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향한 애끓는 몸짓(촌은과 매창)

2010.8.5온종합병원에서사랑을생각하다

시원하고좋은병실,친절한의료봉사의혜택을입으면서도

할일을생각하니이병원이호텔같거나피서지같지만은

아닌게사실이다.

눈도아직은조금불편하니책도장난감바느질도할수가없다.

사랑을생각하자.그래사랑을…

지금내가생각할일은무언가가슴을화안하게틔워줄

사랑이야기.

사랑만이인류를구원하지않던가?

그런데하느님의거룩하고성스러운사랑이아니라

인간적인사랑이먼저생각나는속물임에랴.

우선송도삼절이황진이서경덕박연폭포인것처럼

부안삼절이매창,촌은유희경,직소폭포라는

시원한직소폭포의사진을빌렸다.

폭포라도보면시원하지않을까?

나이를초월하고그옛날거문고를켜며

사랑을나누었던두시인의이야기가늘아름답게느껴졌었다.

그들의이야기는남해12경중11경의용문사에목판으로남아있다.

최근그촌은집이번역되어나도한권

고마운지인에게얻어,지니고있다.

늘한번은풀어내어볼

사랑에대한바른가치라고생각하여

오늘여기펼쳐본다.

전북부안군부안읍성황산서림공원입구에매창시비가있다.

이비는1974년4월27일매창기념사업회에서세운것이다.

촌은(村隱)유희경(劉希慶,1545~1636)

허균의<성수시화>에보면

“유희경이란자는천한노비이다.그러나사람됨이맑고신중하며

충심으로주인을섬기고효성으로어버이를섬기니

사대부들이그를사랑하는이가많았으며시에능했다.”라고소개하고있다..

유희경은13세되던해에아버지가세상을떠났는데,

어린나이에홀로흙을날라다장사지내고3년간여막살이를했으며

3년상을마치고나서는병으로앓아누운어머니를30년간이나모신효자였다.

여막살이중에마침수락산선영을오가던화담서경덕의문인남언경에게

주자가례를배운뒤예학(禮學)에밝아진그는

국상이나사대부가의상(喪)때는으레초빙되곤했다.

미천한신분이라관직없이시를지으며지내다가부안지방에이르러

명기매창을만나사랑에빠졌으나임진왜란을맞아의병을모집하여활동하는한편

호조의비용을마련코자부녀자의반지를거둬충당케한공로로

선조로부터통정대부(通政大夫)직을받게된다.

이후인목대비로부터여러번술과안주를받게되며

시문학에도뛰어나정업원(淨業院)하류에침류대(枕流臺)를짓고

장수하여80살에금강산을유람하고92살의나이로숨을거두었다.

매창(1573~1610)

선조6년1573년부안현아전이탕종(李湯從)의소실에게서태어났다.

그해가계유년이라서계생(癸生)또는계랑이라고불렀다.

그런데본인은스스로매창이라고이름지었다.

매창은허난설헌,황진이와함께조선시대대표적여류시인이다.

어려서부친께한문을배웠고시문과거문고를익혀기생이됐다.

열살때부터시를쓰기시작한매창은이미서울까지알려진기생시인이었다.

그녀는시,가무,가야금에능통한다재다능한여류예술인으로

주옥같은한시수백수를남겼다고전하지만현재까지확인된매창의작품으로는

시조1수와개암사에서간행한『매창집』에수록된5언절구20수,

7언절구28수,5언율시6수,7언율시4수로한시58수에불과하다.

시문학사상한여인의시집이이렇게단행본으로나온예는없다고한다.

.

마흔여덟살의유희경은천리길을내려와

부안기생이매창(李梅窓,1573~1610)을만났다.

열여덟살의기녀를본순간그는사랑에빠지고만다.

촌은은매창을처음만난날「증계량(贈癸娘)」이라는칠언절구를바쳤다.

초회왕이무산에서낮잠을자고있을때

꿈속에신녀가나타나교합했다는이야기를비유로드는시.

신녀는시집도가기전에죽은한을풀기위해

아침에는구름이되고저녁에는비가된다고한다.

그신녀가도가에서말하는신선이사는삼청인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에내려온듯하다고매창을극찬했다.

曾聞南國癸娘名(증문남국계랑명)일찍이남국의계랑이라는이름들었는데

詩韻歌詞動洛城(시운가사동락성)싯구와노래솜씨서울에까지진동했지

今日相看眞面目(금일상간진면목)오늘만나진면목대하고보니

却疑神女下三淸(각의신녀하삼청)무산신녀가삼청(三淸)에내려온듯하여라

예술혼으로통한두시인은첫눈에반해짧은사랑을나누고헤어져야했다.

매창은너무나헤어지기싫어서시를쓴다.

