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기/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열차 11

2008.2.15-16열차에서자작나무숲,눈,눈,눈

깊은밤에도기차는역에서쉬고
손님은타고내립니다.
간간이서는간이역에서창밖으로보이는집들은
동화속나라처럼눈에폭폭덮여있습니다.

"잠자는땅"
그렇습니다,겨울의시베리아는정말잠자는땅입니다.
마른가지만앙상한끝없는자작나무숲과,눈덮인광야와,
허술하게지은작은나무집들에정다운연기가피어오르고
두껍게눈이덮이거나길게고드름을달고있는
집들을보게됩니다.
고요속에서잠자는공주가살고있을것같은신비로움.

기차여행은휙휙순간적으로지나가는경치를보며
지나간시간을생각하는여행이기도합니다.
그리고앞으로닥칠일도계획해보고꿈도꾸는여행이기도합니다.
정말중요한것도,정말아름다운것도
눈깜짝할사이에놓쳐버리는일이얼마나많은지…
"저걸좀봐.저긴고드름…"
"저자작나무에걸린반달을좀보아.너무아름다워."

창밖을바라보며말했지만기차는휙지나가고
그걸본사람과못본사람의차이는정말엄청나지않겠습니까?

세상은눈을크게뜨고한순간도긴장을놓쳐서는
안된다는걸깨닫는여행이었습니다.
건강도중요하지.여행에서빼어놓지못할중요한것들.
아픈동안앙가라강변을걸어보지못했거든요.
참아쉬웠어요.
반야사우나도못했었고….
그곳에서띠또르디,띠또르디,이야기에배꼽을잡았다는데…

열차에서본영화"라버오브시베리아

긴열차여행에서는참지루하다고들입을모았습니다.
우리는지루할여가가없었습니다.
책을무지하게많이읽은제일어린해인이가
간간이옆에와서재롱을피우고,
그래도눈만마주치면두세시간그녀와의토론에응해야만되었던,
수다쟁이해인이가너무으젓한아가씨가되어서여행을함께합니다.

간혹수틀리면그때처럼당해보실래요?
하면서응석을부리기도합니다.

또창밖의눈경치를바라보며하염없는생각을피워올리고,
아는동요라는동요는다불러대고…
경치만보아도심심하진않았습니다.
심심하다는정보는엉터리였어요.
모르지요.사람에따라서는…

게다가영화를본다고누군가디브이디를갖고왔습니다.
시베리아가배경인영화라브오브시베리아였어요.
내가편도선때문에아프다고함께보기로한사라들이모두가버렸습니다.

그래서우리방식구들하고만봤어요.

한미국의예쁘고깜찍한로비스터와러시아의사관생도가
벌이는사랑이야기인데그사랑은시베리아열차에서시작되는겁니다.
나라도,신분도무시한
무조건적인사랑이빚어내는슬픈이야기였어요.

사람은결국보통사람이생각하고,보통사람들이
행동하는그영역을벗어나지못한다는것을,
뜨거운사랑이야기보다는그안에서배어나오는
인간적인보편성이더다가오는걸느끼면나이를먹어가면

영화도새롭게보이는구나를느낍니다.
사랑때문에오랜세월감옥생활을한러시아의장교가
러시와의황제를찬양하는노래를부르며유배를떠나는
장면은정말감동적이었습니다.
아름다운바깥경치때문에건듯건듯보았는데
나중에다시찬찬히보고싶은좋은영화였습니다.

영화도보고,노래도부르고,밤낮으로지나가는
자작나무숲을구경하고,성에낀열차와열차사이의
찬공기도씌우고,
때가되면라면이랑여러가지갖고온반찬들과
밥을나눠먹고,
그러다보니어느새길것같던32시간이다지나가버려
아침에노보시비르스크에닿았다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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