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동단 대마도 코모다하마 신사 2
BY cheonhabubu ON 10. 26, 2009
어두워지는밤거리를물어물어수선사를찾아갔습니다.
도심지가까이있지만골목깊숙한곳에있는면암최익현선생님의유적지입니다.
도심을가로질러수선사에도착했습니다.최근에세워진최익현선생순국비가
어느이름모를이국땅납골묘언저리에세워져있었습니다.
대원군의실정에맞서상소하며꼿꼿한기개를펼쳤던한선비도
세상의흐름을읽지못한그죄책감으로이국땅에서
아직도통곡하고있는것같습니다.
고국을생각하며신안에고국의흙을조금씩넣어
왜놈의흙은밟지않겠다는의지를보이셨던분,
더러운왜놈의밥을먹지않겠다고굶어돌아가셨다는전설까지있는애국지사입니다.
자유시간이주어질때낮에다시와보았더니지장보살에턱받이같은걸
둘러두었습니다.저승세계를관장하는지장보살에게
어린영혼을부탁하는상징이라합니다.
정수일선생님과독일에서공부해오신역사철학가양재혁선생님과함께
호젓이와서면암의정신을생각합니다.
이젠정말이시대에얼마남지않은분들의이야기를듣는일은
기회가있을때마다놓지면손해보는정말소중한일입니다.
현판에쓰인수선(修善)이란글씨는친일파거두의한사람김대식이썼다는데
그분의영혼이벌떡일어설것같은일을무슨심산으로
대쪽같은면암을위해글씨를썼을까하는야릇한마음이들었습니다.
면암최익현선생의마지막상소
죽음에임한신최익현은대마도경비대안에서삼가서쪽을향하여
머리를조아리고상소를올리옵니다.
설사저들이신을죽이려하지않는다하여도신은차마그들이주는것을
먹고입고배를더럽힐수가없사옵니다.
그러므로고인들이먹기를거부함으로써죽음을택하기로하였사옵니다.
신의나이74세,죽은들그무엇이애석하겠습니까?
바라건데,국사가어찌할수없게되었다하지마시고
군왕의덕을분발하시어믿어서는아니될일은믿지마시고
더욱자주의계획을굳혀영원히의뢰하는마음을끊으시고
세상의형평을살펴그가운데서할일을선택하오소서.
‘면암최익현이왜국땅대마도에서남긴유시(遺時)’
기첨북두배경루(起瞻北斗拜樓)일어나면북두를우러르고입금계신곳에절하면
백수만삼분제류(白首蠻衫憤悌流)흰머리오랑캐의옷자락에분한눈물쏟아져흐른다네
만사불탐진부귀(萬死不貪秦富貴)만번을죽는다해도부귀는탐하지않으리
일생장독로춘추(一生長讀魯春秋)평생을읽는글이노나라의춘추라네
대마도의첫날밤
각조별로서로인사를나누는시간입니다.
실크로드학,즉문명교류학에관심이많은분들,
그리고공부하는사람들의모임이라늘진지하기만합니다.
저의룸메이트는식물에많은관심을가지고꽃꽂이에도관심이많으신
양산에사시는아름다운분입니다.
늘정해온방법으로이번핵심단어를조이름으로하고가장어린사람이조장을합니다.
이번에는대표적인도시이즈하라와대마도에서출발하는히타카스,
그리고대마도의대표적인명물카스마끼(카스테라에팥앙금이든빵)
대마도의선술집이자카야가조이름입니다.
저는히타카스,조장은김도현초등2학년어린이입니다.
저녁을먹은후에일본이선술집이라는이자카야에서2차로
간단한회식을하기로합니다.
꼬지와커다란정종한병을시켰는데스무명이다나누어먹어도모자라지않았고
돈은10만원남짓나왔다고합니다.여행지에서의재미를누릴만은할만큼
너무사치한가격은아니라고들했습니다.
일본의상점간판이붉은색을띠었다거나글자가붉은색이면여자가있는집이라고합니다.
그리고그다음조금고급술집은스나크,그다음은크라브라고하는데
일본식발음이이지만실은스낵,클럽이라는영어를써두었습니다.
여행으로이런일본의술집풍습을아는재미도있었습니다.
2009년10월17일
아침일찍일어나아무도걷지않는길을걸었습니다.
좁고긴골목길이이어져있었고산으로난길도있었습니다.
대마호텔앞길과길가운데로흐르는물에는
수양버들이길게늘어져시내에제그림자를드리우고있었습니다.
꼭그길로조선통신사가지나갔을것같이시내를만든벽에다가는
조선통신사의그림을많이도그려두고있었습니다.
아직가게들은문을열지않았고길을걷는사람도아무도없습니다.
호텔에서주는간단한아침식사로요기를하고처음간곳은코모다하마신사입니다.
가는길은일본의가을들판이아름다운길이었습니다.
넓지는않아도논에는황금벼가일렁이고
멀리산위로구름이한가롭습니다.
코모다하마신사
일본의신사는도리이(鳥居)에서시작됩니다.
신사앞에한자’天’이라는글자모양의문을세웁니다.
신의사신이라고맏는새가쉬어가도록한다고해서도리이(鳥居)라부른답니다.
신사로들어서는데신의안테나라불리는대나무가양쪽에서있고
도리이아래의굵은동아줄에는하얀번개모양의종이가주렁주렁매달려있습니다.
하얀기둥에붉은글씨가쓰여져있고우리나라에아이를낳으면들어가지못하게하는
금줄같아보이는게예사로운공간이아니라는걸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