이별하기싫어서

매창

동풍불며밤새도록비가오더니

버들잎과매화가다투어피었구나.

이좋은봄날에가장견디기어려운것은

술잔앞에놓고임과헤어지는일이지.

헤어져살던그들은임진왜란을맞아더욱그리워하면서도만날수가없었다.

매창의유명한이화우는촌은을그리워하는마음을잘나타내었다.

이미벼슬까지하고유명인들과시회를열며풍류를즐기는촌은이

매창을잊고있는것같은마음이었으리라.

이화우梨花雨흩뿌릴제울며잡고이별한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저도날생각하는가.

천리에외로운꿈만오락가락하노매.

그러나촌은도매창을잊지못하기는마찬가지였다.

「회계랑(懷癸娘)」

촌은

娘家在浪州(낭가재낭주)계랑의집은낭주[부안]에있고

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이몸이사는집은서울이라네

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서로가그리워하지만보지못해

腸斷梧桐雨(장단오동우)오동나무에비내리면애가끊기는구나

열여덟순정을바친매창은기생임에도정절을지킨다.

뭇남성들에게젊잖게거절하는매칭의시를본다.

平生不學食東西여기저기의탁함은평생못배웠고

只愛梅窓月影斜매화핀밤달빛어린창만사랑하네

詞人未識幽閑意시인들그윽한내맘을알지못해서

指點行雲枉自多뜬구름가리키며스스로들돌아가네

두사람이헤어진지16년이흘렀다.임란후1607년에둘은다시만나게된다.

당상관이된유희경이전라감영이있는전주에잠깐내려왔을때,

매창의나이34세유희경은62세로다시만나열흘간의진한사랑을한다.

예학에젖은선비는시를논한다는핑계를대지만사랑의행위에시는녹아들었다.

<너무늦게야매창을다시만나고는>

촌은

옛날부터임찾는것은때가있다했는데

시인께선무슨일로이리도늦으셨던가.

내온것은임찾으려는뜻만이아니라

시를논하자는열흘기약이있었기때문이요.

촌은유희경의시에매창도옛일을더듬으며화답한다.

옛일을더듬으며

매창

임진계사두해동안왜적들이쳐들어왔을때

이몸의시름과한이야그누구에게호소하리까.

거문고옆에끼고외로운난새의노래를뜯으며

삼청동에계실그대를서글피그리워했지요.

당상관인유희경은매창을나귀에태우고서근처의명소로소풍을다녔다.

내소사,직소폭포,개암사,채석강,곰소등

변산반도의좋은곳을두루관광하며사랑을노래했다.

그리고그들은열흘만에다시헤어진다.

헤어지는날밤매창의시는애가끓는다.

別恨

매창

明宵雖短短명소수단단임떠난내일밤이야짧고짧아지더라도

今夜願長長금야원장장임모신오늘밤만은길고길어지소서.

鷄聲聽欲曉계성청욕효닭울음소리들리고날은곧새려는데

雙瞼淚千行쌍검누천행두눈에선눈물이하염없이흐르네.

그렇게둘이헤어진후매창은그리움의병이든다.

병중추사(病中秋思)가을에병들어

空閨養掘病餘身공규양굴병여신빈방에홀로남은외로운병던이몸은

長任飢寒四十年장임기한사십년외롭고춥고떨며굶주린사십년인생

借問人生能幾許차문인생능기허묻노니인생은그얼마를사는가?

胸懷無日不沾巾흉회무일불첨건가슴속설움맺혀수건적시지않은날없었네.

이시를마지막으로그들이헤어진지3년후37세,아까운나이에

매창은그리움을안은채영원히잠들었다.

매창의죽음에대한소식을들은촌은은애가끓는다.

매창의죽음을슬퍼하며

촌은

맑은눈하얀이에푸른눈썹계랑아

홀연히뜬구름따라너의간곳아득하다.

꽃다운넋죽어서저승으로갔는가.

그누가너의옥골고향땅에묻어주리

정미년에다행히도다시만나즐겼는데

이제는슬픈눈물옷을함빡적시구나.

매창은촌은만을사랑했지만허균과의교류도있었다.

허균은매창의죽음앞에서중얼거린다.

"오래사귀었으나몸을나누지는않았다.그녀는음란함을즐기지않았고,

나는난잡함에미치지않았다.그래서우리는오래오래우정을지속할수있었다.

이제그대가나를버리고떠나니나는슬픈눈물로그대를전송한다.

꽃다운넋은고이잠들라."

그외에도매창을기린

가람이병기님의시와허균의시등이

부안에가면시비에새겨져있다고한다.

다리가나으면가보아야하리라맹세한다.

<사진은인터넷에서빌렸습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