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그녀 2

너무나깔끔한객실103호는잘정돈되어있었다.

침대에누워서일출을본다는아라클럽의객실은부드러운침구가자랑이었다.

몸에감기는실크느낌의60수면의카바가하얗게정리되어나를기다리고있었다.

세상모르고한밤을푹자버렸다.대리석방바닥이따뜻했고침대까지따스하게전해지는느낌은그녀를그냥다받아주는듯했다.

"그래,좀잊고보는거야."

무수히생각하고생각해도해답은없었다.살아야할지말아야할지

그녀는그결정을하느라고그동안잠을설치며머리가빠개질듯했었다.

다음날은아라클럽안주인이객실로호박죽을가지고들어왔다.

"남편분에게전화가왔어요.전화를받지않는다고..

혼자오셨으니밥같이먹어요.제가이야기동무해줄게."

집에서끓였다는호박죽은많이달지도않고맛이있었다.

‘이야기동무해줄게…’

그말이가슴에새겨졌다.

남편은옷을아무것도안가져갔으니옷을챙겨오마고했다.

그동안펜션사모님과이야기나나누어보아.해답이찾아질지알아?

우리보다더살았던사람이니까…"

남편의말은듣기도싫었지만딸이없는곳에서퍼붓기라도해야속이시원할것같았다.

남편이퇴근후올때까지기다리는시간은지옥같았다.

카페에서커피한잔을먹고있어도주인은보이지않았다.

물어볼수도없어서바다로내려가빨간바위위에서보기도하고모래밭을지나방파제까지걸어보기도했다.

하루에두번나갔다들어왔다.어린게가살갈기어바위틈으로숨고파래가,미역이둥둥떠밀려오기도했다.

나만이리가슴이아리는구나,이세상그무엇도다제대로돌아가고있는데…

서너시간바닷가를걸으니갑자기피곤이몰려왔다.

언덕위바지락칼국수집에서칼국수한그릇을사먹었고객실로다시들어와누웠는데남편이찾아왔다.

간밤에결심하고결심하고참자!참자!수없이다짐했던마음은다사라지고다시분노가끓어올랐다.

"누구였니?어떻게했니?내게병까지옮기며그동안얼마나무슨짓을했던거야?

이짐승만도…

그녀는통곡하며소리질렀다.했던말또하고했던말또하고..질제되지않은언어와행동은어찌해볼도리가없이둥둥떠다녔다..이혼만이살길인것같았다.

"서류해오랬는데가져왔니?"

밤새그녀에게시달린남편은잘생각해보라면서많은공부를했고나쁜버릇까지다고쳐서자기는다정리를했으니그녀의마음만잘다스리라면서무언가도움을청해도되는분위기였다고펜션주인과대화를청해보라면서갔다.

"아침식사같이하세요."

카페에서아침밥을먹자고한다.

서울서오신손님들은전날광양매화꽃을보고남해로드라이브를간다고한다.

무엔지지적인분위기가넘치는그두분이같이가겠느냐고묻는데

주인과이야기를나누기위해남기로했다.

다리를다친주인은그날은쉬고싶다고했다.

매화꽃을띄운차를한잔마시고

깊은사연은이야기로풀어야한다면서오늘은시간을내어줄수가있다고

주인은그녀의손을끌고안채로가자고한다.

그녀가이야기하는내내주인은그녀의두손을감싸고누워그녀의이야기를경청했다.

때로는격분하고때로는눈물을흘리면서그녀의이야기는겨쏙되었다.

한나절내내..

잔잔한카라얀의음악을흘려놓고풀어놓은아픈사연들…

"너,정말더러워,어찌나에게그럴수가있어?"

언제나다소곳이존칭을썼던남편을대하는언어는그냥더러운짐승을대하듯되었다.

남편은

"큰문제아니야.어울리다보니실수한번한걸…이제는노래방안가면된거아니야?"

그녀는남편이,아니라고절대로나는아니라고하길바랬다.

그녀가남편이바람이날걸알게된건순전히남편의태도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남편은그녀에게투정을부리기시작했다.

가난하게살아온어린시절…

남편은건실한남자였다.

딸둘을낳고너무나행복했었다.

무일푼에서시작하여집을장만하고예쁜접시를장만하고,

하나씩이루어가는재미가쏠쏠했다.

스물아홉딸이자기일을하고스물세살막내가

서울로커피바리스타가되겠다며집을나가자그녀는남편의퇴근시간을기다리게되었다.

약선나물을만들고찌개를보글보글끓여놓고온갖꽃으로요리를해보기도하고..

그런데그음식들이자꾸밀리기시작했다.

남편은친구들과어울려밥도술도먹고들어왔고

노래를흥얼거리다가는그녀에게투정을부리기시작했다.

"당신은키가왜이리도작아?"

"당신은키스할줄도모르냐?"

