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족이야기(1) – 인류최후의 원시부족

여행이란일상생활에서겪어보지못하는여러가지를경험하게해준다.사람도그렇고언어,음식,주거생활등새롭고낯설은세계를찾아나서는것이여행의즐거움이다.때로는즐겁고쾌적한여행도되지만어떤여행에서는괴로움과고통이동반하는여행이될수도있다.그러나모든것이새로운경험을맛본다는데공통점이있으며여기에치르는댓가가크면클수록그여행의의미가더욱값지게될수있는것이다.

<사진-인도네시아자카르타에서이리안자야로가는적도상공의산호섬>

지구에서그린랜드다음으로큰섬인뉴기니아섬이적도바로아래에동서로2400KM남북으로740KM에걸쳐서자리잡고있다.그중동쪽반은독립국가인파푸아뉴기니이며서쪽반은이리안자야로서인도네시아영토에속한다.이리안자야의한복판에는아직도석기시대의원시적인생활을하고있는다니족이살고있다.다니족이살고있는발리엠계곡은길이가60KM,폭이16KM에이르며해발1500M가넘는고지대에있다.주변은험한산악지대과울창한열대우림으로둘러쌓여외부와는철저하게고립되어있을수밖에없었다.


<사진-이리안자야의열대우림RainforestatIrianJaya>

발리엠계곡의다니족이처음으로외부에알려지게된것은1938년미국인ARCHBOLD에의해서였다.ARCHBOLD가이지역을발견하기전에도네덜란드탐험대가이근처를지나갔지만험한지형때문에빗겨갈정도로접근하기가힘든곳이었다.내가1993년에처음이지역을찾아갔을때만해도산허리에짙게걸친구름층을뚫지못하여두차례나되돌아와자야푸라의센타니공항에서이틀이나발이묶이기도하였다.이곳을수상비행기로비행하다발견한ARCHBOLD는네덜란드인TEERINK와탐험대를조직하여이곳에첫발을내딛게된이래많은탐험대들이이곳을찾게되었고제2차세계대전이끝난후에는탐험대를대신하여선교사들이찾아들게되었다.


<사진-이리안자야에서출발하는발리엠계곡의와메나행소형여객기>

발리엠계곡에서바깥세상으로통하는길은이리안자야의수도인자야푸라와발리엠계곡의와메나를잇는항공로가유일한교통수단이다.와메나는발리엠계곡의중심이며소형여객기가이착륙할수있는짧은활주로가있다.발리엠계곡은위도상으로는적도바로아래의열대지방이지만습도는낮고해발1700M의고지대에있어서밤에는기온이급히떨어져한기를느끼게된다.

<사진-발리엠계곡의다니족>


다니족에서가장눈에뜨이는것은이들의옷차림이다.옷차림이란표현이어울리지않게이들은거의나체로지낸다.남자는호림또는코데까라고불리는기다란대롱을성기에꽂아서그끝을실로묶어허리에매달고다닌다.여자들은밀짚으로만든치마를입고있을뿐이다.아니입는다는표현보다는아슬아슬하게엉덩이에걸친다는표현이맞을정도로남녀모두우리들시각으로보면매우우스꽝스러운모습이다.

남자들의유일한장식구인코데까는박종류에속하는과실로서그속은파먹고속이넓은것은물통으로사용하며가늘고기다란것을코데까용으로사용한다.공기가찬밤에도그대로잠을자며몸의체온을보호하는것이라고는전혀없다.선교사들이발리엠계곡에들어와선교를한지30년이지나고,외부문명이도입되어가장외부영향을많이받을수밖에없는와메나에는많은다니족들이옷을입기시작했지만아직도코데까차림으로마을을활보하고다니는다니족은전혀외지인의시선에신경을쓰지않는것같았다.와메나에서외곽으로갈수록옷을입은다니족은줄어든다.


