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꿈/이성자 유작전-진주 문화예술회관

<전략>

그리움은참으로삶을지탱하게합니다.

아직도내안에꿈이살아있기에….

—졸시’꿈이꿈에게’에서—

전쟁이한창이던1951년,세아들을두고프랑스로건너간여인이성자

한국의제1호기러기엄마였던그분은이후개인전70여회와

단체전300여회를열며화가로서명성을쌓았다.

고인은동양적향취가담긴작품으로한국미술의세계화에이바지했으며

‘동녘의여대사’로불릴만큼한국과프랑스양국의문화교류에앞장섰다.

생전에프랑스정부로부터두차례예술공로훈장을받았던분.

그분의유작전이진주문화예술회관에서3월26일까지열린다.

그개막식에다녀왔다.

사랑하는후배가거기까지태워주어서편하게다녀왔다.

그분은작품300여점을비롯,이화백이유서를통해추가기증한200여점의목판원판,

생전에사용하던화구등총500여점의작품을진주에다내어놓으셨다.

"내작품과많은이야기를나누어달라"

그분이그림에남긴이야기를읽으려고고심했지만우둔한내감성에와닿은건

그분이남긴거대한정신에비하면아무것도아닐지모른다.

그러나그분의꿈만은함께가지고싶었다.

파리시립미술관장을지낸J.라세뉴는

“이성자씨는자신의동양적인유산에서나온오묘한성격을그대로간직한채

서양미술의흐름속에용기있게합류하는본보기”라고평했다

"한국의색은진달래색이고철쭉색이에요."

태백산기슭에서산골친구들과냇가에서가제송사리를잡고소나무의눈을보며

산나물캐어먹는법을배웠던경험으로흙냄새나는자연과직접상를맞대고

자연이가진생명력을온몸으로각인하고즐길수있는감수성을키웠다.

장년이되어서는고국에올때마다부모님의산소가있는진주로갔다.

창녕화왕산기숡의암자로방문도종폭설을만났다.

모든세상이하얄때유독절의지붕밑오색단청을보고감명을받는다.

그뒤단청의색감과무늬를닮은모티브들이등장하기시작한다.

정행길이성자미술관건립추진위원장님과이성자화백의아우님.

프랑스까지건너가고인의임종을지켜보신사랑하는후배.

우리의자랑이신정행길회장님,

서울,부산에서오신동창회고문님과회장님,역대회장님

반가운얼굴들을만나회포도풀며…

부산동창회장과진주37기동창회장

어떤일에나뒤에서수고하는사람들때문에그자리가더욱빛난다.

<여인과대지(1958-1968)시기의그림에는아이들에대한그리움이작품에담겨있다.

아이들에게음식을주고교육을시키듯이

땅을가꾸듯이그림을가꾸고그작품이완성되면고국에남기고온세아들이되었다

이씨는파리로간지14년만이었던1965년에처음으로한국땅을다시밟아첫귀국개인전을열었다.

아들인신회장이스무살되던해였다.아이들얼굴을다시본것도처음이었다.

이씨는“멀리떨어져있으니까하루도빼놓지않고아이들생각을해서인지,

떨어져있었다는생각이안들었다.

늘마음속에있으니더가까이있는것같았다”고했다.

이성자화백은투레트아틀리에옆에그분의화실’은하수’를짓는다.

음양을상징하는반원,두개를엇비슷하게배치한모양두채의화실사이에는

작은시냇물이흐르고징검다리가놓였다.

외딴시골빵을사러나가려면한시간을걸리는곳에서별을보고하늘을보고

한국을생각하면서<대척지로가는길><우주의노래>가형상화된다.

이성자화백의도자기작품들

유작전에오신원로들

우리의자랑인일신다도회늘차회의봉사정신

맛과멋이어우러진….

사진이흔들렸어요.정회장님미안합니다.

멋있게찍어드리고싶었는데…

그분을기리는한줄사랑의말씀들…

선배와후배의사랑의가교

방명록에도그분을향한그리움…

그분을기리는뜨거운열기

아름다운선율을배경에깔아주던일신밴드나이스맘들의사진을미처찍지못했어요.

그렇지만이모든배경이그분들의아름다움도스며있다고생각하십시요.

우리의자랑,이성자화백님의멋진미술관건립을위하여

우리모두벽돌한장을쌓는마음을모아야할것입니다.’

이글을읽으러오시는모든진주인여러분,미술을사랑하는,

아니,아름다움을사랑하는여러분들께서도….

남해펜션아라클럽http://www.araclub.co.kr

전시회가끝나기전에진주한번다녀가십시요.’촉석루도,

강낭콩꽃보다도더푸른남강도보시고

거기서30분거리의아라클럽에도놀러오시고….

<소리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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