"당신옷을이렇게밖에못입어?"

하루는배가몹시아파약을먹어도좀체아픔이가시지않아배를좀주물러달라고했다.

남편은건성으로배에손만대고몇번인가시늉만하다가손을때며

"약을더먹어!"

신경질적으로말했다.

‘아하!뭔가있구나’

여자의직감으로그녀는남편에게무슨일이일어난것을그때부터깨달았다.

‘모른척할까?확뒤집어엎어?’

맹세코단한번도남편의호주머니를뒤져본일은없었다.

그러나남편의호주머니를뒤져보고픈욕망이일었다.

밤마다벼르다가드디어술을고주망태가되도록마시고들어온날

남편의호주머니를뒤졌다.

지갑안에얌전히들어있는00호탤##노래방영수증두장

이튿날그노래방을찾았다.

건너편에눈화장을짙게한젊은여인이보였다.

주인인듯한남자가나와무슨일로왔느냐고물었다.

남편이친구들과올텐데바빠서그녀에게심부름을시킨것이라

도우미는몇명이나불러야하는지방은얼마만한크기가있는지알아보러온것이라말했다.

"혹시저여자도도우미예요?"

"그래요대중없지만보통한노래방에서너명의도우미는있지요.

술믈마시고뒤풀이로오시는남자손님들은의례도우미를찾는답니다.

도우미도필요하다면몇명쯤부를까미리말씀하셔야해요"

주인은대수롭지않게사무적으로말했다.

그녀는알았다고말하고그곳을나왔다.

남편은그곳에서무슨일인가를저지른게분명했다.

밤에일터에서온남편에게##노래방에대해서말했다.

남편은얼굴이새파랗게질렸다.

한서너개월에있었던일을스스로불기시작했다.

더이상말은필요없었다.

남편은월급외에회사가쉴때도더러아르바이트를해서들어오는수입이있었다.

그돈마저도저금을하거나그녀에게주어서몫돈을만들었는데

어느날부터인가혼자쓰는것같았다.

그러려니,남자인데돈만드는기계도아니고쓰고싶기도하겠지..

그렇게대수롭지않게생각했었다.

그방심했던일이이렇게큰일이일어난것이다.

분해서미칠것같았다.

‘내가자기에게어떻게했는데내뒤통수를쳐?내가어떻게했는데..’

서너시간이넘게그녀는남편의비리를거침없이말했다.주인은끝없이들어주기만했다.

그런데속이조금씩후련해지는느낌을그녀는받았다.

분명주인은그녀의두손을감싸고조용히들어주기만했다.

"그래요.참..왜그랬을까?그렇겠네요."

간간히그녀의말에장단만맟추어주더니

이윽고그녀가단호하게

"여기서일하려면월급얼마나주나요?저를여기서일하게하고먹여살려주실수있으세요??"

하고물었다.

"여기일하려면하게할순있어요."

그리고주인의그녀에대한설득이시작되었다.

아침에남편의전화로,그리고데려다주는날남편이계산할때의느낌은

너무나사랑하는부인을대하는예우를잃지않았더라는것이다.

남편이전혀이혼할마음이없는데잠깐의실수라는걸자신이고백을하고뉘우치는데

이혼하고혼자있으면마음이편할것같으면그렇게하는것이나을거라고

그러나결코더편하지않고더행복하지않을거라고…

남자들은처음은죽을것같이하다가도막상이혼을하고나면

위자료를다뺏긴다하더라도경제적행위의주체는자신이까살수있을거라고

그러나양육비받아야할아이들이있는것도아니고

그녀가경제활동을크게한것도아니라면위자료뻔하게받을거고

아라클럽에서놀고먹여줄줄아느냐고..

죽어라객실청소하고도실수로머리카락하나흘렀으면손님들에게,주인에게

싫은소리들어야하는게남의집살이하는일이라고..

그러나남편과화해하고산다면두딸들에게든든한친정을안겨줄것이고,.

남편은한번의실수로아내인그녀에게평생약점잡혀살것이니얼마나신나는일이냐고…

이젠남편만바라보고남편의퇴근시간만기다리며살게아니라

좋아하는그림도그려보고,붓글씨도배워보고동네에서가르치는컴퓨터도배우고…

기왕이면조리사자격증도따고..

지금50인데무엇인들못할게있느냐고…

죽을만큼아픈병이걸린사람도있고

이런일말고도매맞고사는사람도있고…

주인은25년간메리지엔카운터를봉사해온수십가지의사례를들면서

그녀를설득했다.

수많은사람들이그녀에게충고와조언을아끼지않았는데

아무의말도그녀의귀에들어조지않았었다.

그런데단이틀,그것도잠깐본펜션안주인과이야기를나누는순간.

그녀에게두손을잡히는순간그녀의굳었던마음이사르르녹는듯했다.

이야기하는중에남편에게전화가왔다.

