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지는 이름이란
법정스님이가신후,그분을추억하는이야기가난무하고있다.

북한산자락이끝나는성북동기슭에자리한길상사또한이야기거리로부각되고있다.

한때우리나라제일의요정대원각이다.

술과음기(陰氣)를팔던자리가부처님을섬기는절로변한것.

불가에서가장성스럽게치는연꽃은가장더러운진흙에서피듯이.

이절은대원각요정의주인김영한(불명吉祥花)이죽기전

법정스님에게기증하여절이된것으로유명하다.

김영한(1915~1999),기명(技名)은진향(眞香)이고필명은자야(子夜)이다.

그녀는시인백석을지독히사랑했고백석또한그녀를위해서많은연애시를썼다.

백석이북으로떠난후38선때문에그와생이별한그녀는백석을잊기위해

혼자서대원각을열었다.

우리나라제일의요정을일구어낸여걸이었지만백석이죽도록보고싶으면

그녀는줄담배를피워댔다.

그담배연기가이가련한여인을그냥두겠는가,

기어이그녀를폐암으로몰아넣었다.

죽음이임박해지자김영한은자신이운영하던요정은절에,

자신이만지던2억원의현금은백석문학상기금으로내놓는다.

그리고’내사랑백석'(1995년문학동네)과’내가슴속에지워지지않은이름’

(창작과비평)을출간했다.

기자가물었다,

‘그사람이어디가그리좋으세요?’

‘천억이그사람의詩한줄만도못해’

길상사를찾아가면수목우거진언덕켠에김영한의비석하나가외롭게서있다.

자야는길상사가문을연지2년만인1999년83세에훌훌서방정토세계로떠난

여인이다.

그의유해는유언대로눈이하얗게쌓인길상사에뿌려졌다.

김영한은가난한탓에약한신랑에게몸팔려간15살에

우물가에서빨래하는사이에남편이우물에빠져죽는불운을맞는다.

시어머니의고된시집살이끝에눈물을머금고집을나온

그녀는기생의길을갈수밖에없었다.

흥사단에서만난스승신윤국의도움으로동경유학까지갔으나,

스승이투옥되었다는소식을듣고함흥감옥으로찾아갔다가,

함흥영생여고보교사들회식장소에서영어교사백석과1936년운명적으로만난다.

김영한이서울로돌아가자백석은아예그녀때문에학교에사표를내고

서울로올라와서조선일보에근무한다.

그리고청진동에서살림을차리고서울과함흥을오가며3년간의동거생활을하게된다.

그러나백석의부모는기생과동거하는아들을못마땅하게생각했고

강제로다른여자와결혼을시켰으나신혼첫날밤부터도망치기를여러차례,

부모에대한효심과여인에대한사랑사이에서백석은괴로워갈등하다가

이를벗어나기위해만주로도피하자고제의한다.

그러나그녀는백석의장래를걱정하여함흥에남아있기를간절히바랬지만

백석은혼자떠난다.

그당시백석의심경을노래한詩가대표적연애시인’나와나타샤와당나귀’다.

백석(본명백기행1912~1955)은오산고보를졸업하고도쿄로건너가

영문학을공부하고1930년조선일보에시를투고하면서글을쓰기시작했다.

잘생긴얼굴과젠틀한성품,게다가청산유수의말솜씨로

미인들의마음을사로잡았던댄디보이(Dandboy)였다.

그러나백석(白石)은많은여인들중자야(子夜)만을사랑하였으며백석의아름다운

시(詩)는시인과기생의애틋한사랑의실체를느끼게한다.

해방이되자백석은만주에서함흥으로돌아왔지만김영한은이미서울로떠나버렸고

다시그녀를찾아서울로가려할때는38선이그어져

그들의사랑은이승에서잇지못하고만나지못하게된다.

그후백석이북한체제에서어떻게살아갔는지는알려진바없지만

90년대중반까지살았다는이야기가전해지고있다.

생전에김영한은백석의생일인7월1일이되면하루동안은

일체의음식을전혀입에대지않았다고한다.

[나와나타샤와흰당나귀]

백석

가난한내가

아름다운나타샤를사랑해서

오늘밤은푹푹눈이내린다.

나타샤를사랑은하고

눈은푹푹날리고

나는혼자쓸쓸히앉아소주를마신다.

소주를마시며생각한다.

나타샤와나는

눈이푹푹쌓이는밤흰당나귀를타고

산골로가자출출이우는깊은산골로가

마가리에살자.

눈은푹푹나리고

나는나타샤를생각하고

나타샤가아니올리없다.

언제벌써내속에고조곤히와이야기한다.

산골로가는것은

세상한테지는것이아니다.

세상같은건더러워버리는것이다.

눈은푹푹나리고

아름다운나타샤는나를사랑하고

어디서흰당나귀도오늘밤이좋아서응앙응앙

울을것이다.

[女僧(여승)]

백석

여승은함장하고절을한다.

가지취의내음새가났다.

쓸쓸한낯이옛날같이늙었다.

나는佛經처럼서러워졌다.

평안도의어늬산깊은금덤판

나는파리한여인에게서옥수수를샀다.

여인은나어린딸아이를따리며가을밤같이차게울었다.

섶벌같이나아간지아비기다려십년이갔다.

지아비는돌아오지않고

어린딸은도라지꽃이좋아돌무덤으로갔다.

山꿩도설게울은슬픈날이있었다.

山절의마당귀에여인의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같이떨어진날이있었다.

이詩는기구한삶을살다여승이된한여인을두고쓴것이나웬지김영한과의사랑을

예언적으로쓴것같은느낌이든다.

사람으로태어나만고풍상을겪으며인생을살아가지만,

한사람에게지워지지않는이름으로,기억되는사랑으로살아간다는건행복한일이다.

그러나세상의일에는양면성이있어서불교계의어떤이는

법정스님과김영한님을폄하하는시각으로보는분도있다.

어느사이트에올려진아래와같은요지의글은우리를헷갈리게만든다.

<….법정스님에게1200억상당의대원각(大苑閣)의부동산을바치는요정주인이등장했다.

15세동기(童妓)출신이다.그녀는70년대일인(日人)들을위한

한국제일의기생관광의대모인대원각주인김영한씨이다.

그녀는대원각에서가난한한국의딸들에게일인들을위해

가무(歌舞)하게하고술따르게하고몸팔게해서부자가되었다.

그러나법정스님을만나업보로무간지옥(無間地獄)에갈수있다는법어에

일평생,술팔고,몸팔아서번돈을일순에바치는결심을했다고전한다……>

이세상사람이다내편이아니듯이우리가존경하는분들에게도엇갈린시각의

다른편이있다는실례를본다.

그러나우리가배울점은빈손으로홀홀히떠나갈수있는

아름다운영혼을가진분들,그들을기억하면서,이세상의단한사람에게라도

남겨지는이름으로,좋은인상으로

우리또한버리고떠나기를실천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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