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언제나 시작page25:유년의 기억 속으로: 누에치기 2

누에고치속에들어있는번데기는죽은듯가만있지만사실은살아있다.

누에고치에서비단실을뽑아내는것은

속에들어있는번데기가,나방이가되어누에고치를뚫고나오기전에

뽑아야만한다.

구멍을뚫고번데기가나방이되어나오면뽑혀나오는실이동강이나버리기때문에

실에이음매가많으면고운비단을짤수가없다고했다.

섶에서따낸누에고치는자루에담아지금의농촌지도소같은곳에서

한꺼번에사들인다.

언제나가장좋은등급을받아비싼값을받는어머니의누에고치는색깔부터달랐다.

반질반질하고하얀게크기가쪽골라서꼭약국집마나님같이예쁘다고

칭찬을받았었다.(37-8킬로되는몸매로콩각시같던우리엄마)

그렇게일단좋은고치만골라서팔고나머지는집에서명주실을뽑기도했다.

큰솥에잘씻은누에고치를넣고푹푹삶으면서고치에서나온

한오라기의실을물레에감기시작한다.

물레를잣느라고어머니의발은피아노건반을누르듯규칙적으로눌러졌고

한손은실끝을잡고도는물레위에대고있으면

반짝반짝윤이나는명주실이타래로감기기시작한다.

누에고치솥에서는연방김이술술올라오고있었다.

실을다뽑아낸고치속에는연하고투명한엷은막속에

다익은번데기가들어있었다.

뜨거운번데기를건져내어막을벗겨내고,끓여서퉁퉁불은번데기만모아

후라이팬에다참기름을두르고소금을솔솔뿌려달달볶으면고소한냄새가

온집에배인다.

진한갈색이될때까지,번데기가아주작게쪼글어들때까지볶으면

번데기살이쫀득쫀득하고짭쪼롬한게그렇게고소할수가없었다.

지금도음식엔까탈스러워그많은여행지를다녀도

요령껏누룽지나김이나눈치안보이게

냄새안나는자기먹을건싸다녀야하는사람이

어떻게그구물구물기어다니던누에가번데기가된건맛있게먹었는지

지금생각해도신기하다.

지금은건강식품이다뭐다하고당뇨에좋다고누에가루도팔고,

번데기도거리에서큰그릇에담아놓고봉지에다담아서팔기도하고,

통조림으로도나오는모양이지만,

우리어머니가직접키우고씻고끓이고볶아내지않은번데기는

아예시도조차해보지않았지만,아마먹을수없을것같다.

대개누에고치한알에서명주실이2킬로미터정도나온다고한다.

이렇게하얗게타래로뽑아낸명주실을베틀에걸어어머니는명주를직접짜셨다.

찰칵찰칵,한밤중,베틀에실지나가는소리.

그슬프고도아름다운소리는우리어머니의사랑이고정성이며희생의노래이다.

진하디진한그리움의소리이다.

알에서까낸개미보다작은누에를키워,고치를만들어,비단이되어나오기까지

처음부터끝까지의이모든과정이별로넓지않은우리집에서다이루어졌다.

지금처럼모든산업이분업화되고,제품의대량생산이이루어져서

너무나편리해진세상하고는거리가먼,오랜이야기이다.

어머니께서손수짜신명주는주로아버지의외출복을지으셨다.

도포나두루마기등을지으실때는홍두깨에돌돌천을감아

밤새또드락또드락반질반질해질때까지다듬이질을하셨다.

더러명주천에연한쪽물을들이기도하셨고,

치자를풀어밝으스레하고아른아른양색나는물을들여

치마저고리를해입으시기도했다.

꽃분홍물을들여내큰아이의아기포대기를만들어주셨는데

아이가포대기귀퉁이를빨면꼭루즈를바른것처럼

바알간물이입술에묻어있기가일쑤였다.

해마다봄가을로누에를키우셨으니,쓰고남는명주는더러팔기도해서

그돈으로집안을일으켜세우는데제법보탬이많았을줄안다.

아버지가우리남매에게주시는월사금은늘끝돈은없었다.

그끝은늘친구집에서동생의가정교사를해서보태거나,어머니가몰래맡으셨다.

지금의내나이만한어느윤달이든해에,

어머니는동네아줌마들을불러팥죽을쑤어놓고수의를지으셨다.

당신이입고가실옷은당신이손수잔천으로손수만드셔야된다고하며…

가장고운명주를남겼다가아버지와어머니의수의를만드시는날,

아줌마들은,딸이솔기한쪽정도는접기라도해야한다면서

수의로재단된그부드럽고따스한느낌의명주천을내게건네는데

죽는날입는옷이라는소리에솔기는커녕,나는대성통곡을하고울어버렸다.

해마다거풍쏘인다면서상자에서꺼낸수의를펼쳤다가다시싸고,

나프탈린을갈아넣고정성을다쏟던어느날,

막상어머니가손수지으신하이얀명주수의를입고

평소만지시던묵주알을손에드신채,관속에누워계신모습을본순간,

눈물이하나도나지않았다.

어머니안계신이세상을상상조차할수가없었던거다.

그냥그렇게평소처럼누웠다가다시일어나실분처럼느껴졌을뿐이었다.

그렇게한동안무감각하다가병이날만큼심하게앓았다.

지금소리울엔어머니의빨간색자개장하나가유품으로남아있다.

그속엔어머니가손수짜서사위줄거라고홍두깨질해둔

명주한복한벌감.

바느질하려고솔기를따낸아버지의명주옷.

어머니가입으시던풍채바지와명주로만들어진치마저고리…

가위밥으로남겨진작은천조각까지그속에들어있다.

어머니의냄새를맡아보고싶을때,

깊은밤우주의소리가내귀에들려올때,

나는누에가뽕잎을뜯어먹는소리나어머니의베틀소리나

재봉틀돌리는소리를들어보기위해,그빨간장롱을연다.

어머니의명주옷은한조각도버리지않았다.

누에고치안에서번데기가살아있듯,명주올한올한올에

어머니의영혼이살아있는때문이다.

<끝>

사실은이글을옮겨쓰면서조금울었습니다.아니많이요.

며느리가자기가뭘잘못했나보다큰눈을열고보았습니다.

이렇게울기시작하면참으로그칠수가없는게탈이라힘이들군요.

이나이에..제가지금조금슬픈가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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