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5월의 신부
한계집이있었다.

어차피완벽한사람은없다.

죽어도좋을만큼의사랑이란적어도이계집에겐존재하지않을것이다.

죽도록갓을못벗는늙고낡은선비아비와사느라겉늙은이계집은결혼을위한남성관을갖지않았었다.

그냥자기를좋아한다하는사람이착하게사는사람이라면,날마다손님들때문에자기방을내어주어야할만큼북적이지않은집안이면좋겠다고막연한생각을했었다.

나머지모자란것은계집이살면서맞추고꾸리고바꾸어갈수있을것같았다.

그러다선생질을하러간초임지학교에서만난,죽어도좋을만큼,기꺼이백마탄기사가되어준다는한사내에게선심한번쓰기로했다.

"딸을주셔요.울리지않겠습니다.초등학교선생도하지않을겁니다.

언덕위에하얀집을지어줄겁니다."

불쑥예고도없이찾아와엎드려말하는사내를찬찬히바라본그계집의늙은아비는

"데려가게,밥은굶기지않게생겼네.그런데그아인과일배가크다네."

딱세마디.더이상은말씀하지않으셨단다.

자기남자에대한상을정립하지도않은계집이그만털썩,아버지의그말에

계절의여왕5월의마지막날에찬란한오월의신부가되어버렸다.

데려가게,어리석은계집이채마음을정하기도전에불쑥말씀을하신아버진

계집의손을끌고남편에게딸을건네주어야하는혼인식에왜오지않으셨을까?

파이롯트만년필한자루신랑의결혼예물이라사주신아버진70넘은노구를끌고오시기힘들었을까?웨딩마취에발을옮기지못하여서였을까?

오촌당숙의손을잡고혼례식장에들어선계집은바들바들떨리기만했었다.

"비오면잘산대."

친구들의위로의말을들으며

부산의극동호텔로신혼여행이란걸갔었다.

구질구질비는내리고마산부산한시간거리,

사내의짓궂은두친구도마누라를데리고구혼여행이라고동행했었다.

‘왜아버진눈에넣어도아프지않다던이딸의혼인식에오시지않으셨을까?’

평생의숙제가아직도풀리지않은채,그아버지어머니도세상을떠나고18년을모시던홀시어머니도똥수발9개월을시키시다가빈손으로세상을떠나셨다.

사내는선생을안하겠다는장인과의엄청난약속을지키려고시작한시멘트장사가번창해졌다.

호사다마라고옛사람은말했었다.

어릴적친구의꾀임에빠져큰돈한방에벌게해준다는빈말에속아그욕심때문에사내는15년을계집과함께쌓아온재산을다날리고서울낯선타향살이중국집3층,짜장면냄새를밤낮으로맡으면서그렇게사내의어머닌남의집에서돌아가셨다.

세월은40년을훌쩍넘겼다.

강산이4번이나변하는세월이손가락사이로연기가빠져나가듯그렇게허무하게지나가버렸다.

"까놓은알밤같애."

딸만셋인옆집의동료선생이부러워서아들둘만보면남편이분심든다고밖에내놓지도말라는그들의두아들은말썽한번안부리고잘도자랐다.

사춘기생병을크게앓지도않고자라난큰아이,작은아이

남부럽지않게잘도컸다.

아이목욕대야를들이지도못하는골목집작은방에서땅넓은전원을찾는다고지금도그곳은그린벨트인기찻길옆오막살이로이사를가고,다시학교의종소리까지들리는곳에작고아담한집을지어맹모삼천이라며오락가락그런대로작은행복을채맛보기도전에닥친불행을

전화위복이라여기면서참으로부지런히날뛰며살아온세월…

하루에서너시간을자며발이붓도록,등에콩이튀도록,바짝바짝타는마른침을삼키며학원으로,남의집으로가르치는일을했었다.

내새끼는두고남의새끼돌보러다니는계집에게어리석은짓말라고다그치던남편은봇물터지듯몰려드는숙제가너무벅차서안식처를찾고싶었나보았다.

그즈음보통의남편들이불혹을넘으면찾아오는잡념에저지르는통속적인다른남자와꼭같은일을저지르고

"울리지않겠습니다."

자기가한약속을발로뭉개버렸다.산부처도돌아눕는다는힘든세월도지나고알레르기병을지금도앓으면서몰랐으면마찬가지다,몰랐던걸로하자,날마다가장좋은가장아름다운부부로살기위해몸부림치던계집은,

역마살이깊이든사내,이사라는이사는열댓번도더하고,여자에게눈팔던이상으로카메라에눈이팔려십수년동안80개국잘도돌아다녔다.

작년11월,늘그막에조용히살거라고바닷가소도시로옮겨앉은그들은서울로가는

길에화물차에치여교통사고를당했다.그리고다른병들이줄줄이그계집에게다가와

지금6개월을주저앉았다.

그녀의또래에그녀의또래가걷던스무배,서른배를더달리면서살았다고하늘이선물로준이한가한쉬는시간이그녀는처음에는무척이나고마웠다.

