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유배문학 수상 소설-신선의 섬 꽃밭에 놀다 4
예부터불가능한전제를내걸고서간절한소망을축원하는전통적어법이있었다.

김구는임금을간절히송축하고싶었다.

고려가요<정석가>는그런불가능을노래했었다.

바삭바삭한가는모래벼랑에구운밤닷되를심어그밤이움이돋아싹이나야

덕(德)이있는임과이별하고싶고,

옥으로연꽃을새바위위에접붙여서그꽃이세묶음이피어야만유덕하신임과이별하고싶고

무쇠로관복을말아철사로주름을박고그옷이다헐어야유덕하신임과이별하고싶고.

무쇠로큰소를만들어쇠나무산에놓아그소가쇠풀을다먹고난후라야

유덕하신임과이별하고싶고

구슬이바위에떨어진들끈이야끊어질리도없을뿐…..

정석가의가사는그런불가능을노래하면서자신의소망을더욱굳게보이게나타낸어법이었다.

이모든불가능한일처럼자암도짧은오리다리는학의다리처럼길어질수가없는일,

검은까마귀도해오라기처럼하얗게될리가만무하다.

이렇게불가능한전제를내걸면서그소원이간절하다는것을강조하고싶었다.

거문고소리와어울려서그의노래는간절했다.

임금님이억만년동안복을누리라고하였는데,이것은인사치레로하는말이아니다.

신진사류를격려하여이상국가로나아가려는임금이기에이러한개혁정치를계속해서밀고나가서

영원토록복을누리시라는기원을담고그리고그들신진사류의희망도담아

노래는진지하고도애달픈곡조가되었다.

“아,참으로좋은노래로고,참으로아름다운노래로고.”

휘영청달밤에정갈한술상을앞에놓고자암의노래에임금은흥에겨워감탄하면서

그자리에서자암의노모에게드리라고담비털옷을하사했다.<자암집>

기묘사화의소용돌이

반정이후중종은새로운인물,조광조를비롯한성균관의유생을대거등용했다.

왕의두터운신임을받은조광조는유교로서정치의근본을삼아야한다는왕도정치를실천에옮기기시작했다.

우선도학정치의실현을위해미신을타파하고풍습과사상을유교식으로바꾸기위해소격서를폐지하였다.

이런실천은소장학자를등용하여요직에앉혀야가능한일이었다.

게다가반정공신4분의3에해당하는76명을위훈삭제했다.

그리고향촌사회에는유향소의권한을축소하고여씨향약을전국에실시하도록하였다.

이러한급진적인개혁에훈구파가동요했다.

훈구파의좌장격이었던홍경주는그의딸희빈홍씨를시켜

대나무잎에과일즙으로’走草爲王’이라는글자를써,벌레가파먹게한다음

궁녀로하여금잎을따서왕에게바쳐조광조가왕이되려한다는의심을받게만들었다.

이미임금도급진으로만치닫는조광조를비롯한신진개혁파에실증을느끼기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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