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향에 대하여

여전히화개장터는북적거렸다.

여전히섬진강도그곳에서잔잔히흐르고있었다

쌍계사로오르는길

얼음장밑으로물이돌돌흐르고있었다.

봄은얼음속에숨어서오고있었다.

물은아무도시키지않는데

추우면얼고더우면녹고

낮은데를향하여흐른다.

그자연스런사실이,그아무렇지도않는현상이

새삼신기하다.

쌍계사는무슨뜻?

묻는이에게싱겁게대답한다

"두개의계곡이이곳에흐르겠지?"

관향정이들렀다.

간판도없이ㅇ는사람만찾는찻집.

그래도그집은비어있을때가거의없다.

"빈가슴으로세상은보자.

아름다움이강물처럼흐르네"

10년전이집에처음들렀을때

세상을다잃은듯한친구를위로하느라고

방명록에써준말이다

"언니,’세상을’이라해야맞지않아?"

"아니,다른것다빈가슴으로보지않아도

세상만은빈가슴으로보아라는뜻이지"

"세상말고다른것뭐있어?"

석연찮은기색으로그녀가말한다.

"글쎄.그럼다…"

주인이장롱에서침향한조각을꺼내어손으로부빈다.

특별히로마에서온손님을위해서다.

10년동안한번도내어놓지않았던침향..

아득한향내가조금씩배어나온다.

작은조각하나를태운다.

천년의향기가호르륵타는소리를내며

찻방가득메우고있다.

찻방벽의수묵화는어느새봄이가득하다

그림속에흐르는계곡에도향기는가득실렸다.

주인이또르르소리를내며따르는차에도

침향의향기가배여있다.

그침향의향기에취해

오랫동안잊고있었던나의스승

한국수필계의어른이신정목일선생님의

수필"침향"을업어왔다.

침향을모르시는분을위하여….

침향(沈香)

鄭木日

‘침향(沈香)’이란말을처음듣게된것은어느날의차회(茶會)였다.
뜻이통하는몇몇사람들이함께모여우리나라의전통차인녹차(綠茶)를들면서
대화를나누는모임이한달에한번씩있었다.
차인(茶人)ㅅ선생이주재하시는차회(茶會)에가보니실내엔전등대신몇군데촛불을켜놓았고
여러가지다기(茶器)들이진열돼있었다.

ㅅ선생은끓인차를찻잔에따르기전문갑속에서
창호지로싼나무토막한개를소중스러이꺼내놓으셨다.
그것은약간거무튀튀한빛깔속으로반지르르윤기를띠고있었다.
마치관솔가지처럼보이는이나무토막을ㅅ선생은양손으로감싸쥐고비비시며말씀해주셨다.
“이게침향(沈香)이라는거요.”
나를포함한차회회원들은그나무토막을코로가져가향기를맡아보았다.
향나무보다더깊은향기가마음속까지배여왔다.

“옛차인들이끓인차를손님에게권할때손에배인땀냄새를없애기위한방법으로,
이침향으로손을비벼향긋한향기를찻잔에적신다음,권해드리는것이라오.”
나는이날,ㅅ선생으로부터처음으로‘침향’에대한얘기를들었다.
침향은땅속에파묻힌나무가오랜세월동안썩지않고있다가,
홍수로인해땅위로솟구치게된나무라고한다.
향나무가1천년동안땅속에썩지않은채로파묻혀있다가땅위로솟아오른것이어서,
그나무엔1천년의심오한향기가배어난다는것이다.
나무가땅속에묻혀서1천년동안썩지않은것은,땅속이물기가많은곳이었거나,
나무가미이라가된상태일것이라고했다.
이침향은땅속에서오랜세월이지날수록향기를간직하게된다고한다.

침향을들고서1천년의향기를맡아보았다.
땅속에파묻힌1천년의향기가가슴속으로흘러들었다.
이침향이야말로,썩지않는나무의사리(舍利)이거나나무의영혼일것만같았다.
침향에1천년침묵의향내가묻어났다.방안의촛불들이잠시파르르감격에떠는듯했다.
차를들면서1천년의시-공(時-空)이내이마와맞닿는듯한느낌이었다.
1천년의그림자가찻잔에잠겨있었다.

지난1988년4월,경남창원시다호리고분에서삼한(三韓)시대의유물이출토된일이있는데,
그중에서도대형통나무목관(木棺)과붓이들어있었다.
2천년전의통나무목관이거의원형의모습으로나온것을보고감격과신비감에사로잡혔다.
낙동강유역의다호리고분에서나온통나무목관과붓은물에잠긴진흙속에
파묻혀있었기때문에썩지않고보존될수가있었다.
이로써나무가땅속에파묻혀2천년이상썩지않을수있다는것이증명된셈이다.

촛불아래서침향에젖은차를마셔보았다.1천년의말들을생각해보았다.
썩지않는나무의영혼과말들을생각해보았다.
참으로고요하고담백하기만한차의맛처럼1천년이지나가버린것일까.
손바닥만한나무토막,모르는사람이면눈길조차주지않을보잘배없는것이
1천년세월을향기로품고있다니,다시금손으로어루만져보곤하였다.

나는가끔침향을생각하며그향기를꿈꾼다.
과연무엇이1천년동안썩지않고향기로울수있을까.
세월이지날수록퇴색되지않고더욱향기로울수있단말인가.침향이야말로,영원의향기가아닐까.

땅속에파묻혀아무도모르게버려졌던나무토막이1천년의향기를전해주고있다니,
참으로신비한일이아닐수없다.
어떻게하면나의삶도한1백년의향기쯤간직할수있을까.
땅속에파묻힌듯침묵으로다스린인내와인격속이라야만향기가밸수있으리라.
어쩌면땅속에묻혀썩을것이다썩고난다음,썩을것이없을때,
비로소영혼에향기가나리라.

나는꿈속에서도가끔침향을맡으며삶속에그향기를흘려보내고싶어한다.
침향을보배이듯간직하고계신ㅅ선생님이부럽기만하다.
한달에한번씩열리는차회에은근히침향으로인해마음이당겨참석하곤한다.
창호지를벗기고침향을만지면,마음이황홀해진다.
내마음을촛불이알아펄럭거리고,어디선가달빛젖은대금산조소리가들려올듯싶다.
침향이스민차한잔을들면,1천년의세월도한순간일것만같다.
차향(茶香)에침향(沈香)을보태면,찰나와1천년이이마를맞대고있음을느끼게된다.

그리운이여,조용히차끓는소리.
촛불은바람도없이떠는데,침향으로손을비비고서마주보고한잔들어보세.
1천년침묵의향기,세월의향기가어떤가.
촛불아래차끓이는소리-.
침향으로손비비는소리.코끝에스미는차향과1천년침향의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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