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대구 안동 교구 5

2008.11.21대구교구

1.칠곡신나무골엘리사벳묘,신학교터:칠곡군지천면연화리57(053-7453850신동성당)

2008.11.21안동교구

2.신앙고백비:경북상주시청리면삼괴2리362(054-532-4507옥산성당)

3.진안리최양업신부님선종장소:문경시문경읍(054-572-0531문경성당)

4.여우목교우촌:문경시중평동(054-572-0531문경성당)

5.배모기교우촌:상주시이안면양범리(054-541-7967함창성당)

산골마을은겨우4시밖에되지않았는데도어둑어둑해졌다.

주막마저닫혀있는쓸쓸한교우촌여우목에서내려온길에서느낀느낌은참담했다.

도대체화가났다.무엇때문에저들이죽어야만했을까?

당시의정서가무엇이었거나사형은악법이며,오늘날의사형제도도없어져야한다.

‘성선설’을신봉했던조선사회가사람이가진본성의착한심정을미리꺾어버렸을까?

왜진보적인학문을하는서학에만은그성선설의철학을대입하지않았을까?

위정자들의간교한힘겨루기가낳은폐단도컸을것이다.아마도….

순교자들의피의댓가를받은우리가지금가진신앙의깊이는

어때야하는건지.그들은목숨까지버렸는데…

부족한마음에가슴이저렸다.

안동교구청에전화를건다.성지담담신부님이전화를받으신다.

"안동에교우촌이많은데찾기가힘드는군요.어떻게찾나요?"

교구가가난하여흔적은찾았지만땅을구입못한곳

그리고너무깊은산중이라일반인이찾아가기어려운곳,

안내자가가도잘못찾을곳이니,찾아가보신정도가거의다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기록에있으니적어두셨을것인데어려워도찾아보고싶습니다."

"네,한실은땅은구입했고…"

더이상추근대지않고한실이라는곳을찾기로했다.

가은성당에물어보라고하셔서그곳에물었다.

"낮에도어둑어둑한곳이고,너무깊은산중이라찾아가시기쉽지않습니다.

그리고땅만구입해놓고그곳엔아무것도없습니다.여기성당에나들리셔서이야기나나누시지요."

신부님께선아주곤란한음성이셨다.

늦은시간에다짜고짜로그곳엘간다고했으니…다음에들리겠다고말씀드리고

낮에들리지못한배모기엘가려고면사무소에물었다.

양범리에배모기라는동네는있지만그곳에천주교흔적은없다고,

비석이하나만있어도찾기가쉬울텐데…아쉽다는표정으로아주곤란하다면서말을흐리던

그무능한면사무소직원.

거기까지갔으니그냥가면안된다고우리가직접양범리마을을찾기를잘했다.

밭에서무언가를뽑고있는아주머니에게다가가서물어보았다.

"여기가배모기입니까?"

"그런데요?"

"그럼여기천주교믿었던사람들이옛날에살았다던데,그런흔적은없습니까?"

"아,네저건너편산에십자가…"

우리는동시에산을건너다보았다.

바로건너편산등성이에진안리,여우목,신앙고백비에서보던

같은형의십자가가우뚝서있는게아닌가?

도대체면사무소직원은눈을감고길을걷는단말인가?

관내에있는시설물의위치조차모르면무얼안단말인가?

호젓한산길을걸었다.

아직은아무것도되어있지는않았다.

그냥십자가하나와제대하나,제대뒤의돌몇덩이

그리고산으로난길이보였다.아마도그곳으로십자가의길을만들면되겠다.

고요히서서저건너편배모기마을을바라보면서저녁연기피어오르는

아늑한집들을본다.

11월은위령성월.

매일미사책을꺼내서위령성월기도를드리고

순교자를위한기도를드리고,

그래도기도가부족한것같다.

해가서산으로내려앉는시각,

마른잎들의바스락거리는소리를들으며

깊은묵상에잠길만한아주좋은시각이다.

매일지는해,그리고또새로운희망으로매일뜨는해,

신앙의조상들도맞이하고보냈을해가오늘도지고있다.

과연오늘나는생각과말과행위를온전하게했을까?

함께하는세사람과도서로따뜻한정을온전히나눈것같지않다.

정말로고마운,적어도오늘,나를바로있게해준사람들인데…

순간순간눈앞에보이는사람들을고마워하는일만도

큰축복의순간을맞는일일게다.그런깨달음이왔다.

고마워하리라.이순간을지금살아있음을..

돌아오는길에고속도로에서트럭과자동차가부딫치는대형사고가났다.

다친사람들을위헤얼른쾨유를비는기도를드렸다.

석달여순례길에도안전하게지켜주셨으니감사합니다.

부곡에서5천원짜리돼지고기가브리엘살을구워먹으며행복했다.

가브리살을우리는가브리엘살이라고부르기로했다.

적어도순례길에서만은…

상주군이안면양범리배미기는본래함창군상서면의지역으로,

지형이뱀의목처럼생겼으므로양배모기또는양범리라하였다.

1914년행정구역폐합에따라상주군이안면에편입되었다.

이곳에는1785년을사추조적발사건때문중박해로낙향한

서광수의가정에의해서처음으로복음의씨가떨어졌다.

그부근인사실과은재(저음리)작골,감바우등의옛신자촌이있다.

상주지방은1592년임진왜란전까지경상도감영이있었던곳으로유서깊은고을이며

소백산맥동편에위치하고낙동강이이지방의동남쪽으로흐르고넓은평야가펼쳐져있으며,

예로부터많은인재가배출된인물의고장이기도하다.

천주교가이지방에처음으로소개된것은아마1700년대실학운동이활발해지면서

남인학자들에의해서인듯하다.실제로1784년이승훈이북경에서세례를받고돌아와서

포교활동을함으로써한국천주교회가창립되었다.

그이듬해인1785년3월명례방김범우(토마스)집에서신앙집회가있을때일어난

을사추조적발사건에의해서문중박해로문중에서파적을당한서광수의가족들이

이지방의이안면배모기로은거해옴으로써천주교신앙의씨가뿌려졌다.

그후1791년신해박해후인1798년황사영이상주의이복운에게복음을전파하러왔다가

실패했다는기록으로보아그무렵부터복음전파의노력이이지방에활발했던것같다.

1801년신유박해가일어나자서광수의아들인서유도가정은문경한실로이사를가고그집안을통하여천주교를알게된것으로생각되는경주이씨이응동의선대가정도이곳에살면서신앙을전파하였다.김아가다막달레나가정은청송노래산으로피난을갔다.이박해(1801)때충청도사람인김만업이상주로귀양을왔다.그후이안의배모기뿐아니라부근의사실과저음리와멍애목,앵무당,삼막터,오두재,보문,서산화형터와그부근의마을인율리(밤밭)등여러곳에신자촌이형성되었다.1801년신유박해,1827년정해박해,1839년기해박해,1860년경신박해,1866년병인박해등역대박해때마다이지방에살던많은신자들이순교하였다.특히상주시내는목사(牧使)의아문이있었으므로문경,상주등지에서체포되어온신자들이관아에서영장에게문초를받다가사망을하거나감옥에서옥사를하거나형장에서참수를당하였다.[출처:안동교구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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