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졸업후50주년을맞는해라한다.
내인생에서가장암울했던고1때부터교대졸업때까지의세월
부산교육대학은그나마나의희망이었다.
아버지의사업-원양어장,무역으로홍콩대만일본을종횡무진활동하시던
아버지를둔부잣집아들이하루아침에대학진학도못하고
어머니와두동생을먹여살려야만하는소년가장으로전락해버린
일대사건이내게일어났었다.
아버지의사업이몰락한때문이었다.
그렇게내인생에희망이란빛이아무것도없을즈음,
부산사대음악과에다니던고향친구가
“부산교대로가지그래.두달만가정교사하면한학기등록금1만9천원은
쉽게낼수있어.”
그렇게말하는거였다.
그렇게교대에들어갔지만고작2년짜리교육대학을졸업하기까지
내게여러가지의복병이따랐다.
첫째복병은자주버스값2원도없는현실이닥치는거였다.
동대신동에서버스를타면교대에도착할때까지사람들이버스에꾸역구역계속탄다.
한사람이라도더밀어넣고가려고깡패같이생긴남자차장은사람들을계속쑤셔박듯이밀어넣는다.버스기사는오라잇소리가나자마자갑자기핸들을홱꺾는다.
사람들이한쪽으로쏠리면다음역에서또사람을태운다.친구한놈이라도타야버스표한장을얻어,무사히내릴수있을텐데..
나는가슴이바짝바짝탄다.
비닐을씌운내마분지가방은모서리가쪼그라들어엉망이되고,요행친구를만나차표를얻으면마음이다소편안해지지만,종점까지가서도친구가타지않는날은내릴때까지애를태우다가깡패같은차장에게낭패를당하기도했다.
두번째의복병은2학년여름방학때나타났다.
잠깐집에들렀는데열이나고기침에다가래도심해서동네병원으로가보았더니왼쪽폐에동전크기만한구멍이두개나뚫려있다고한다.
가정교사를계속했으므로사실내몸돌볼시간은없었다.
먹을것도,휴식도내게는많이불충분했다.
얼른졸업을하고식구들을돌보아야할내게폐결핵의발병은청천벽력이었다.
휴학계를내고마산집으로내려가야할판이었는데마산출신친구들이없는돈을모아서개두마리값이라며봉투를건네준다.눈물나게고마운친구들을생각하며그돈으로개를사서보신탕에개소주도내려먹고기운을조금차릴수가있었다.
그때부터나의신조는신외무물(身外無物),내가살고봐야하기에남을생각할겨를이없는에고이스트가되었다.어쨋거나내가살고보아야한다고…
졸업을앞두고학교에갔더니다행히졸업하는데필요한출석일수가일주일이남는다고했다.
졸업시험은사정이그러하니지금까지의성적80%는인정해준다고하면서유급이든졸업이든원하는대로선택하게해준다고했다.
병이다낫지않은상황에서더쉬어야했지만나의선택은발령,
의령군화정이라는벽지학교로발령을받았다.
Share the post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2/천종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