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닥의 곰파들, 여정을 끝내며
BY cheonhabubu ON 7. 16, 2008
헤미스곰파
헤미스곰파는17세기남걀왕조시대에세워진사원으로레에서45km떨어진지역에위치하고있다.
4000고지의높은곳에위치하여머리가조금씩아프다.
입구에서쥴레!하며인사하는사람들을만난다.
쥴레!함께답을한다.
나마스떼,델리에서의인사는라다크에선통하지않는다.
헤미스곰파는환생한스님을가리키는린포체(Rinpoche)가대대로주지를세습하는사원이기도하다.
이곳은예수가부활을한뒤머물렀다는기록이전해내려와,더욱유명해진사원이다.
아무도보여주지않는다는사원도문을열어보여주던스님,
뒷산의기운이범상치가않다.
파드마삼바바가태어난원숭이해에는대규모의축제가열린다
(2004년에열렸고,다음원숭이해는2016년이다)
틱세곰파
레에서남쪽으로19km떨어져있다.
처음곰파가만들어진것은15세기이며이후군사요새로활용되기도하였지만
발전을거듭하여지금의규모를갖추게되었다.
하얀색마을이옹기종기모여있는높은언덕위에흰색의쵸르텐(불탑)과
붉은색건물은먼곳에서도쉽게눈에띄어보이며신비감과아름다움을가지고있다.
테라스에서바라보는히말라야산맥과인더스강의오아시스농경지풍경이일품이다.
햇살과함께펼쳐지는히말라야의웅대한파노라마…
때마침곰파옥상에서거대한티베트나팔소리가부웅부웅부우웅하고난다.
사람들은사진을찍느라고한창이다.
두분의라마승이볼을불룩하게해가지고부는나팔은사실은그들의기도행위이다.
조금있으니이번에는짧은나팔을가지고여기저기다니면서팡팡파앙하는소리를내며
라마승두분이또기도를한다.
하필이시각에와서진기한풍경을보다니,운이좋은편이다.
옥상에서내려오니맞은편계단을오르는곳에미륵(maitreyatemple)사찰이있다.
내부에는15m높이의거대한금색미륵불상.
그분의몸뚱이는너무나화려하다.
머리에는화려한왕관으로장식되어있으며얼마나인자로운미소를띠고있는가?
본전사원에모셔진이신상들도눈을가려놓고있는데
눈에서나오는영적에너지가발산되지못하도록하기위한것이란다.
1년에한번티베트가면축제때만풀어놓는다고한다.
틱세곰파는매년음력12월18일과19일이면아주흥미있는가면축제가열린다한다.
마쵸곰파
황량해보이기도한길을꼬불꼬불깊은골짜기로들어간다.
맑고무더운날.앞서가던차가길을잘못들어서다시돌아나오는데
골목에서송아지한마리가어찌할바를모르고이리저리차앞에서헤매고있다.
아슬아슬피해서겨우옆으로나서는모습이애처롭기만하다.
미쵸곰파는그렇게깊은산속으로들어가야찾는,라다크지방에서유일한사카파의곰파.
규모가작아평상시에는사람들이잘찾지않는다고하나
이곳에가서는스님들이공부하는광경을볼수있었다.
틱세곰파에서본악기들을가지고공부를하는중이었다.
스님들의연주는바로기도행위그자체이다.
여러가지악기를가지고공부하고연습하고기도하는모습을,
누구나들어가도되게오픈되어있어서관광객들이들어가같이앉아있을수있었다.
늘이렇게운좋게도,좋은기회를얻는다.
세이왕궁,곰파
북부잠무카슈미르주라다크지역에있는라마교사원이다.
원래는라다크왕조의여름궁전으로만든것이지만,후에사원으로바뀌었다.
라다크중심도시레(Leh)에서약15킬로미터떨어져있다.
1645년에건설되었지만19세기에카슈미르와의전쟁으로많은부분이파괴되어
현재는거의버려져있는것처럼허술하다.
라다크지방의곰파들이대부분그렇듯이셰이곰파도바위산위에우뚝솟아있다.
셰이곰파가유명해진것은라다크지방에서가장큰구리불상과거대한마애불때문이다.
구리불상은높이가12미터에이르는데,금속제불상으로는라다크지역에서가장큰규모다.
1970년틱세곰파(TikseGompa)에흙으로만든15미터높이의불상이들어서기전까지는
재질을불문하고이지역에서가장큰불상이었다.
구리로만들어금도금을했는데도금에쓰이는금만해도5킬로그램이넘게들어갔다한다.
1655년에네팔에서온조각가가세명의라다크장인들의도움을받으면서만든것이란다.
곡식,보석,신성한주문등이불상안에봉안되어있다.
조금늦은시각이라일행들도다나갔는데,지키던라마승은남편에게구리불상의사진도찍게하고,
함께포즈를취해주기도했다.
가는길목에있는거대한마애불은까딱하면놓칠번했다.
남편은가다가차를돌려이마에불을발견한다.역시프로는다르다고놀란다.
뒤에안사실인데이마애불이야말로셰이곰파가가지고있는역사가가장오랜미술품이란다.
다섯가지부처상이제각기다른모습으로조각되어있으며,
제작연대는8세기직후로추정되고있다.
중앙에있는가장큰부처는비로자나불이다.
이사진으로남편은세번째행운을잡은셈이다.
다라이라마를찍은것,고유가로인한데모장면과화해의장면,
그리고이세이곰파의마애불을찍은것이다.
아무도보지못한걸,일행중에아무도찍지못한걸찍은희열은대단한가보다.
레를떠나며
오가는나그네가
오래된미래를배워가는곳
그아련한풍광을가슴에담고
히말라야의산자락도마음에심고
그리움으로하늘을나는곳
다시오고픈그날을위하여
<소리울묵상시>
새벽일찍레공항에도착했지만약1시간이또연발이다.
모든승객들의작은손가방마저도다검색하는공항로비에앉아
펜하나를가지고나누어쓴다고기다리는공항직원에게내사인펜하나를선물했다.
그보답으로내가방은그냥통과.
휴-책이며필통이며복잡한그모두를끄집어내지않아도되는거였다.
거기서까닥하나를꺼내어그노란천에다
남갈체모언덕을그리고시를하나썼다.
이선배님과쥬스한잔을사마시고도한참만에비행기는델리로출발했다.
마하트마간디(1869~1948년)의묘소.
인도의민족운동지도자이며사상가.마하트마(위대한영혼)는
인도건국의아버지이다.
18세에영국에유학하여변호사가되었고,
아프리카에서인도인권리보장을위해투쟁하다가
1915년에인도에돌아와독립운동을전개하였다.
특히비폭력,무저항운동전개로평화의소중함을일깨워
주었으며,천민집단의지위향상을위해노력하였다.
독립후인도통합을위해노력하다암살당했던그의묘를찾은시각은오후.
두번째찾은그이묘소에서그가강조했던일곱가지사회악을생각한다.
‘일곱가지사회악’은본래간디가인도의지도자로서부상하면서
1925년<청년인도,YoungIndia>라는신문매체를통해강조했던그의신념이었다.
그런데이일곱가지경구가오늘날모든사회가다버리고고쳐야할
가장중요한사회악이라는걸느껴본다.
1.원칙없는정치(Politicswithoutprinci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