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전문적인 클래식 입문서

섬세하고 전문적인 클래식 입문서

-김성현 기자의‘스마트 클래식 100’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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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어느 여름 날 저녁 로마의 시내를 거닐다가 길가의 육중한 대문이 너무 아름답고 장엄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성당의 성가대인 듯한 분들의 연습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의 그 중후한 분위기는 아직까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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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김성현 기자의 ‘스마트 클래식 100’을 읽고 리뷰를 준비하면서 지난 6월 어느 날 텔 아비브의 해변가에서 휘파람을 불며 지중해의 낙조를 바라보던 그때가 자꾸 떠오르고 있다.

조금씩 클래식의 깊은, 마치 맑은 차와 같은 그 맛을 음미하고 있는데 그것은 삶의 고뇌와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깨달음의 한 모습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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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클래식 감상, 클래식과 관련된 사연과 일화들, 지휘자. 작품들의 숨겨진 사연들, 그리고 연주자들에 대하여 기사 글 형태로 10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보자들에게는 매우 친절하며 또한 깊이 있고 전문적인 얘기들로 책장을 넘길 때마다 깊은 재미와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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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실내악의 구성,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과 프레이징(phrasing)에서 연음과 묵음의 설명, 낙소스 음반사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아시아 삼국의 공연 문화에 있어서 관객의 특성들, 관현악단의 경제적인 자구책과 고육책, 작곡가의 탄생이나 서거에 맞춘 기념일 마케팅의 관습 등은 매우 흥미 있고 유익한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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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지휘자인 일랴 무신이 “지휘자는 손으로도 단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지휘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불필요한 말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대신, 엄격하고 명확한 손동작을 통해서 오케스트라와 교감을 이끌어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러시아의 지휘 전통은 본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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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아버지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연주법’을 썼으며 이것이 유럽 전역에서 바이올린의 필수 교재로 자리 잡은 고전이 되었고 이 책이 다시 바로크 음악이 재조명을 받게 되면서 당대의 연주방식을 살필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로 재평가 받고 있다는 내용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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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의 저주’에서 “지나치게 젊은 나이에 많은 조명을 받으면서 음악적으로 성숙할 기회를 놓친 탓이라는 분석”을 읽으면서 음악 분야에서도 여타의 다른 학문이나 삶에서처럼 너무 일찍 찾아온 성공이 궁극의 완성에 있어서 장애가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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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율리아 피셔를 소개하면서 “조숙(早熟)이 만성(晩成)을 보장하지 않듯이, 너무 이른 성공에는 우려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질주하다가 스스로 지쳐서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지요.”라고 서술한 기자의 지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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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소리의 보모, 피아노 조율사’와 관련된 일화들도 재미있게 읽었다.

데카 음반사의 프로듀서 존 컬쇼의 “오페라에서 참기 힘든 점의 하나는 돈이 많이 들고 배타적으로 향유되는 문화라는 것”이라며 음반 녹음을 통한 음악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자세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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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지인의 소개로 듣게 된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 그리고 율리아 피셔가 연주한 ‘라 캄파넬라’를 감상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고전음악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이 책이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커가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한 권씩 손에 쥐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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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예술이란 감각을 매개로 예술가와 나의 영혼이 교감과 공명을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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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일주일 정도 이스라엘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텔 아비브의 교외에는 예전 솔로몬 왕이 왕궁을 지을 때 예루살렘의 욥바 게이트로 향하는, 레바논의 백향목을 들여오던 옛 항구도시가 있다. 마침 묵었던 호텔에 이웃해 있어서 저녁이면 벤치에 앉아 지중해의 석양을 바라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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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고요한 충만감에 젖어 휘파람를 불게 되었다. Ennio Morricone의 Gabriel’s Oboe였다. 사념은 다시 흘러 영화 ‘시네마 천국’의 주제가로 흐르면서 낮에 보았던 올드 욥바의 어느 현관 앞 처마가 떠올랐다. 마치 시칠리아의 시골 마을에서 어린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인의 집 앞을 배회하던 영화 속의 그 곳과 너무도 흡사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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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Gabriel’s Oboe를 듣고 영국의 Sarah Brightmann은 3년간의 간절한 편지 끝에 Ennio Morricone의 허락을 얻어 Nella Fantasia라는 가사를 붙이게 된다. 그 이탈리아 가사에는 연면히 흘러 내려오던 이탈리아 가극의 전통과 흔적이 조금은 묻어 있으리라. 그 주인공도 나도 이제는 불면의 젊은 시절을 지나 조용히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세월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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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마음으로 사상(事狀)을 인식하고 때때로 흐르는 선율에서 작곡가나 연주자의 마음과 교감이 일어나며 그러한 공명은 자신의 일부로 내면화된다. 그것은 마치 여행을 떠난 타지의 바닷가에서 일몰을 맞이할 때처럼, 상념에 젖어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며 또한 현재의 삶을 풍요하고 윤택하게 한다.

이제 다시 차를 한잔 놓고 저물어 가는 바다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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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0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