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의 카페(소설)

작년만우절4월1일,
거짓말같이그이의부음을들었다.

그이가카페를열고
우리는자주그곳을들락거렸다.
우리래야그저신화공부를하던한패거리였다.
재미있는그리스신화이야기가꽃피던곳.
그곳에앉으면부드러운카프치노한잔만큼,
신화에담긴삶의지혜도향긋하게솔솔자라오르는곳이었다.

그이의카페는아무도없앨수가없었다.
그러나주인없는카페에아무도가지는않았다.
그카페는늘문은열려있었다.
아무나마음대로커피를타마실수도있었다.
다른맛있는것도취향대로먹을수도있는곳이었다.
잠겨있지않은카페.

그러나아무도그곳을가진않았다.
그이가숨진날에누군가가붙여둔,
"고인의명복을빕니다"
그리고생전의그이가활짝웃는모습,
그이가다녔던여행지에서찍은사진몇장만
벽에붙여있을뿐이었다.

그곳엘우연히들렀다.
먼지가자욱히싸여있었다.
쥐가다녔는지,쓰레기도뒤죽박죽엉켜있었다.
사람냄새는나지않았다.
그냥방치해서는안될것같았다.
대충먼지를훌훌털고
나라도그곳을이용해야지.
한번씩혼자앉아커피를마실공간이필요했다.

처음엔그이를생각했다.
그이와함께다녔던여행지를생각했다.
눈오는가파도키아에서그이는비틀거렸었다.
아무도없는호텔마당에
함께발자국을만들면어떻겠냐고했다.
그런그이와마당을하염없이걸었다.
한식경을걸으면서한마디말도없었다.
아마그이가울고있는듯했다.
그이에게무슨일이일어나고있는걸까?

여행에서그이는늘생일이라고말했다.
전엔그날이아니었다고사람들이말하면
그건양력이었다고,
그리고이번은음력이라고말했다.
그렇게그이는사람들에게먹이기를좋아했다.
한살많은그이의부인은늘우아하게,
그리고조용하게그림자처럼따르기만했다.
그이가이집트의백사막에서아몬신을분장하여
비틀거릴때도,
스페인의마요르카해변에서,
멋있는춤을출때도,
이탈리아운하에서산타루치아를불러재낄때도
부인은말없이웃기만했었다.
여행지마다함께다니던부인이
터키여행때부터오지않았다.
그리고그이의얼굴에수심이깔리기시작했다.

그리스여행에서였다.
혼자온그이가너무나쓸쓸해보였다.
그래도그이는또생일파티를열고싶어했다.
나는가져간가죽도막으로펜단트하나를만들고,
사람들에게축하메시지를한마디씩쓰라고하고,
축시를낭송했다.
붉은색의와인잔이자주흔들리며그이의입속으로
부어졌다.
그리고내앞에앉았다.
"아우야,나정말기가막히게슬프다."
그이는귀엣말로그가왜슬픈지를내게이야기했다.
가장친한친구도,그리고카페를들락거리는아무에게도
그사실을말하지않았다했다.
그이가왜많이슬프긴하지만,하나도비밀이아닐것같은,
다이야기해도아무렇지도않을것같은이야기를
비밀이라고말하는지,
왜그렇게중요한비밀을내게털어놓는건지
나는알수가없었다.

그이의아들이갑자기죽었다했다.
그리고얼마지않아서
그이가눈에넣어도아프지않을손자손녀를데리고
며느리는미국사람에게새로시집을갔다했다.
그이는그며느리를딸과같이생각해서
미국으로함께가시집을보내주고
사위처럼,아들처럼,며느리의새남편을
도닥거려주고왔다했다.
너무나잘된일이라고그이는말하면서
울고있었다.
그충격으로부인은아무에게도말을않고비틀거린다했다.
그게더힘들다고그이는말했다.

나는구슬달린작은스카프하나를사서
부인에게선물로들려보냈다.

