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키스의 한국화

제가자주기웃거리는방에서
어느화가선생님이올리신글을업어왔습니다.
평소에보시덪그림도있고처음보시는그림도있을듯해서
올려드립니다.감상하시고
외국인이본한국의아름다움에취해보시기를…
엘리자베스(ElizabethKeith1887-1956)

엘리자베스키스(ElizabethKeith,1887-1956).스코틀랜드출신의여류화가다.
여러차례동양을방문하여정감어린시선으로이땅의풍물들을그렸다.
그녀는한국을무척사랑했다고전해진다.화풍은섬세하고잔잔하다.
평생을독신으로지냄.그녀의화집[Oldkorea](1919)에실려있는그림들을소개한다.

"PortraitofMissElizabethKeith"byItoShinsui,1922
방석이한국을느끼게한다

가난한모녀

김윤식대감(고종때외무대신했었죠…)

두명의학자

모자가게

미망인

바느질하는여인

부유한한가정

붉은조복을입은청년

사당에서

새신부

서당풍경

수원성

보충설명을하자면수원성보다는화홍문(華虹門)일명북수문이라고했지요

시골의학자

식당풍경(이건주막이아닐까생각되네요)

연날리기

함흥의아낙네

대동강변

장기를두는사람들

스코틀랜드의자그마한도시Aberdeenshire에서태어난엘리자베스키스(ElizabethKeith)는
다른여류화가들.예를들자면불란서의MaryCassatt이나BertheMorisot처럼
부유하고사회적으로영향력있는집안에서태어나집안의후원으로여유있는
미술인생을연화가가아닙니다.

그리고FridaKahlo,LeeKrasner,HelenFrankenthaler처럼국제적으로명성을떨치는
남자화가와의긴밀한관계에편승하여미술사에족적을남긴화가도아닙니다.
키스의가정은그리넉넉하지못했습니다.


어렸을때는런던으로이사를해야했었습니다.
성장기에는평범하게가사를도우는소녀였던것으로추정됩니다.
28세가되던1925년그녀는남편을따라동경에와있는Jessie라는여성을만나러일본을방문합니다

당시일본의적십자사는결핵환자들을도울기금을마련하느라고고심하던중
사회유명인사들의모습을풍자적인삽화로구성하여책자로만들어판매수입을
얻고자했습니다.이에그녀가발탁되어그림을그리게되었습니다.


책은즉시다팔려장안의화제가되었고이때부터화가로변신하게됩니다.
그리고삼일운동이일어났던1919년에한국을방문하여한국의풍습과인물등
많은그림을그려도쿄에서전시하였습니다.

이를본일본목판화의대부인와다나베가목판화로출판할것을권유했습니다.
출판된작품은대성공을거두어그때부터자타가공인하는
화가로서의활동을시작합니다.

그녀의미술인생은한국을서양인들에게그림으로소개한
미국여류화가LilianM.Miller나프랑스인PaulJacoulet처럼
정식미술교육을받지못한순전한독학이었습니다.


1933년에는드디어영국의한미술잡지의호평을받아당시일본목판화의
대가인호쿠사이나히로시게와동렬에이를정도의명성을얻게됩니다.

영국의여왕도그녀의전시회에참관하였고전례없이일왕의동생도
전시회를다녀갔다는기록이있습니다.

이후일본한국은물론이고미국프랑스영국등여러곳에서전시회를가졌습니다.
사망이후45년이된지난2002년2월에는파사데나에있는PacificAsiaMuseum에서
단독전시회가있었으며책도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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