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우란호특 고구려성터 답사

2008년10월20일우란호특

우란호특의아침은상쾌했다.여느때처럼광장에서걸었다.

8시에아침을먹고고구려성터와거기서나왔다는유물들을찾아나서야하는날이다.

지금은정년퇴임을하신조선족학교에계시던현철호선생님을찾아야한다고했다.

강대표와채부장이학교에서물어보고현철호선생님집을찾아나선뒤

우리는조선족학교안으로들어갔다.

마침아침조회가이루어지고있었다.

애국가가아닌중국국가가울려퍼지고태극기가아닌

중공기가하늘로서서히올라가고있었다.

학교운동장가로둘러쳐진담벼락에커다랗게한글로

“시대적특색이있는배움터를꾸며민족후대양성사업에최선을다하자”

란표어를붙여놓았다.

"바른말을쓰자"이번주에지킬일.초등학생들의회의처럼..

중공기가다오르자한국말조회사가시작되었다.

너무나반가워서귀기울여들었다.3학년학생이라했다.

“우리는젊은이들입니다.꿈을가지고조국의미래를위해앞장서가야합니다.”

얼마나반가운말이었는지..이들이외국땅에서도조국한국을위해꿈을가진단말이지.

그러나그다음이어지는말은..

여기쓸수가없다.너무나슬픈,적어도내게는충격적이었다.

눈물이금방쏟아지려고했다.

그들의조국은중국이었다.

그들은몽골자치주에살고있는그들의조국은한국도,북한도,몽골도아닌중화민국.

벽에붙어있는‘민족후대양성사업’이란중국민족의후대양성사업이었다.

한10여년전,연변대학에작은건물을짓는도움을주려고성천회원들이

모금한돈을들고성천류달영선생님과연변에들렸을때,

그때연변대학장이셨던정판용선생님의말씀이생각났다.

“우리는중국으로시집온딸입니다.그런데조국의부모가이혼을했습니다.

북한은아버지이고남한은어머니입니다.우리는누구편일것같습니까?

중국편이겠습니까?북한편이겠습니까?남한편이겠습니까?

그질문은’엄마가좋으냐아빠가좋으냐’를묻는것처럼

얼마나어리석은질문이겠습니까?

출가외인이란말있지않습니까?그래서우리는실은중국사람입니다.

그러나시집에서대우를받으려면친정이잘살아야합니다.

어머니와아버지가매일싸우는친정을둔우리는,그래서힘이없습니다.

다시합치든지,아니면어느한쪽이라도잘사셔야힘이날것아닙니까?

제발여러분,잘살아주십시오.“

그분의비유는너무나절묘했고,통일에대한갈망이절실하게묻어나는말이었다.

그때우리는고개를끄덕이며그분의말씀을깊이이해할수있었다.

그정판용선생님은정수일선생님의친구분으로작년인가돌아가셨다는데

아직도그때의그분의어조,표정,그리고그분이초청한한식집의

오가리에서보글보글끓으며밥상에올렸던개장국맛을잊을수가없다.

그이야기를최총무에게해주니정말감명깊다며교수님성함이무엇인지다시묻는다.

이학교가그녀에게도꽤인상깊었나보다.

“선생님,눈물나려해요.그렇지않으셔요?저조회광경…

한국말로하면서중공기가오르고조국중국의발전을위해젊음을바치자하는말들..”

대역사가이신강만길교수님께서는하나도아무렇지않다고말씀하시며

글로벌시대에사는우리는그런걸아무렇지않게생각해야할때라고말씀하신다.

미국에사는우리교포들도다른나라에사는교포들도,그들이몸붙이고사는곳이

조국일수밖에없지않냐고…그게당연하게받아들여져야하는세상이라고…

말씀은그렇게하시지만왜아무렇지않았겠는가?

속상하시고가슴아프셨을것이다.

표현만않으셨을뿐,.

그렇긴하다.정붙이고산지가벌써대를건너3대째라니그들에게조국에대한

미련이남아있기나할일인가?

학교길건너편은조선족개장국집이줄줄이늘어서있고학교교문바로옆문방구는

조선족이운영하는데,물건을파는젊은남자는한국말을못한다.

기념으로노트몇권을사고과일칼도하나사고,말을붙여보았다.

왜조선족학교앞에서한국말을못하냐니까알아는듣는다며부끄러워한다.

조금있다가그젊은이의아버지가오셨다.

그는이학교모든학생들도한국말다잘아는게아니라고,

선생님들도한국말을다아는건아니라고한다.

그래도조회는한국말로하니다행이었다.

우리는혹시라도고구려성터를아느냐고물어보았다.

있더래도다흩어져찾아볼수가없고그런것아무도모른다고했다.

그리고그런게다무슨소용이있느냐며자기아들도이미중국사람다되어한국말도모르고그리고도잘산다고했다.

그런데박씨라는노인한분이양복을잘차려입으시고학교앞에서계셨다.

그는고구려성터가있는곳을안다고했다.

