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여행기 (마지막편)

오늘은금강산관광의마지막날로만물상코스와해금강코스를선택하게된다.만물상코스는

금강산의또다른비경이기다리고있지만,해금강코스는어제의구룡폭포나만물상코스와는

또다른성격을띠고있다.해금강으로가기위해서북한주민들이사는마을을지나가야만

하기때문이다.만물상코스는여전히구름이낀날씨도걱정되었지만나는북한주민들의모

습을좀더가까이지켜볼수있는해금강코스를택하게되었다.

<사진-버스가주차장에서출발할때마다직원이나와일렬로늘어서환송을해준다.>

오늘은금강산관광의마지막날로만물상코스와해금강코스를선택하게된다.만물상코스는

그래서인지오늘따라주의사항이무척까다롭다.특히우리팀의안내조장은주의사항을말할

때마다내얼굴만쳐다보니항상손가락을카메라셔터위에얹고있는내모습이걱정되는

가보다.호텔에서아침식사후checkout하고각자배정된차량에올라인원점검을하였다.

호텔을출발한버스행렬은만물상코스와해금강코스를선택한관광객들을차량을재배정한다

는것을핑계로온정각에들르게되는데아마틈만나면쇼핑센터의매출증대에신경을쓰는

이유도있지않은지모르겠다.

내가소속된버스는만물상행으로정해져해금강코스를맡게된옆조의버스와승객들을원

하는대로바꿔태우고해금강코스로출발하는데온정각단지를조금벗어나니도로의철조

망건너개울을끼고있는마을이보인다.개울에서빨래하는모습도간간이보이고물장난

하는아이들도몇명보이지만그리활기있는마을모습은아니었다.

<사진-북한주민들의마을>

금강산단지를벗어나니길양옆으로는녹색칠한철조망들이길을포위하고있었고100미터정도의일정한간격으로인민군들이도열하여부동자세로있는데우리를환영하는것은아닐테고버스안에서승객들이사진촬영을하지난않는지감시하는임무를띠고있다고한다.

잠간다리를건너급커브길을도는데자동차들의속도를줄이자잠시버스가정차하게되었는데나는그순간을놓치지않고창밖의모습을한커트카메라에담았다.분명히안내조장은이동중에촬영하지말라고했으니나는버스가정차한상태에서촬영하였으니분명히원칙을어긴건아닐테다.

차창으로북한군인들이보일때마다우리들은손을흔들어보았지만눈하나깜짝하지않는다.지나치는마을마다지나가던주민들이건물뒤로몸을숨긴모습도보이는데처음에는북한주민들이남한에서온관광객을몰래지켜보는줄알았지만,매일수천명의관광객이몰려드는데일부러몰래지켜볼리는없을테고,다만우리나라에서민방위훈련때에몸을숨기듯이들도마을에서길을거닐다가관광버스의이동시간이되면건물뒤눈에띄지않는곳으로대피하라는교육을받은것으로보인다.

<사진-해금강주차장에서본북한주민들의마을>

갑자기차창너머로철도침목이쌓인것을보니남북한을연결하는철도공사가한창인것같았

다.우리를태운버스행렬이일반도로를점령(?)하고다녀서인지옆개울을따라트럭이달

리는모습도보인다.해금강주차장에내리니멀리북한주민들이사는마을이보인다.우리

네마을과다른점은빨건글씨로조국통일이란표지판이보란듯세운표지판이다.

주차장에서언덕길을따라10분정도를내려가니해금강의절경이기다린다.사실솔직히말

하면동해안을따라길을가면이못지않은절경이한두곳은아니지만반세기동안금강

산과함께금단의땅이었다는것에이곳을찾아온더큰의미가있지않은지모르겠다.

<사진-해금강>

마침강한바람에밀려오는파도가해금강의단애에부딪치는모습은얌전한바다의모습보

다는시원스럽게느껴지지만그절벽쪽에북한군포대가있다며사진촬영을금지하기때문에

그절경을담아오지는못했다.사실금강산으로반입이허용된카메라가육안으로볼수있

는범위도못되는거의자동카메라수준인데촬영을불허한다는것자체가과다한통제가아

닌가생각된다.

<사진-해금강>

해금강을떠나다음에들른곳은주변경치에감탄한임금님께서삼일을쉬셨다갔다는삼일

포호수였다.성난파도가넘실대는해금강과는달리조용히산으로둘러쌓인삼일포의모습

이너무대조적이었다.호숫가의단풍관휴게소에는고구마와버섯등군것질거리를준비한

상인들이있었지만몰려드는인파를모두감당하기에는역부족이었다.상점진열대에는북한

의토종술과참기름등을팔고있었는데물건값으로치룬1달러짜리지폐가여기저기뒹구

는모습을보니몇년전1페니동전까지통용되던쿠바의하바나에있는상점생각이났다.

