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캐빈 할아버지의 이야기(펌)
    옹달샘같은할아버지…


    대학1학년때,교문앞에는허술한라면집이하나있었다.
    주인은노부부였다.
    통나무를툭툭쳐서이어붙인간판에는
    하얀페인트로<캐빈>이라고써있었다.
    그래서친구들은그할아버지를캐빈할아버지라고불렀었다.
    할머니는주방에서열심히라면을끓이시고
    할아버지는하얀행주치마를두르셨는데베레모를멋드러지게비껴쓰셨다.
    늘웃는모습이었다.

    그러나나는그라면집에들어가본일이없었다.
    -한번가봐!맛있어…할아버지가얼마나친절하시다고…
    친구들은그렇게말을했지만
    나는단돈오백원이라도헤프게쓸수는없었다.
    꼬깃꼬깃접어모았다가학비에충당하지않으면안되었었다.
    구두쇠!노랭이!
    그런호칭에달관한지는벌써오래된일이었다.
    어머니가많이편찮았기때문이었다.미처내학비까지조달할수없는
    가정형편때문에나는별별아르바이트를다했었다.
    식당에서접시도닦고,신문도돌리고,밤으로는호떡을구워팔기도했다.

    그러던어느날,
    호떡리어커를끌고나갔다가소나기가줄기차게내리는바람에
    그냥돌아오던날의밤이었다.
    -학상,학상이리좀와봐!
    할아버지가걱정스런표정으로나를불렀다.
    리어커를한쪽으로대고가게에들어가니라면을한대접주신다.
    (전..라면을안먹는데요..)라고말하고싶었다.


    그러나사실돈을주고라면을사먹고싶은생각은없었다.
    내게도호떡이있었고숙소에돌아가면밥도있었기때문이다.
    할아버지는내표정을읽었는지…
    -괜찮아,뜨거울때후루룩마셔!그러면기운이날거야.
    이런억센비를맞고다니면큰탈이나는벱여.어른말은들어,어서!
    하시며재촉하셨다.

    망서리다가라면을뚝딱먹었다.시장했었던것같았다.
    신세지는것이싫었던내가주머니를뒤적거리는데…
    -그만둬!
    할아버지가내친구이름을대면서짐짓역정을내셨다.
    -종호학상친구지?
    -녜?
    할아버지는다알고있다는듯빙그레웃으시며다음에돈을많이벌면
    그때라면값을내라고했다.
    비는계속쏟아졌다.
    비가그치기를기다리는데할아버지는이런저런얘기를하셨다.

    -내가종호학상한테자네얘기를들었지.그렇게고생을많이한다매?
    매일이앞을지나가는자네모습을눈여겨보았는데..우리아들같애…
    나도자네같은아들이있었어…참착한애였지.효자였어!
    할아버지의외아들이법대4학년이었는데그만친구들과놀러갔다가
    불의의사고로죽었다는것이었다.

    한없는인생의무상과허탈함이소용돌이쳤지만
    그런마음역시살다보니보잘것없는감상이었다는아리송한얘기였다.
    그때솔직한심정으로나는
    내가하는일에대해너무바쁘고정신이없었고
    내스스로고생을한다거나
    힘이든다는생각을한적이없었기때문에
    한편으로는할아버지의말씀이조금짜증나기도했었다.또한
    (누구나환경이그렇다면무슨일이든다하는것아닐까?
    가급적신세는지지말아야지)하는것이내생각이었기때문이기도했다.

    -야,임마!
    너캐빈에갔었다매?
    평소캐빈에갈시간이없다고버텼던나를비웃듯이
    친구종호가킥킥대며말을붙여왔다.
    -할아버지가너같은놈처음봤다카더라.
    세상은서로신세지기도하고서로베풀기도하며살아가야
    세상사는재미가있는벱이라고꼭전하라더라.

    그래서그랬다기보다는
    그이후로가끔캐빈에들려서라면도먹고.이런저런얘기도들었었다.
    라면집캐빈의특징은이러했다.