아픈만큼성숙하려애쓰면서,스물네시간통증에시달리면서도계집의마음은그리서글프지않았다.

입원,퇴원을거듭하면서그때바로죽을수도있었던것을…..

인간만사는새옹지마라고이쉬는시간이약이되는걸거라고…

칠순이다된사내는7개월째아침6시에나가밤8시에돌아온다.

40년만에언덕위에하얀집을지어준다던약속위에짓는공사는지금7개월을훨씬넘겼다.

계집은언덕위에하얀집도싫고,80개국여행도원하는건아니라고크게말하고싶다.

다만서로가서로를데워주는가슴의온기만남아있다면그걸로된게아니겠느냐?

서로가서로를걱정하고붙들어주는신의만있다면살아가는의미란충분한것아닌가?

이전의일들은이미지나간과거이며이후의일들또한어떻게될지그운명은나의선택이아님을안다.

다만지금내앞에펼치진이시간의축복만믿을뿐이다.

계집은40년이되는결혼기념일전전날밤,집앞에달빛하얗게펼쳐진바다를바라보다가오랜만에어머니꿈을꾸었다.

그날밤어머닌초췌하셨다.콩나물사러동네가게만가는데도외출복갈아입으시던어머니는꿈속에서도깔끔한모습그대로였는데,남루한누더기를걸치고계셨다.

‘아,생각하니이리오래토록어머니산소엘못가보았구나.

잡초가무성하게뻗어났나보구나.’

미국서살리라가방하나달랑들고날감자한알씹기도하면서혼자버틴작은놈은결국미국서살아남지를못하고돌아와이곳에산다한다.

에미애비옆에서살리라한다.그또한나쁘진않다고생각하는데

아이를하와이에미에게데려다주러간녀석도없는밤,내일이면2010년의마지막5월,

만40년의결혼생활이남긴그의미를찾기도전에돋아오르는발바닥의통증을어찌할것인가?

감사할일,축복할일이라고,그때죽지못한것만도크나큰은총이라고생각하던계집에게찾아온이통증의의미를어찌받아들일것인가?

발을감싸고큰방으로거실로엉덩이를끌고다니며

"제발날좀낫게해줘요.나이젠그만아프고싶다구요.엄마,하느님,

아직도죄를뉘우치지못하고달라고만해서미안한데요.제발나좀걷게해주셔요.

아니면아프게는하지마셔요.잠도못잘만큼이렇게너무아파요."

통곡을하며울어대다가제멋에겨워울음을그쳤다가하고있었다.

어쩌다커덴도열어젖힌넓은거실창문으로은빛출렁이는바다로눈을주면서

죽은듯잠자는사내를본다.

‘그또한은총이다.그가일어나나를바라본들무엇을할수있단말인가?이밤중에…

내일다시일어나일을하려면그냥자고있는게더나은것을…’

애초에거창한남성관을가졌더라면이리되지는않았을까?

팔자는매양자기가만들어가는것이지,주어지는게아니란다면계집은다시그가치관이란걸변경해야만하나보다.

그런데도만들어가는그팔자라는걸,내마음대로바꾸지는못하는일아니던가?

내가키를돌린다고그키가제대로먹어주기가한단말인가?

하늘이내려주는사람의심성을변하게만들기가쉬운일이던가말이다.

40년의세월이번개처럼지나가듯이다음의시간도그렇게흘러갈것이다.

결혼기념일은죽지않는한내년에도올것이고…

"틈내어빨리들어올테니병원에가보자."

아침도못먹고사내는나가면서한마디던진다.

그렇게10년에한번씩네마디가만들어진5월의마지막날아침풍경이다.

혼자있는데따르릉전화가온다,

아주오래전한림원에함께다닌나이든아저씨

"하선생,책정리하다가하선생의책’언제나시작’을이제야읽었소.

일부러천선생께전화않고하선생에게했네요.

복많아여행만다니는줄알았는데고생도무지무지하셨더구려.

그러고도그리편안하게여행때우리를돌봐주셨소?"

"사람들다그렇지요."

"그럼요다그렇지만하선생은그렇지않을줄알았거든요.

왜이제사그책을읽었는지모르겠소.편찮으시다들었는데얼른쾌차하시오.

우리함께놀러가리다."

그는오래전에고전을읽으면서쌓은우정을핑계삼아계속이야기했다.

계집은사내와함께오후에는병원이갈것이고주치의는더강한진통제를처방할것이고,이낫지도걸을수도없는병은무지무지하게계집좋아하시는계집의신께서계집을충분히쉬게하신다음낫게해주실것이다.

사내와함께어느밥집에서밥을먹을것이고,올해도선물하나,꽃한송이고마웠다는말한마디서로나누지못한채그럭저럭마흔번째결혼기념일을맞을것이다.

그러면서그래도이렇게살아있다고,사는게다그런게아니겠냐고

마음속고개를주억거릴것이다.

그리고이렇게함께살수있는것만도,2000도화장구덕속엔아직들지않았으니

그렇게또살아보자고..

그래,사는게다그런거라고…

<소리울>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