<사진-발리엠계곡의지위카마을주민들과함께>

와메나에서약20KM떨어진곳에지위카라는마을에들르면’무미’라고불리는미이라가있다.다니족청년의안내로지위카마을에도착하니마을의원로가다가와’와,와’하며악수를청하는폼이벌써이마을은외지사람한테많이시달렸다는것을알수있었다.다니족과의대화는와메나공항에서소개받은포터겸가이드인다니족청년을통하여영어로하는데FREDY라는이청년은선교사한테영어를배워매우유창한영어를하였지만읽고쓰는것은매우서투르고사고방식이단순하여폭넓은대화는할수없었다.지위카마을은이미이라를보기위하여많은여행객들이들르는곳으로미이라를보기위해서는기부금을내놓아야한다.다니족은사람이죽으면화장을원칙으로하지만마을에큰공헌을한사람이나막강한권력을가졌던사람은화장을않고미이라로만들어마을의수호신으로삼았는데,이들의조상인무미는요즘에는후손의수입에큰보탬을해주어개방된사회에서자본주의적인방식으로마을을수호해주는셈이되었다.발리엠계곡에는지위카외에도다른마을에서조상의미이라를보존하고있지만지위카의것이가장보존상태가좋다.이들의미이라는시신을건조시켜연기에그을려서숯덩이처럼새까만것이특징이다.

<사진-지위카마을조상의미이라>

다니족한테는죽음과관련하여몇가지특이한풍습이있다.다니족의여자들은남편이죽으면애도하는뜻으로얼굴에진흙칠을하고다녀과부임을표시한다.또한가지풍습은여자들은가까운친척이죽으면손가락을자르는것이다.보통왼손의바깥두손가락이많이희생이되는데일하는데지장을덜주는손가락을택하는이유가아닌가생각된다.손가락을자르기전에끈으로잘라낼손가락을단단히동여매어혈액순환을차단하는것으로마취를대신하여도끼로자르고잘려진손가락은건조시킨후에불에태운다고한다.다행히이풍습은많이사라져가고있지만지금도길거리에다니는많은여자들중에서나이가제법든사람의경우는열손가락이온전한사람은없었다.

<사진-미망인표시로얼굴에진흙을바르고생활하는다니족여인>

이들의풍습중에서가장끔찍한것은식인풍습(CANNIBALISM)이었다.지금은선교사들의영향이미친지역내에서는안전하지만좀더외진곳으로들어가면아직도식인풍습을갖고있다며SILAS는그의경험을겻들어설명을하였다.다니족의식인풍습에는재미있는내력이있다.다니족들은사람의죽음을마법에의한것으로생각하여유가족은누군가를희생양으로잡아먹어서복수를해야한다고믿는데그대상은다른부족이될수밖에없었으며근래에는선교사들이많이희생을당한것으로알려졌다.최근의희생자로는1968년미국인선교사MASTERS와호주인선교사STANDALE이산행도중희생된것으로알려졌으며,이곳에서의일은아니지만미국의대부호이자전뉴욕주지사였던록펠러주지사의아들도뉴기니아의남쪽ASMAT지방에서실종되어식인풍습으로희생된것으로결론이났었다.와메나지역을여행하려면자야푸라에서사전에경찰에신고를하고SURATJALAN이란여행허가서를소지하고와메나에도착하면제출해야한다.또발리엠계곡의여러부락에는외지인은반드시사인을하게되어있는데이러한조치들이외지인의실종에대비하여행적을추적하기위한것이아닌가생각된다.SURATJALAN은여행을마치고자야푸라의센타니공항에도착하면그곳경찰한테반납하게되어있다.지위카마을에서방명록에서명을하였는데대부분의방문객은네덜란드와프랑스사람들이많았으며오히려가까운아시아국가에서온사람들은찾아볼수가없었다.

지위카마을에서는미이라뿐만아니라그들의움막을공개하고다니족의전통춤을보여주어마치우리나라의민속촌과같은구실을하고있어많은여행객들이모이지만그렇다고인위적으로만든마을은아니다.이들이보여준춤의내용은밭에서일하는여자를뺏어가려는다른부족으로부터보호하는듯한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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