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적도의 열기 속으로 9 마나카스 베이

트리나다드&토바고공화국에대하여

트리나다드(Trinidad)는1498년,크리스토퍼콜럼부스의세번째항해이전에

카리브(Carib)족과아라와크(Arawak)족들이살던곳이었습니다.

이후프랑스식민주의자들이넓게퍼져있었으나,

1797년까지는스페인의지배하에있었습니다.

토바고는영국,프랑스,네델란드에게번갈아지배를당하였으나,

1889년에두섬은하나의식민지로합쳐졌고,

1958년에자치권을획득하였으며,1962년에영국제국으로부터독립하였고,

1976년에트리나다드&토바고공화국이되었습니다.

포트오브스페인은트리니다드&토바고의수도이며,

산페르난도(SanFernando)와차구아나스(Chaguanas)의뒤를이은

세번째의도시입니다.

2000년의인구통계에따르면49,031명입니다,

1990년의비공식집계에따르면주변도심의인구를포함하여128,026명.

도심이상업화되고,북,서,북동쪽의교외가성장을거듭함에따라

인구는감소합니다.

그러나일통행인구는25만명에이릅니다.

트리니다드의마지막스페인총독이었던,

돈호세마리아차콘(DonJoseMariaChacon)은새로운수도를개발하는데

많은노력을기울였고,섬의행정부(governingcouncil)를

포트오브스페인으로옮기도록하였습니다.

1797년장군인랄프애버크롬비(RalphAbercromby)경(卿)휘하의

영국군대가침공을하였고,영국군은포트오브스페인의서쪽에상륙한후

시내로행진했습니다.

(오늘날에도‘침략자의만’InvadersBay라고불립니다.)

영국인들은거리의이름들을영국왕실또는군대인물등으로개명하였으나,

전임총독을기념하는의미에서

차콘스트리트(ChaconStreet)은그대로두었습니다.

1958년부터1962년까지포트오브스페인은잠깐존재한

서인도연방의임시수도이기도하였습니다.

마다카스베이로가는길

아득한산꼭대기낯선아파트단지는묘한정취를자아내고

잠시쉬어가는휴게소과일,목걸이를파는상인은

물건을파는데관심도없어보입니다.

마다카스베이와라스쿠바스그바닷가엔

출렁거리는바다에사람들이모였습니다.

기사가주는토바고돈한장으로

쭈볏쭈볏들어간마다카스해변의대중화장실

널따란샤워공간에는사람하나없고

무표정한여인둘이돈을받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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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검은새가겁도없이사람에게다가오는,

한가한물통장수가디룽디룽어깨에

야자나무물통을메고느리게물건을팔지만

아무도구경조차하지않은곳

파도는키를넘고물속에든연인들은마냥행복합니다.

모래사장에놓은낡은벤치에도파도는밀려오고

먼나라에서온낯선사람셋은

온갖것신기하여카메라에그들이늘상보는

평범한일상을담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게신기한것이남에게도신기한것은아니듯이

내가아는모든것

한갓아무것도아님을,

용기와열정으로다만살아갈뿐임을

이캐리비안이우리의눈을,우리의마음을

이리넓게해줄줄은몰랐습니다.

돌아오는길

바삐서둘렀지만

마음좋은기사아저씨

숨은비경을보여준다면서

라스쿠바스비치로갑니다.

느린강아지마저예술적인만남을시도하던곳

아,

그곳의바닷가에누워있고싶었습니다.

정겨운배들이떠있고평화로운휴식,

진정한휴식이거기있는것같았는데

돌아올시간이급한나그네는

아름다운한가로움앞에무색한발걸음을바삐합니다.

이나라두번째높은먼산에300미터폭포가있다하건만

말로만,상상으로만간혹흩뿌리는빗줄기속에서

우린그래도최선을다해이나라를보고가슴에담아갑니다.

다른곳으로가야하는레카타호는

포트오브스페인항구,그들의수도에서

우리를기다리고있었습니다.

그곳을떠나야하는

2010,12,2오후3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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