그나마문방구할아버지보다는민족의식이남아있는분이라고여겨졌다.

역사가무슨소용있는겁니까?다힘있는사람들이쓴게역사인데요뭘“

그는우리가찾아다니는일이너무나부질없어보이는모양이었다.

그분의자녀들은한국서울에산다고했다.

이윽고현철호선생님이오시고현철호선생님도가본지너무오래되어잘찾을지

모르겠다며박씨를같이가시자고이끈다.다리가아파못가겠다더니

못이기는척따라나서셨다.사실은너무나함께하고싶으셨던거다.

그분은그곳지리를너무나잘알고계셨다.

하루종일들판을헤맸다.

옥수수밭에서이삭줍는몽골인.가로수그늘에비친햇살,

외갓집마당같은고즈넉한시골마당..

아무도없는조그만폐교..

그지역에고구려성터는그래도남아있었다.

“시중점문물보호단지”

거기표지석은그렇게씌여있었다.

밭을일구다가절구통,숟가락등삶의흔적을가늠할수있는물건들이나왔다고했는데동네사람들이가져다쓰기도하고중국박물관에서가져가기도했다한다.

그러나이곳은예부터고구려성이라고전해내려왔다고….

표지석뒤편을읽었다.

20m안접근금지,공사금지,위반하면형사처벌.

그렇게아무도훼손해서는안된다고씌어있지만너무나황량한들판에관의감독도허술한데밭이나일구지않겠는가?성벽안밭에는무언가키웠고거두어간흔적이있었다.

우리는그밭둑같은고구려성터위를걸어다니며옛일을상상했다.

고구려성에서왼쪽부터현지인박선생님,현철호선생님,정수일선생님

고구려는176개나되는성을가진‘성의나라’라고할수있다한다.

이성도분명히영역이두껍게된치성으로고구려성의모습을갖추고있었으며

최대한자연지형을이용하고성벽을쌓은방법또한과학적인형태를하고있었다.

다말라가는해바라기꽃대궁에서씨앗이하나둘흘러내리는늦가을의들녘…

우리를신경쓰는사람은아무도없었다.

빈집같은한적한시골집에그래도옥수수도쌓여있고닭도,돼지도,오리도

아름다운여인은꽃도뜰안에들여놓고가꾸고있는….

그러다가박,현두현지인을모시고한성식당이라는한정식집을갔다.

한국의도시이름이각방으로만들어진집이었다.

개고기를좋아하는사람은갈비를삶아뜯어먹을수있게해주었고

우리는된장찌개를먹었다.

오후에도다시들판을헤맸다.

들판은참으로아름다웠다.

패키지여행을와서이렇게한가하게걸어본다는것은있을수없는일이었다.

일정에쫓기고,보아야할것들을다못본다는강박관념에휩싸이고

그리고그곳에발도장을찍고찍고또찍으며다녀야했었다.

한글로쓰인표지판이있다.그들도우리의것이라고인정한것일까?

"고성둔"

그둔덕,그둔덕이바로고구려의것이었다.

멀리서보이는완만한언덕.자연지형을이용하여만든치성.

사진을마음껏찍지못했는데도그곳을떠나야만하는무수한아름다운곳들…

그런데그냥산책나온사람들처럼들판을거닐며성터의흔적을찾아나서는일.

그것도모두다알지못해서동네사람들에게물어물어다니는길.

거기서나온절구통하나가동네사람의집앞에놓여졌다.

그것을찍으려고한참을걷고,또성이있다는곳으로

버스도못올라가는길을내려서걷고….

아마도정수일선생님과함께가아니면쉽지않을시골길을즐기며

천천히나무가만드는묘한그림자의아름다움까지보아가며걸었다.

도대체흙덩이둔덕위에서옛일을상상한다는것이우습게느껴졌지만

우리는숭고한대고고학자가다된사람들처럼성의형태를살피고,

떨어져나간흙덩이의층을살피고,

굴러다니는부서진돌조각기왓장조각들을살피기시작했다.

나는드디어심을보았다.

"심봤다"를외쳤다.

검은기왓장그위에얹혀진고구려문양…

일행은흥분했다.선생님은그기왓장을손바닥에올려놓고사진을찍으셨고

모두따라서혹시나하고둔덕을헤매기시작했다.

부서진기왓장을있는대로헤집었으나문양이있는

기왓장은더이상은없었다.

나중에가이드채부장이보여달라고했다.

나는딴청을부렸다.그는중국사람이다.

강대표가못가져갈거라고말했다.

뒷면에하얀글씨로"아,고구려"몇마디썼다.

늘내가하는수법이다.나의작품이라고할참이다.

실컷사진을찍지못해늘불만이던남편은

이삭줍는여인들까지장난을해가며사진을찍어

기분이퍽좋은모양이었다

자연적인모습을즐겨찍는남편은얼마나행복해했는지…

참으로한적한대지의풍광이었다.

그리고그건우리의것이었던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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