망령으로나보지않으셨으면다행이었다.
나는초등학교다니던6년내내,
나보다쉰살이나더많은,할아버지같은아버지때문에
가슴을조이며살았다.
<이어지는글은‘하약국집막내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