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과 선녀

백마탄기사가되어나에게

언덕위에하얀집을지어주겠다던남자는

이젠그만되었다는데도

아직도그언덕위의하안집꿈을버리지못하고

멀고먼알라바마에서보드지로집을지었다부수었다

반복하고있습니다.

천성이크게부지런하지못한저는

일에도리듬을타는편이라

하기싫을때때려죽인대도아무것도하기싫을때가있습니다.

그런제성향을제가더잘아는지라

무슨일이거나시작했을때,

죽기살기로끝을보기를좋아합니다.

아들이아틀란타로일을보러나간길에

배추,무우,한상자씩을사왔습니다.

우리가없을땐대충라면도먹고살다가

리나까지다섯식구입이만만치않습니다.

김치도담궈놓으면금방없어져버려

한꺼번에담아놓고먹자고했었지요.

한국에서가져간김치양념을버물러냉동시킨것을풀어놓고

자고났는데아들이찹쌀풀을한냄비나끓여놓았습니다.

깍두기,포기김치,나박김치,세가지의김치를담그고도

풀이남았습니다.

돌아다니는김으로부각을만들어말려놓고,

아,한꺼번에많이도일을했다.하룻만에….

김치를통마다담아빈냉장고하나를다채워넣고

한동안맛있는김치먹을생각으로기분좋은아들을봅니다.

그러다가며칠전에한상자마흔개를한꺼번에까두었던

자몽한그릇을떠먹으며부질없는옛생각을떠올립니다.

딸을절대로외지로내보낼수없다는아버지와실랑이를벌이다

제약방에서침묵의약썰기로1년을데모한끝에

겨우진주의교육대학을갈수있었습니다.

친한친구들은모두뜻하는학교를찾아서울로대구로떠났는데,

외곬수인아버지에게그티켓을딴것만으로도당시의제게는행운을얻은셈입니다.

그런저에게학보사는피난처였습니다.

한해후배들과는소통이잘안되었고

한달에한번나오는대학신문이

뭐그리대단한피난처였는지,그러나다른학생들이

강의실을전전할때기자는편집실을차고앉을수있었습니다.

지금도친한진주의숙이그때의동반자였습니다.

이웃학교신문기자들과도교류가있었어요.

그러다가한남자기자가저의나무꾼이되어준다고

저더러선녀가되라고했던사람이있었지요.

제가가는길을막고서서금반지하나를들고

받아달라면서너무나순진한자세로

진지하게말하는그남자에게저는웃고말았어요.

참철부지시절이었는데…

늘학훈단옷만입고다니던그남자…

그는지금다른이의나무꾼이되어성공한삶을살고있다고들었습니다.

제가그의선녀가된다고했다면

정말선녀처럼대우받고살고있을수있을까?

배추한박스,김치안담궈도,

자몽마흔개한꺼번에안까도편하게살수있었을까?

이렇게국제파출부를안하고

마음편한일생을가질수있었을까?

팔자는자기가만드는거란생각을가집니다.

제성격이제팔자를낳은것이지요.

그어느누구의탓도아닌겁니다.

그리고그이에게평생을나무꾼에대한부담을주면서

저는선녀의삶을살지도못했을것같습니다.

지난번에올린모형도에창문이없다니까

다시설계를바꾸고창문을달고

열심히백마탄기사가되려고애쓰는

칠순의머리허연기사에게

새삼연민의정을느낍니다.

정말언덕위에하얀집은사양하고싶은데

그게그의즐거움이라니어떡합니까?

복많은것도죄인가요?

나이렇게정말바보처럼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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