    카운터에는구태어돈받는사람이없었다.
    수북히잔돈만채워놓고는손님들이-손님이라야대부분학생이었다-
    스스로알아서계산을하기도하고
    스스로알아서거스름을거슬러가기도했다.
    -손님이라면을먹고그냥가면어떻게해요?
    내상식으로는이해할수없는일이었다.
    그러면할아버지는하얗게웃으시며말씀하셨다.

    -할수없지,뭐!오죽하면그냥가겠나….
    그래도여직장사를하면서밑진적은없어!
    밑지다니…한15년을이곳에서장사를했는데…
    언젠가는불쑥중년의아줌마가어린꼬마를데리고들어와서는
    <여기가엄마처녀시절에라면을먹던곳이다>하며
    자랑스럽게같이라면을시켜먹기도한걸…
    바로저탁자야!
    할아버지가가르키는곳에는아주오래된듯한나무탁자가두개있었다.
    -처음라면가게를냈을때쓰던두개의탁자지.지금은몇갠가…?
    여나무개는될걸.

    어떨때는불쑥말쑥한신사분이찾아와서는(영감님,죄송합니다.
    옛날에제가철이없어번번히라면을먹고는몰래나갔거든요)하며
    (이제사철이들어그외상값을갚으러왔다)며돈을내놓기도하지…
    하하하!
    그게다인생을사는재미지…자네도그것을빨리깨달아야해!
    착하기만하다는건자랑이아니야,성실하다고하는것이다자랑은아니야…
    사람은모두어우러져울고웃으며살아야하는벱여!
    그래서저나무탁자두개는아무리낡아도없애지않는거야.
    또누가아남?어떤추억을가진분이와서저탁자에앉게될지….

    기가막힌철학이었다.
    그인생철학이곧장내호떡가게에도적용되었음은말할것도없었다.
    내간이포장마차호떡집은인근학생들에의해금방유명해졌다.
    더달라면더주는집으로,
    없으면돈을안내는집으로…
    뜻밖에호떡은불티나게팔려나갔다.
    기가막힌마켓팅전략이기도했다.

    비로소밝히지만
    나는덕분에무사히대학을마칠수있었고
    졸업을무사히할수있었던것은<익명의독지가>가준
    장학금이었다는것이큰힘이되었다는것을…
    아마익명의독지가는캐빈할아버지가아니었을까?하는생각을많이한다.
    할아버지는극구부인을했지만
    나는지금도그라면집캐빈의벽에써있던몇장의글들이생각나기때문이다.

    -아름다운사람이앉았던자리의흔적은늘아름답다.
    -내일은주님의것.나는오늘을소중히한다.
    -주님이지배하시는세상일을걱정하지말라.
    안되는일은안되는일이니괜한걱정을하지말고
    되는일은되는일이니미리걱정을하지말라.
    -주님주신재능을자랑하지말라.재능을고이접어후배에게전하라.

    대충그런얘기들이었다.장학금을받을때써낸각서의내용이
    그작은벽보의내용과비슷했었다.
    <받은것을소중히하여반드시후배에게갚는다>라는내용이었다.

    나역시포장마차호떡집을졸업과동시에
    신나는마음으로후배에게물려줬음은말할것없다.

    유감스런일이지만
    학교를졸업하고직장을다니면서캐빈할아버지와는왕래가뜸해졌었는데
    지방발령이끝나고반가운마음으로다시학교앞캐빈을찾았을때
    학교앞은아주커다란도로가생겨나있었다.
    라면집캐빈이서있었던곳은도로한복판이되었고
    베레모를늘쓰고계셨던할아버지의멋진모습은
    두번다시볼수가없었다.

    길을가다가문득문득할아버지의환하게웃는모습이
    길위에떠올라혼자미소를짓기도했다.
    마치깊은산속의옹달샘같았던할아버지셨고…
    우리시대의진실한어른이셨음을후에야깨달았다.

    그리고세월이흘러갔다.
    그소소하지만아름다웠던기억은가뭇가뭇사라지려고한다.
    그러나늘말없이용기를주고
    격려해주었던할아버지의모습은나만의추억이아닐것이다.

    내가다시장사를하게되면<캐빈>같은그런라면집을낼것이다.
    무슨일이든받아주는…
    누구든와서울거나웃거나하는…
    무슨나쁜일을해도도닥거려주는…
    그래서속이하늘처럼탁터져서나갈수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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