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유배문학 수상 소설-신선의 섬 꽃밭에 놀다 3
BY cheonhabubu ON 2. 11, 2010
오리짧은다리학의다리되옵기를…
자암은성종19년1488년에대흥현감(大興縣監)김계문(金季文)의아들로
충청도예산(禮山)에서태어나서울인수방(仁壽坊)에서살았다.
그는어릴적부터뛰어나게총명하여6살에이미‘석류(石榴)’란시를짓고8살에
‘오작교(烏鵲橋)란시를짓는다.
그는김굉필(金宏弼)의문인(門人)으로연산군9년,겨우열여섯나이로한성시(漢城試)에장원을하고,
중종2년,자암의스무살에는사마양시(司馬兩試)에장원을하면서
성균관생원을시작으로출세의접어든다.이때한시험관은그의답안지를보고
“한퇴지의작법이요왕희지의서체”라칭찬을아끼지않았다한다.
그리고그는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에서시작하여전경(典經)·사경(司經)을거쳐
중종10년2월에부수찬(副修撰)에오르고사가독서(賜暇讀書)를하게된다.
사가독서란세종임금시대에만들어진제도인데조선시대에인재를양성하기위하여
젊은문신들에게휴가를주어학문에전념하게한제도를말한다.
세조2년집현전혁파때에없어졌다가성종7년‘독서당’이란편액과함께
용산의빈사찰을사가독서의장소로제공했다.
연산군시대에없어진것을중종이두모포,지금의옥수동에‘동호당’이란집을지어다시시행하였고,
자암은이곳에서열심히학문연구에힘썼다.
그의학문은조광조김식과같은경지에이르는최고급의성리학자였다.
달이하얗게밝은밤이었다.사가독서를하던시절,자암은숙직을하는날,옥당에서책을읽고있었다.
그의책읽는소리는낭랑했고깊은밤중에노래처럼울림이있었다.
아무도없는밤중에책을읽으면자기의소리가자기의머리를울리면서
책의내용이머리속에전해져훨씬쉽게이해할수있었다.
그는책을읽을때늘의관을정제하고단정한태도로앉아서읽는다.
이미그는중종의개혁정치를주도하는반열에들어어떻게하면
도학정치를구현할수있을까고심중이었던때였다.
중종역시마찬가지였다.
임금은밤마다어지러운민심을바로잡아왕도정치를실현할수있을까
깊이생각하며대궐을서성이는일이잦아졌다.
조용히생각에잠겨걷고있는데어디서낭랑히책읽는소리가들려왔다.
“어디서나는소린가?”
임금은가만히소리가나는쪽으로다가갔다.임금은자암이책을읽고있는방문을열고들어갔다.
황황히꿇어엎드려임금을대하는자암에게조용히손을잡아일으키셨다.
“아니,아니,오늘은그냥자네와나,임금과신하가아니라친구로지냄세.
나오늘자네의그아름다운노래소리가많이듣고싶으이“
자암은음률에도뛰어났다.이미악정에임명된적도있는자암이었다.
임금은술상을명령했다.
조찰한술상을놓고임금과신하는친구로서마주앉았다.
술이몇순배돌았다.임금과신하는함께술이거나하게취했다.
임금은자암에게노래하기를채근했다.
“얼른한수불러보라니까.”
자암은천천히옆에둔거문고를들었다.
그리고고요하고진중하게즉흥시두수를부르며거문고를탔다.
나온댜금일(今日)이야즐거운댜오늘이야
고금왕래(古今往來)에유(類)없는금일(今日)이여
매일(每日)에오늘같으면무슨성이가시리.
오리짧은다리학의다리되도록애
검은까마귀해오라기되도록애
향복무강(享福無疆)하사억만세(億萬歲)를누리소서.
깊게떨리는자암의노래는거문고음률에맞춰더욱청아하게밤공기를타고흘러나갔다.
자암은임금의방문에감격한나머지두수의노래로신진사류의희망을드러내고싶었다.
‘나온댜’와‘즐겁구나‘
임금님이불시에방문했으니그기쁨이어떠하겠는가!그은총이얼마나하해와같은가!
그는감격하고감격했다.예부터지금까지이같은일이었었던가?
고왕금래에유례없이드문일이라는생각이들자그감동을노래하고싶었다.
임금이이렇게젊은선비들에게관심과애정을가진다면
그들이주장하는지치주의(至治主義)를실현하는데
무슨성가시고어려운일이있겠느냐는희망이샘솟았다.
신진사류가추진하는이상국가실현에임금이이렇게관심을가지고격려하는데대하여
감격,또감격하여노래는저절로음률을타고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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