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을 계산하자면…

홍콩의아들에게서메일이왔습니다.
화요일은무엇이든내날이라고정한날인데
장마철이라빨래건조기를인터넷에서찾아야해서컴퓨터앞에앉아있다보니
가야할시간이많이흘렀습니다.
웬지억울해서미칠것같았습니다.
제시간이없는것
그것은참을수가없었기때문입니다.
제가마음속으로정해놓은시간이라도
제게주어져야사람의삶이라할수있지않겠습니까?
아무리취미로펜션을운영해도말입니다.
그런데참으로하느님은오묘하십니다.
방금제가제억울한팔자타령을한줄을어찌알고
이아들이보낸글하나로
그래사랑,
그말라비틀어진사랑이라는거창한이름으로,
그래,
나는또나를달래야만했습니다.
보내준글속의주인공처럼
억울함이비록사랑이라는단어로미화되지는않는다할지라도
눈물한방울적시면서아들이보내준이글을읽고억울한마음을참습니다.
내안에끓는그모든것들을다버리고
이게사랑이라는게야.참을수있는힘을주실거야.
다행히오늘은객실에손님이한사람도안오십니다.
차라리방이가득차면바쁜일로억울함같은것도
생각나지않고만나는분들에게사랑의얼굴을보여드릴수가있을겁니다만….
한밤주무시고가시라는인터넷상의호객행위같은것도
오늘은하지않으렵니다..
다음은아들이보내준글입니다.
그놈은언제나나를이렇게가르칩니다.
건방진,그러나고마운놈,

오늘의매일미사맨마지막에나오는묵상입니다.

좋은것같아서보내드립니다.^^

오늘의묵상


“재작년에남편이폐암말기판정을받았다.
비록남편과이혼한사이였지만
살날이6개월정도밖에남지않은사람을위하여
다시그녀가병구완에나섰다.
처음에남편은자기의병을인정하지못하여난폭하게굴었지만,
묵묵히자신의병상을지키는부인에게
끝내는참회의눈물을흘리고숨을거두었다.그
눈물하나로그녀는결혼생활40년동안받았던
억울함과고통의큰바윗덩이가가슴에서쑥빠져나간것같았다고했다.”

황영애교수의『화학에서인생을배우다』에서인용한글입니다.
이혼한남편의임종을지켜준이글의주인공은
이책을쓴저자의집에서가사를도와주는분입니다.
그분은가정형편때문에초등학교만졸업하였으며,
지금의남편과혼인하면서평생고통스러운날을보내야했습니다.
시집식구들을거두어들여돌보아야했던것은물론이고
시어머님이돌아가시기전까지7년동안을대소변을받아내며병수발을해야했습니다.
더욱이남편은남편대로제대로하는일없이술로세월을보내면서아내를괴롭혔습니다.
결국그분은자녀들때문에이혼을하고
온갖궂은일을다하며훌륭하게키워서일류대학에입학시켰습니다.
그리고이제마지막으로자신의인생에서운명적으로만난
이혼한남편의임종을지키며한인간으로서도리를다했습니다.
눈물을흘리며죽음을맞이한남편도,그분도모두구원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누구나억울한사연들이있습니다.
우리삶에서만난억울한일들을그저‘억울함’으로안고살면
그것은억울한채로남아서‘슬픈인생’을만들어냅니다.
그러나그것을적극적인사랑으로승화시키면
자신의인생에의미가되고축복이됩니다.
우리삶에서‘악인에게나선인에게나똑같이햇볕을주시고비를내려주시는’
착한하느님마음만을담고살아야합니다.
다른계산을하면금방우리는억울해집니다.


<소리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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