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오타

어제어느분에게서비밀글로내오타에대해서지적해주셨습니다.

대단히고맙고그분의진심에감사드리며

너무나한심한내요즈음의행동에대한변명내지는하소연을해봅니다.

초등학교때는글짓기반이었습니다.

중학교때부터교지편집위원으로일했더랬습니다.

고등학교,대학교학보사편집장.

그리고서울살때는재경동창회지편집일,

여고80년사,성당15주년사,성천아카데미객원기자로일하면서

교정이란교정은신물이날정도로수없이보아왔습니다.

지금도누구의글을읽으면틀린글부터보이는제성향입니다.

적어도글을쓰는사람이라면오타를내어선안된다는생각을깊게해왔던사람입니다.

제가대학학보사일을할당시에진주에선제대로된인쇄소가없었습니다.

그래서한달에한번내는대학학보를부산에가서인쇄해와야했습니다.

지금처럼타자를쳐서그걸바로인쇄하는시대에사는사람들은

이해하지못할인쇄소풍경입니다.

우리는기름냄새나는인쇄소에서매일교정을보았습니다.

교정을보고신문이다나오기까지약일주일의시간이걸린것같은데

우리는부산에서먹고자고학교는공인된일로간거니까

결석처리는안되어신이났습니다.

기차를타고다니면서도멀미를하여힘들어해가면서…

사나흘씩문선공이원고를보고활자를뽑아내어판을짭니다.

그렇게해서나온문장들을보고교정을보면문선공은다시

교정지를보고활자를뽑아냅니다.

내친구이름은’혜숙’이었습니다.

그런데어느달의신문원고에’숙’이란글짜가너무많이들어가서

‘숙’이란활자가모자랐던모양입니다.

편집위원’전혜숙’을신문위쪽에넣어야하는데

‘전혜또’라고문선을했습니다.

왜그랬냐니까활자가없길래또’숙’이나왔다고숙은없고또를넣었다고합니다.

그다음부터내친구이름은적어도학보사에선혜또리라불리워졌습니다.

학보사주간선생님께서도"어이,혜또리이리좀와보지."

그렇게불렀습니다.

그때만큼교정에목을맨적도없습니다.

자기가교정본부분에오자가나와지적을받으면

그날저녁을사기로되어있었습니다.

학보사회식으로먹었는지누가오타를내어먹었는지

학보사기자들과주간선생님과자주저녁을함께먹곤했습니다.

그시절의진주사람이면다기억할만복당빵집,

하얀빵에단팟죽물을끼얹어주는빵집도자주들락거리던곳입니다.

어느때부터인가오타에신경을쓰지않게되었습니다.

제가자주들어가는재미한인의사회카페에는

‘철자법을지적하려는분은이곳에글을올리지말아주십시요’

라고명문화해두었습니다.

오래전에한글을배운사람들이고문맥에지장없으면

철자법이틀린다고의사소통에는무리가없다는설명이었습니다.

처음엔’그래도그건아니지’라고생각했는데

시간에흐르면서제가자주오타를내는겁니다.

그리곤자신에게관대해지는겁니다.

그래문맥에별로지장없으면독자가알아서생각하시면서읽어내시겠지.

그런생각을하게된것입니다.

다른분들의블로그에댓글을달때도마찬가지로틀린글이자주나옵니다.

손가락의무딤때문인지스마트폰의작은문자판이자주틀려도

잘바꾸지않는것처럼그냥그렇게써놓고에이,알아서읽어내시겠지

그런적이한두번이아니었음을고백합니다.

참으로큰일낼생각이었다는걸그분의지적으로깨닫게되었습니다.

제글을읽으려고블로그를방문해주시는분에대한

진지한태도가아니었음을깊이깨닫게되었습니다.

그리고그제자신의늙음에비기면서관대해지려는태도는

더없이비난을받아도마땅하다는생각에이릅니다.

저는제인생에도자주오타를내고있음을고백합니다..

그리곤괴로워하지도심각해하지도않을때가많았습니다.

가령,너무심하게일을하는건제성격탓인데

늘다른사람에게탓을합니다.

사방에감사해야할일이많이도널렸는데

나만힘든것같은생각에같은하소연을자주합니다.

건강하고능력있고잘생긴두아들에대해서도늘불만가득하고

마음으로섭섭해하고괘씸해하면서살때가많습니다.

이런오타를수도없이거듭하는현실속에내가살고있는걸

깨닫게되었습니다.

오랫만에캄보디아더운나라에서열악하게일해온작은아들이

며칠전다니러왔었습니다.

힘들다고말했는데안하면될텐데왜심하게일하면서힘들다고만하느냐고화를내기에

서로언성이높아지고그날밤으로아들은캄보디아로가버렸습니다.

아비닮아금방해소가잘안되는아들에게여러번카톡으로

문자를보냅니다.

그런데문장으로쓴글은오타를고치면되는데

인생의오타는교정하기가너무어렵군요.

자주오타를내는내글처럼무책임한내행동에부끄러움을느끼면서

오늘도좀더진지한태도로살게되기를바랍니다.

<소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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