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잃어버린 나라 – 북유럽기행 (2)

<사진-스톡홀름군도의오두막같은별장이있는섬뒤로대형유람선이지나가고있다.>

헬싱키에서저녁에출발하여다음날아침스톡홀름에이르는발틱해크루즈는그리길지않은짧은시간이지만다음날아침일어나면스톡홀름군도의절경이눈앞에펼쳐진다.올망졸망몰려있는스톡홀름군도의조그만섬들사이로커다란배가빠져나가는것도신기하지만섬마다곳곳에들어선모서리가하얗게칠해진오두막들은부유한나라사람들의별장이라고는생각이들지않을정도로깜찍한모습으로우리들을맞아준다.

<사진-스톡홀름항구에정박한바이킹라인>

바이킹유람선에서아침식사를하면서아름다운스톡홀름군도의경치에넋을잃는동안바이킹호는스톡홀름의하루가시작되는시간에맞추어스톡홀름항에도착한다.바이킹호가정박하는터미널은스톡홀름중심에있어서바다한복판에서스톡홀름시의전경을조망하기에는더없이좋았다.보잉747점보여객기6대와맞먹는2400명의승객과400대의자동차를실어나르는길이200미터의유람선을마치도로변주차장에서후진하여꽁지를들이밀어주차시키듯부둣가에정박시키는기술도대단하였다.스톡홀름항에서시내의호텔까지는불과3~4km남짓한거리인데택시요금이무려SEK.200(약USD.30)이니아무리출근시간의교통체증때문에그렇다하더라도스톡홀름의첫발은북유럽의살인적인물가체험으로시작된다.

<사진-바이킹라인터미날에서본감라스탄,스웨덴역사가압축된곳이다.>

스웨덴은덴마아크,노르웨이와함께스칸디나비아3국으로불리고공동으로국적기라할수있는스칸디나비아항공사를설립하여운항할만큼지역연합을이루고있지만이들의역사는그리순탄했던것만은아니었다.한때는칼마동맹을맺어함께뭉치기도하였지만왕권다툼에휩쓸려스웨덴과덴마아크는갈라졌으며,프랑스의나폴레옹과영국과의전쟁에서편가르기에말려들면서서로다른길을가게되어오랜동안대립된역사를지켜왔었다.스웨덴출신의과학자노벨에의해제정된노벨상은스웨덴한림원에서주관하지만,당시의스웨덴과노르웨이의불편한관계를해소하려는차원에서노벨평화상만큼은노르웨이에서주관하도록하였다고한다.

<사진-덴마아크,스웨덴,노르웨이세나라가합작으로세운스칸디나비아항공>

스톡홀름의시내관광은스톡홀름시청의종탑에서시작된다.1912년에세워진시청건물은스톡홀름에서는비교적현대적건물에속한다.스톡홀름은크고작은14개의섬으로되어있어서북유럽의베니스라고도불려지지만시내어디에서도베니스와비견할만한모습은보이지않는다.높이100미터의종탑에올라서자비로소스톡홀름은운하의도시라는것을알수가있지만그래도베니스는아니다.베니스가스톡홀름보다더낫다는것이아니라베니스는베니스,스톡홀름은스톡홀름일뿐인데왜굳이그런별명을붙이는지이해가가지않았다.시청의종탑에오르면리다홀름과감라스탄섬이손에잡힐듯한눈에들어온다.여의도의백분의일도안되는좁은곳이지만스웨덴의역사를지켜온곳이다.

<사진-시청종탑에서바라본감라스탄전경>

시청에서다리를건너면높은첨탑의고딕건물인리다홀름교회가첫눈에들어온다.이곳은역대스웨덴왕족들이묻힌곳이기도하다.스토르키르간(대성당)은역대왕실의혼사나즉위식이거행된곳으로리다홀름교회와마찬가지로그외모는수수하지만그사이에위치한귀족원은(Houseofnobel)북유럽귀족사회의중심위치에걸맞게바로크풍의중후한멋을자랑하고있다.노벨박물관이있는스토르토겟(광장)은감라스탄의중심으로덴마아크와스웨덴이왕권을가지고대립하여귀족들이반란을일으킨유혈참극이있었던스칸디나비아역사의중심이기도한곳이지만지금은어느구석에도그러한흔적은찾아볼수없다.

<사진-노벨박물관이있는감라스탄광장>

듀르가덴의바닷가에자리잡은바사박물관은해양강국의수도인스톡홀름관광에서빼놓을수없는곳이다.1628년에건조되었으나처녀출항때에스톡홀름앞바다에침몰한부끄러운역사를지닌목선바사호는1961년스톡홀름앞바다에서인양된후재조립되었지만최첨단과학기술의도움으로도재기에실패하여지금은박물관에전시된것이다.길이62미터로당시에는세계최대의전함이었지만배전체가하나의예술품처럼매우아름다운모습을보여주고있어외양에너무치우친나머지기능적으로는부실한선박으로탄생되어두번씩이나좌절을겪은것아닌지도모르겠다.


<사진-해양왕국스웨덴의자랑과치욕을담은스웨덴전함바사호의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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