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 반도의 빛/똘레도 대성당에서 쫓겨남 7

셋째날마드리드-똘레도-마드리드

홍성현이란현지가이드,안면이있습니다.
6년전바르셀로나에서만난우리일행을찾지못해울었던
어린가이드는이제완숙한여인이되었습니다.

손님을갖고놀기도하는조금은느물느물한가이드가되어있었습니다
그때의기억으로부끄러워할까봐아는척하지않았습니다.

또한사진때문에남편이속썩일게분명한데

일부러신경쓰게할필요가없어가만있었습니다.

똘레도는마드리드남쪽70Km떨어진도시전체가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지정된

우리나라경주같은중세도시입니다.
1560년필리페2세가수도를마드리드로옮기기전까지

문화,종교,정치의중심지였고지금도스페인가톨릭대교구로
스페인종교의중심지의자리를지키고있습니다.

타호강에둘러싸인성벽의요새도시,중세의모습그대로남아있는,

화가엘그레꼬가사랑했던도시.

똘레도라는이름은B.C.2세기로마인들이

이도시를건설했을때의이름인또레툼(TOLETUM)에유래합니다.
5세기후반부터이베리아반도에침입한서고트족이
579년에똘레도를수도로정해711년이슬람지배이후
1085년에재탈환했습니다.

알퐁소6세의융화정책으로많은이슬람교도들이
가톨릭으로개종해도시의재건에종사했는데
이들이간직하던예술의무데하르양식은
그리스도교정신과이슬람문화의
멋진융합을상징하고있습니다.
똘레도에는8세기부터가톨릭회교유태인이공존,
중세에는군사적인평화적인접촉,때로는문화적인협력까지교대로일어나

문화의복합성을가장잘표현하고있는도시입니다.
12-13세기(1130-1248)가똘레도문화의절정으로,

그업적은세문화의지식인들사이의협조로번역학교가세워졌다는데있습니다.

이는활력넘치는지적인작업을의미하는데
12세기이후회교도학자들에의해아랍의저술이나
그리스의심오한철학과수학천문학등이
가톨릭인들에게전수되기시작한것입니다.
대부분은라틴어로번역되었고,많은유럽의학자들도참가하고있었습니다

카테드랄(Catedral)-주교좌대성당

스페인을대표하는가톨릭총본부인이성당은5개의문이있고

범선5척이들어갈만한크기입니다.

이성당속에작은성당22개가있고,정문쪽에는

예수님을업고강은건너는크리스토퍼성인의대형그림이있습니다.
성기실에는180Kg이나되는"알페의성체현시대"가있는데

컬럼버스가가져온금과은으로만들어졌고

1년에한번바깥으로행렬을한다고합니다.


컬럼버스가가져온금으로

이성당안에서사진을찍지못한다고했습니다.
후렛쉬를터뜨리지않으면훼손이없기에,

다른박물관에서는일정요금을내고후렛쉬를쓰지않고사진을찍게하는데,

이곳에선사진이아예허용되지않았습니다.
지난번의사진을쓰면되니안찍으면좋을것을,

남편은눈치없이몰래카메라를계속찍다가관리인에게걸려

성당밖으로쫓겨났습니다.

한두번도아니고의례히있는일이니나는그러려니했고,

어떻게하든찾아오리라는생각을했지만

가이드진주연이나홍성현은어쩔줄몰라했습니다.
유유히바깥쪽을신나게찍고다른한국팀이들어올때,
따라들어와일행과함께나갈때까지가이드의애를태운

남편의프로근성을누가말리겠습니까?

눈치를주는일행들에겐달리약을쓰는방법이있으니까요.

와인몇병과지루한시간에여행묵상시를들려준다면

아마도금방무마될겁니다.

금방팬이되어돌아올겁니다.

이렇게천하부부란이름때문에해결사노릇을해야만합니다.

여행때마다겪어야하는아내의십자가….

함께한좋은인생의동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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