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립 이성자미술관개관소식

서울에서개관식에참석하기위해선배들이오신다고터미널로마중을갔다.

드디어진주가낳은세계적미술가의시립미술관이어제개관되었다.

개관소식을담은상세한이야기와화가의분위기가담긴그림들을발췌해본다

시립이성자미술관은도문화예술회관과더불어산업문화도시진주의새로운랜드마크로자리매김하면서미술인들을비롯한지역예술인들에게는하나의긍지이자자부심이될것으로기대된다.

유명작가들의경우지방나들이의경우사실상작품보관에가장애로가컸던점을감안하면제대로구비된수장고는앞으로이들의작품전시를한결수월하게할것으로보인다.

이와더불어인근LH의토지주택박물관등과연계되면서혁신도시내에새로운문화예술터전으로자리잡으면서동부지역문화갈증해소에큰역할을할것으로기대되고있다.

한국미술협회노주현진주지부장은시립이성자미술관의개관에대해“수도권을제외한지역에서시립미술관을가진도시는매우드물다”며“앞으로이미술관으로인해진주시는문화예술의도시로서상징성을더하게되었다”고그의의를밝혔다.

▶협약체결에서개관까지
“진주는저에게영원한모천(母川)입니다.유년의기억을간직한진주를흠모하고기리는것은저의당연한도리일것입니다.”

백수를바라보던재불화가고(故)이성자화백이지난2008년3월20일고향인진주시에자신의작품376점을기증하면서협약서에남긴내용들이다.

이에진주시는“이성자화백의미술품기증의숭고한뜻을존중하고기증자의뜻과취지를살려기증품이지역사회에길이보존되고활용될수있도록이성자미술관건립방안을적극실천한다”고협약서에서명했다.

시는당시이화백과의약속에따라2014년말까지이성자미술관을지어각종기증작품들을전시·보관하기로했고만약미술관을짓지못한다면작품을유족들에게되돌려주기로했다.

그로부터7년여가흐른7월16일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이개관하면서이성자화백과진주시가당시맺은협약이드디어빛을보게됐다.

그동안예산과장소등의어려움으로난항을겪어오던이성자미술관은현이창희시장이LH측에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건립을건의하면서그결실을맺은것이다.

당시진주시가기증받은작품은유화77점과판화237점,판화와시6점,수채화13점,도자기15점,소묘28점등모두376점이다.

▶이성자화백은
지난1918년진주에서출생1931년진주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현진주여고)에입학해1935년제7회로졸업했으며일본으로유학하여짓센(實踐)여자대학을졸업했다.

1951년6.25전쟁이한창이던때서른셋의나이로프랑스로건너가미술공부를시작하면서본격적인화가의길로들어섰다.

이성자화백이50년화업의길에서천착한주제는여인과대지,중복,도시,음과양,초월,극지로가는길,우주등으로이러한주제들은이화백이걸어온삶이예술로승화한작품들이다.

특히90년대후반부터이화백의작품에등장하는우주는예술이라는이름으로마치우주를떠도는유영과도같은삶을살아온이화백의삶과너무나닮아있다.


김흥수,이응로,김환기등과함께미술을공부한이화백의존재가한국미술계에알려진것은한·불문화협정이체결된1965년으로해외에서활동하던한국미술가들이드물던당시한국여성이프랑스에서미술가로활동하고있다는소식이화제가되면서부터다.

살아생전작품을통해동양과서양의넘나들수없을것만같은간극을뛰어넘는일에자신의평생을바쳐오면서파리가공식적으로인정하는동양의예술가로‘동녘의여대사’라는애칭을갖고있다.

지난1991년프랑스예술원으로부터‘예술및문학훈장’을,2001년프랑스정부로부터‘예술및문학최고영예훈장’을수상하는등2차례문화훈장을수상했으며고향에서쑥을캐고싶다던소박한소망을남긴채2009년3월9일프랑스에서향년91세로타계했다.

평소개인전70회이상,단체전은300회이상가진것으로알려져있으며현재진주시에서는이화백의평소예술혼을기린‘일무이성자어린이그림대회’가매년개최되고있다.

이화백의삶과60년작품세계를담은화집‘이성자,예술과삶’(생각의나무)이있다.

<소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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