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유배문학수상소설 신선의 섬 꽃밭에 놀다 7
BY cheonhabubu ON 3. 20, 2010
율곡이이는그의석담일기에서‘현철한자질과경세제민(經世濟民)의재질을갖고있었지만
너무일찍세상에나와서일을성취하지못했다’고적고있다.
중종실록15년1월16일의기록에‘사류가화를입으면서청렴한절조가무너지니,
조정이부정한뇌물을탐내고군현도휩쓸리어탐관오리가심하다’라고
사관이적은것은조광조가세상을떠난1년후의세상의모습이었다.
퇴계이황도<정암선생문집><행장>에조광조와그무리들을평가한다.
그들로말미암아선비들의학문이지향할바를알게되었다.
그들로말미암아나라정치의근본이더욱드러나게되었다.이런의미에서본다면
한때사람들이화를입은것은애석한일이지만조광조등이도(道)를높이고학문의뜻을확립한공로는
후세에큰영향을끼친점이다.
그렇게조광조가죽어갔고,자암김구는죄목이추가되어개녕에서남해로옮겨
13년의남해유배생활이시작되었다.
자암의남해유배생활
32세의젊은나이로혼탁한사회를개혁하고자혼신의힘을기울이던자암은
수구세력들의반발에부딪쳐조광조는죽고,나머지동지들도죽거나귀양을떠났다.
자암역시길고도긴유배생활에들어서게된다.
자암이유배지개령에서남해로오는도중진주에서길을잃고헤매다
허탁의집에서따뜻한대접을받게되었다.
이미허탁은지방의유지로서자암이정의로운사회를위하여일하다가희생양이된것을알고있었다.
“자암선생님,어서들어오시지요.
하룻밤쉬시면서피로나풀리거든다시떠나십시오.“
허탁은자암을위해따뜻한방과맛있는음식과잘익은술을대접했다.
장악원의악정벼슬을하던자암은슬픔에겨워애절한목소리로하염없이칠언절구한수를노래한다.
失路東西夜已分(실로동서야이분)
衝泥冒雨怯離群(충니모우겁이군)
橫馳山腹眞堪畫(횡치산복진감화)
深入松門喚不聞(심입송문환불문)
길을잃어사방은분간어려운데밤은이미깊었네
흙탕길무릅쓰고걷는맘혼자되니두렵구나
산을가로지르니마음진실로감당키어렵고
소나무문깊이드니부르는소리도안들리지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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