여행지에서돌아온날부인의전화를받았다.
"아우님,그이가아우에게말했다면서?"
그리곤봇물쏟아지듯내어놓던그집안의잿빛어두움.
다시는여행을갈것같지않다고했다.
나는슬픔은나눌수록작아진다는데..
속으로생각했지만말하지는않았다.
묵묵히들어만주었다.
아무것도말해줄것이없었기때문이며
그들의슬픔이너무큰것같았기때문이다.

그런데그카페는부인도모르는곳이었다.

구석진곳에서그이는늘나에게많은것을이야기했다.
늘주로나는듣고만있었다.
그이가다루는대화의제목은주로,신화와문화와
통찰력있는세상을보는안목같은것이었다.
대기업의사장직을오래했던그는
뭐든지다아는사람같았다.
내가모르는이야기를할때면호기심많은나는
끝없이질문을퍼부었다.
그런내가그이는정말좋다고했다.
대화를할상대가되어주어고맙다고도했다.
집에서도그이는거의책상앞에만앉았고
부인과도말을잘하지않는다했다.
남편에게칭찬을별로들어본본일이없는나는
그이가정말좋았다.
아우야,아우야,그렇게불러주는그이의목소리도,
마냥베푸는그이의따뜻한마음씨도다좋았다.

그이는자식은마음대로되지않았던모양이다.
자주,남은아들이그이의화를돋구기도하는모양이었다.

그이의안색이날로창백해졌다.
드디어생전에바이칼로가서10년만젊어지리라던그이가
여행을포기했다.
여행경비를다내고서도의사가여행을못가게했다한다.

그이가중증의암을앓고있다는소식을나중에들었다.
다른일때문에카페에들리지못한시간이꽤흐른후
친지들에게그소식을들었다.
아무에게도말못할그죽은아들에대한비밀은
그이에게암이라는병으로남겨졌다.
게다가살아있는아들의마음대로되지않는삶이
더큰무게로닥친모양이었다.
결국그렇게그이는생을마감했다.
뜨거운열정을카페에남겨두고…

아직도그곳에는그이가남긴흔적들이고스란히있다.
아무도거들떠보지도않고그이의부인조차알지못하는
참으로허술한카페하나.
조용히들러커피한잔을마시고나오던
어느날.
우연히그카페이야기를누구에게흘렸다.
내겐비밀이없다.
말하고싶어서참질못하는멍충이.

혼자창고처럼쓰면서이것저것갖다놓기도하고
혼자이용하니걸릴것도없고참편했었는데…
하루는친하게지냈던소설가한명이나타났다.
드디어들켰구나.
아쉬웠다.
그러나그소설가가이용하는시간대와
내가이용하는시간대가맞질않으니어차피
내겐비어씨는카페나마찬가지이다.
들켰구나,내가말한순간
그소설가는일부러나를피하는것같았다.
절대로흔적을남기지않았다.
커피잔도깨끗이닦아놓고,
쓰레기통도비워놓고..

중요한것은그카페의탁자위에무언가를놓으면
자주주르르미끌어지면서물이엎질러지거나
컵이깨지거나한다는점이다.
처음엔나의실수였거니그랬었는데
그빈도수가자주있으면서…

나는사람의영혼을믿는편이다.
자기에게관심을좀가지라는메시지는아닐까?
자주카페에들락거리던사람들도오지않은
그이의쓸쓸한장례식장에서
생전에재벌회사의사장이었는지모를
쓸쓸한그이의장례식장에서
나는그이를보내는영결사를읽었다.
흐느끼는가족들의울음소리를들으며나또한
흐느꼈다.

1년이넘었다.그이가이세상을떠난지…
아무도없는카페에앉아
언제나처럼카푸치노한잔을마시면서,
진달래가핀이시절에그이의부인을불러
그이의묘소에나한번가자고해야할까보다.

그러면컵이안깨지고물이쏟아지는실수가줄어질까?
그이가그리운봄날,그이의카페에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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