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면암 최익현)

10월16일부터18일까지교육받는틈새에정수일선생님과학회회원들과함께

실크로드짧은기행으로대마도를가게되었습니다.

그래서대마도에서굶어돌아가신최익현선생님에대해서공부하게되었습니다.

약속은드린거구오늘문학사랑에서남해로유배문학을둘러보러오는

문학인들과하루를보내기로약속되었기때문에얼른나가야해서

오늘아침은면암최익현선생에대한이야기를짧게하겠습니다.

그리고5공정권이서슬푸르게총칼을휘두를때다분히정치적인,시대적인의미를지니고지은오태환의<崔益鉉>을함께소개합니다.

이시는최익현의생애를정리한시라고할수있는데,발표시기가때가때인지라

나라의존망을걱정하는데그치지않고몸으로실천하다가대마도에서단식투쟁끝에죽은지사의절개를그려주면서5공의시대비판적인정신을함께담고있습니다.

느리면서굵고강건하면서당당한면암선생의삶이시의톤에잘나타나있음을봅니다

이시는1984년한국일보신촌문예당선작입니다..

최익현(崔益鉉,1833~1906,면암.勉庵)

조선말기의문신,학자,의병장.호는면암경기도포천에서태어나

1855년문과에급제하여장령이라는벼슬에올랐다.

흥선대원군의정책을비판하여여러차례귀양살이를하였고,

그뒤단발령(조선고종32년에상투를없애고머리를짧게깎도록한명령)에반대하여다시옥살이를하였다.

1898년경기도관찰사등의벼슬이내려졌으나거절하고후진교육에힘썼다.

1905년에을사조약이맺어지자이듬해에전라도에서의병을일으켜일본군과맞서싸우다가체포되어

쓰시마섬으로끌려간뒤,일본이주는음식은먹을수없다하여단식하다가세상을떠난다.

저서로는<면암집>이있으며,1962년에건국훈장대한민국장이주어졌다.

1906년의병을일으킨최익현은체포되어임병찬,유준근등과함께대마도로귀양을가게되었다.
최익현은단식으로일제에항거하면서물한모금마시지않았다.제자들이눈물로하소연했다.
"선생님,이렇게돌아가시면나라의앞날은어찌합니까?잡수시고기운을차려야저들과대항해서

싸울수있지않겠습니까?"
"
내늙은몸으로어찌원수의밥을먹고더살기를바라겠느냐?너희들이나살아돌아가서나라를구하라."
최익현은끝내일본의음식을거절하다가대마도에서한많은일생을마치고말았다.

그의시체가돌아올때수많은동포들이부산항에나가통곡하며맞았다.

崔益鉉

오태환

엎드려서울고있다

낮게내려앉은대마도의하늘

성긴눈발,춥게

뿌리고있다

바라보고,또바라보아도

서릿발같은바람소리만

어지럽게쌓이는

나라의산하(山河)

불끈쥔두주먹이붉은

얼굴을감춰서

설악(雪嶽)같은울음이가려지겠느냐

파도같은분노가

그만가려지겠느냐

어둡게쓰러지며울고있다

희디흰도포자락

맑게날리며

성긴눈발,뿌리고있다

눈감고부르는

사랑이무심한시대에

하염없이하염없이

2

바다가보이는곳

한채의유림(儒林)이춥게

눈발에젖어있다

희고작은물새하나가

끌고가는을사(乙巳)

이후의정적

너무크고맑구나

서럽게

서럽게황사마다사직(社稷)의

흰뼈를묻고

일어서는낫,곡괭이의

함성이들린다

불길타는순창(淳昌)의하늘

말발굽소리의

눈발,희미하게날린다.

문득돌아다보아

무심한이역(異域)의들판

거칠게대숲쓰러지는

얼굴이더이상

서책(書冊)도필묵(筆墨)도아닌데

자주찬바람이일고있다

몇닢,눈발을따라

3

얼마를더용서하고

이이상얼마나

많은눈물을뿌려야하랴

자꾸만하늘빛은

낮은곳으로모여들고

뇌성(雷聲)같은마음

다하지못한난세의꿈은

그냥한이되고

물살이되고만것을

왜저리눈발은화사한지

지척마다희게몰려서날으는지

깨끗한두눈알이남아서

적막에이르는

바닷길은너무나멀다

조금씩세상의저녁은

어두워지고

푸르고큰바다는저렇게잔잔한데

무정함도간절함도

없이저렇게조용한데

*1984<한국일보>신춘문예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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