"지금선생님과이야기를나누는중이예요."

남편은얼른전화를끊어주었다.

"저녁에남편분오시라고합시다.

그리고이아름다운밤바다를보면서새로운결심을해보세요.

이젠두분만을위하여살아갈인생이펼쳐질시기예요.

두딸들은다자라서부모를떠나독립적으로살아간답니다.

산부처도돌아눕는다는그일을겪으셨으니죽을때가지병이더러더러일어날것입니다.

그러나과거에매달려현재와미래를망친다는건정말어리석은일이지요.

이제는벌어지지도않을이미청산된과거의일이현재와미래의걸림돌이되는건

정말더더욱슬픈일이지요.

당신의아픔을인정합니다.그러나내가보기에남편은이제완전히후회하고

과거를청산한분위기였습니다.

당신도그걸인정하면서자기가한일에비해남편의엄청남잘못을인정하기싫은것이지요.

그건너무완벽주의자나하는일입니다.

사람은실수하기마련이고남편의입장에서는당신이날마다예쁘기만했겠습까?

살다가보면배우자들도싫었다가좋았다가하는거지요.

저도고집불통인남편과날마다이혼하고싶은걸참고삽니다.

지금이나이에도하루에도열두번씩이나결심하고미워하고그리고사랑하며사는게

부부의일입니다

쉽게파투를낼일은아니지요.두딸에게든든한힘이되는친정을만들어드리는건

두분이함께만든고귀한생명에대한책임이예요.

절대로당신의감정에만매달리지마세요.오로지당신의의지에달렸습니다.

어렵고힘든과정을견디며버텨나가세요.

남편분이오시면협조를요청해드릴게요.당신도정말혼자산다생각하면

두렵고절망적이지요?그리고두딸은오로지내편만이라고생각지마십시요.

두분이함께만든자식들은두분을모두측은하게생각합니다.

남편분만미워하는건아니랍니다."

그리고저녁식사시간이되었다.

주인은바깥사장님과친구들,그리고서울서오신주인의친구분과함께

돌솥밥집으로그녀를데려갔다.완전가족을대하듯했다.

그리고남편에게전화를걸어주었다.

"오늘저녁에아라클럽으로오세요.부인과바다보시면서하룻밤만리장성을쌓아보세요."

그리고전화를그녀에게주었다.

남편은모임을끝내고한아홉시경에는올수있다고…

큰딸에게전화가왔는데아빠가흥분하며말하는데,잘될것같다면서

딸에게그동안너희들에게도마음고생시켜미안하다고

이젠다된것같은느낌이든다고기뻐했다는말을전해주었다.

그리고그녀는주인에게진정으로고마움을느끼며말했다.

"언니되어주세요.마음이많이편해졌어요.저정말병이깊이들어안그래야지하다가도확올라오면죽을것같았거든요.아무말도들리지않았어요."

남편은그녀의거실에너무나아껴서먹지도못하던적화수오술을담근병을들고왔다.

인생에서한전환점을주시는분에게무어라도선물을하고싶었단다.

한결낮은목소리,한결부드러워진그녀의분위기를접한남편은뛸듯이기뻐했다.

새벽에잠깐잠이깨었는데너무풀어놓으면이남자가다시그런나쁜짓을하지않을까우려가되었다.

그런생각을하니또다시분노가일어났다.

그러나그날은안채에서잤기로톤이높아진소리가어렵게언니해주기로한주인의마음을다치게할것같아서참아야했다.

아침엔콩나물과냉이가들어간굴국밥을끓여놓고주인이기다렸다.

눈치를채신서울서오신친구분도좋은말씀을해주신다.

"독립적으로살아가세요.내가좋아하는일이있으면견디기훨씬쉬울꺼다.

30년은즐기면서살아가실수있어요."

밭에서뜯은머위라면서한웅큼선물도주신다.

시간을내어주시고밥도사주시고,

그런데혼자오신분들은대개아픔을가진분들이라제게한것처럼

이렇게상담을해주신단다.

어린아이를두고이혼전에결심하러왔던젊은엄마도

사장님부부의설득으로잘살게되었다면서이번여름에인사차왔었다한다.

좋은언니를얻고우리딸둘에게도기쁨을안겨줄수있어서결심하기를잘했다.

"사랑은결심하는것이다.

아픔이금세가시지는않을지라도다시결심하고다시결심하십시요.

두분모두에게드리는말입니다."

그녀와남편은두손을꼭잡고사랑하기로경심하면서아라클럽을떠났다.

긴악몽의터널을빠져나가는건참으로슬프고아픈과정이었다.

슬프고아픈상처가나은자리에큰흉터는깊이자국이남을테지만

세월이가면서차츰무디어갈것이라믿는다.

애써도움을주신분에게그녀는실망시켜드리지않기로결심했다..

<소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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