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동단 해로 대마도를 찾아서…1

지난10월16일부터10월18일까지대마도를다녀왔습니다.

부산에서드림플라워라는배를타고가는2박3일의일정입니다.

2009년실크로드학교가을단기답사,

실크로드바닷길동단인이길을답사길로정했습니다.

대마도는일본에서세번째로큰섬인데우리나라거제도의2배크기입니다.

그런데부산대마도의거리는49.5Km이도대마도와본토와의거리는138Km이니

우리와더가까운곳입니다.

서쪽대마도에서맑은날이면부산이훤히보이고핸드폰이로밍없이도터진다고합니다.

대마도본섬은두개의섬으로나뉘어있는데만관교라는다리로연결되어있습니다.

본섬외에도107개의섬이있고유인도는5개정도가있는곳입니다.

인구는3만6천명이사는데이즈하라에만2만명이산답니다.

2009.10.16

새벽에부산으로8시30분까지닿아야하는데출근길에차가밀려택시를탔습니다.

서울에서오신분들은케이티엑스를타고오셨다는데두분은택시에다여권을두고내려

함께하질못하고25명의실크로드학교회원들이대마도를떠났습니다.

비가온다는예보가있었는데날씨는너무나화창하였습니다.

부산에서이즈하라까지는3시간이걸리고히타카스까지는2시간이채안걸린답니다.

이즈하라항에도착하니한글안내판이눈에들어옵니다.

일본사람보다한국사람을더많이볼수있는곳이라합니다.

八丁이라는식당에서점심을먹었습니다.

오벤또라는간단하게나오는점심인데그냥먹을만했습니다.

점심먹고미리돈을바꾸지못했기에물이라도한벙사마시려면돈을바꾸어야해서

은행에환전을하러갔습니다.얼마나느릿느릿,세순데나굽실거리며결제를하는

담당자의모습이참으로불쌍하게보였고,속이다타는듯했습니다.

우리나라좋은나라,절로그런생각이들었습니다.

30분도더걸려환전하고나오는골목엔보랏빛나팔꽃과삼천포에서만보이던

월애감이달린감나무가보였습니다.귀한월애감이…

한국인을환영한다는노래방을지나버스를타고385미터높이의카미자카전망대로올랐습니다.

리아스식해안의아소만이아름답게보이는전망대입니다.

좁은산길을따라구불구불,도중에서차를만나면큰차에게작은차가양보를해야한답니다.

조금만뒤로가거나앞으로가면스쳐지날공간이나옵니다.

빼곡히조림사업을하여스기나무히노끼나무들이짙푸른색을발하며우뚝우뚝서있습니다.

대마도에비릿한냄새가없이쾌적한느낌을주는것은

이나무들이발생하는냄새를제거해주는성분,피톤치드때문이라합니다.

탈취와항균작용을하는피톤치드가조림을한나무들에서나오는때문에

바닷가특유의냄새가없는것이라합니다.

어떤가이드는이나무의성분은음의성분을내기때문에

좋은것만은아니라는설명을하고있었지만그건아니라생각되었습니다.

부러운부분이계획적인조림으로임산자원을무궁무진하게쓸수있는점이었습니다.

우리가빠른시간에산림녹화를이루었지만계획적인조림에있어서는일본을넘진못한것같습니다.

해발365미터의카미자카전망대에서우리는대표적인리아스식해안의

아소만을바라보고그림처럼빼어난천연연못아소만너머높게낮게이어진산봉우리들이

숨막힐듯아름답습니다.맑은날에는북쪽바다너머부산이보이고,

남쪽으로는멀리규수의산들이보이며여름밤에는오징어잡이배들의불빛또한장관이라는

국경의섬,대마도의풍경이랍니다.

그곳에서정수일선생님의<왜대마도인가?>에대한첫번째길거리강의가시작되었습니다.

1.실크로드대탐사의일환으로실크로드해로의답사중짧은답사코스로택했다.

북으로는초원로남으로는해로인데아시로보면일본과우리나라가동쪽끝에들어가며

우리나라와일본까지의일주일의거리속에대마도가그다리역할을한곳이다.

2.우리역사의축소판인곳이대마도라생각한다.이곳고대의유물은우리것과꼭같다고

볼수있을것이다.그리고중세근세를통하여우리역사의비극의현장이이곳에남아

역사공부를할수있는곳이다.

3.한일관계의문제에대한숙제때문이다.

독도문제,역사적인문제,이런모든것우리시대나혹은가까운미래에우리가풀어야할숙제이다.우리는우리주장으로,일본은그들의주장으로,보는입장에따라대마도를입장도다르리라고본다.

이곳의국수주의자들은무조건독도가자기네땅이라고말하고있는데,그런입장으로본다면

<한단고기>라는역사책에의한다면대마도는조선의땅이라고했다.

지금이시점에서대마도가우리것이라고목소리를높일일도아니므로답사를마친후에

이점을다루었으면한다.

정수일선생님과필자

강의를들은후에우리는전망대를내려오면서대나무우거진숲들을바라보며

조선통신사비와종백작,덕혜옹주와의결혼기념비를보고가네이시정원을둘러보고

민속박물관엘들렀습니다.

조선통신사를접대했다는자리에도,민속박물관으로올라가는언덕에도조

선통신사를위한비가서있었습니다.고려문이란곳도우리의얼이보입니다.

조선통신사는1607년부터1811년까지약200여년동안에12번파견되었습니다.

조선통신사의규모는한번에약300명에서500명에이르는대규모의사절단이었고

이들이머무는곳에는일본의내로라하는학자들과예술가들이모여들어

그림과글씨를받고자했습니다.

이왕가종가결혼봉축기념비가있는공원에는비운의두부부가정략결혼으로고통받고

두나라와의극심한갈등으로딸정혜까지낳은후30년을살다가이혼하여귀국한후

1989년,아픈삶을살다가별세했답니다.

두분의힘들었던삶을되돌아보며양국민의진정한화해와

영원한평화를희망한다고비석을새겨두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지는시각의팔번궁신사는이즈하라지방의가장큰신사이며

일본의3대신사라고도합니다.

일본신사의전형을보여주는신사는어두운기운이조금은으스스하기도합니다.

비운의덕혜옹주와유사한삶을살았던소서마리아를위한신사이기도합니다.

정치판이얼마나더러운곳인지여기서도볼수있습니다.

고니시유키나와의사위인대마도소오요시토시는소서마리아와결혼하여살았지만

고니시유키나가가임진왜란에서지게되자도꾸가와이에야쓰에의해참수되었답니다.

그는권력을위해바로고니시유키나가의딸인소서마리아와이혼하고

도꾸가와이에야쓰의가신이됩니다.

권력을위하여그런행동을했지만

혹시나한을품은영혼이해꿎이를할까봐서소서마리아의영혼을위로하는신사를짓고

그녀의영혼을달래고있다합니다.

신사입구에는고려개(고마이누)라는암수두마리의상이마치해태상인것처럼서있습니다.

설명이없었더라면해태나사자로착각할정도,듣고보니삽살개나진돗개를닮은듯도합니다.

지나가는길목마다소원을비는쪽지가바람에팔랑거립니다.

처마끝에매달린하얀번개모양의종이는불을무서워하는이들이붙이는부적으로

번개를동반한불의위험에서벗어나고자하는마음,

평화와안녕을비는일종의부적이라하는데모든신사의처마끝에달아둔다고합니다.

면암최익현선생의비석이있는수선사가는길을물었습니다.

대마도의밤이내리고있었습니다.

<계속>

.<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