<사진-삼일포호수전경>

삼일포를산책하면서곳곳에김일성일가를찬양하는글과북한인민군군가인적기가의노랫

말이바위에새겨져있었다.삼일포산책로를따라호수전경이한눈에내려다보이는전망

대에오르니북한안내인이기다리고있었다.이곳에서삼일포를다함께내려다보면서삼일

포의유래를설명들으니김일성부자의얘기도나오는데,바로이곳전망대의이름이장군대

라고한다.

<사진-삼일포의유래를설명하는북측안내원>

이어진북한안내인처녀의설명도끝나자안내조장이북한안내인이노래를잘한다며노래를

청한다.이어서관광객들도박수로노래를청하여한곡뽑는데역시노랫말에는"백두산과

한라산…"이빠지지않는다.

삼일포를돌아보는동안산책로와등산로를보수공사하는주민들과만날기회가있었지만그

들은의식적으로우리와눈길을주지않으려는듯하였다.다만연세가많으신아주머니들은

작업중인여자들과마주치면악수를청하는데그제서야미소를지으면서"반갑습네다."하며

인사를할뿐,어째남자들끼리는담배하나권하면서얘기를붙혀볼그런분위기는아닌것

같았다.

<사진-삼일포주변공사를하는북한주민들>

해금강과삼일포관광을마치고온정각에돌아오니마지막쇼핑하는인파와사용하고남은전

자화폐를환불받으려는사람들로쇼핑센터는붐비고있었다.나는원래여행을다녀오면선

물을사지않고있는데장소가장소인만큼이북에서월남하신양가어른들께드릴평양냉면

사리와참기름,무공해땅콩세개와평양담배한박스를구입하였다.

<사진-삼일포단풍관휴게소의상품들>

버스가남쪽으로출발할시간이약1시간남아서우리일행은온정각앞에서단체사진을찍고

주변을둘러보았다.그중눈에띄는곳은얼마전자살한현대아산의고정몽헌회장의추

모비였다.이유야어떻든소떼를몰고군사분계선을넘어북한과교류의물꼬를튼선친정

주영회장의뒤를이어의욕적으로금강산사업을맡은정몽헌회장의자살사건은우리사회

에서큰충격을준사건이었다.의욕이앞서니절차상에서무리를둘수밖에없고,그에따

라위법도있었을테고말못할사정도있었을법하지만우리같은사람들이그내막을어떻

게다알수있겠는가.또금강산사업이무분별한퍼주기냐,아니면햇볕정책이냐는후세가

판정해주고그공과를가리겠지만,다만이용해먹을대로재벌들을이용해먹고나서관례

니합법적정치자금이니하며있는대로돈은받아먹고,문제가터지면모르는일이라발뺌

하는정치권들의행태에분노를느끼는국민들의입장에선어쨋거나그분이죄가있고없고

를떠나서그렇게생을마감하게되었다는것에무척아쉬운것은사실이었다.

<사진-고정몽헌회장의추모비>

둘째날구룡폭포등산로에서만난북한안내인이알듯말듯한불만을토로하였는데,우연히

온정각주변에서만난<남측>에서파견나온직원도비슷한불만을이야기하고있었다.금강

산관광이시작된지7년이지났지만자신들의근무여건은개선되지않는다는얘긴것같다.

그러고보니그들의숙소는여전히임시컨테이너를사용하고있으며외국도아닌데,근무지

여건상집에자주가지못하는것도큰스트레스라고한다.

<사진-곳곳에김일성일가를찬양하는구호가바위에새겨져있다.>

이젠금강산관광객이100만명을돌파한만큼초기에관광객들이느꼈던긴장감이나구속감

은많이완화되었다고한다.우리도첫날군사분계선을넘어월경심사를받기위해들른북

측출입사무소에서가까이본북한인민군들,그리고등산로에서간간이만난김일성뱃지를

단안내인들을볼때마다이곳이북한땅이란것을의식하였을뿐대체적으로2박3일의일정

은큰제한없이설악산이나속리산관광처럼지낼수있었다.또제한받을일들이란북한주

민들이나인민군들또한그들의마을에대해관심을갖는것들이니그들의요구대로그들이

싫어하는행동을하지않았으니원천적으로그럴필요가없는남한의관광지를다녀온바와

다를바없는것이었다.

그러면서도한편으로는학창시절선생님이무서워제대로맘껏놀아보고싶은충동을억제할

수밖에없었던모범생(?)들의수학여행처럼,북한주민들과가까이어울리며말한마디만

이라도진솔한대화를나누고싶었던욕구를억누를수밖에없었으니이번수학여행의재미

는애당초반감될수밖에없는것이기도하였다.

그러면서도마지막북한인민군초소를지나불과몇백미터전방의국군초소와태극기가보

이자우리가잊고있었던분단의아픔과우리들마음한구석에잠재해있던한가닥의긴장

감이확풀리는감을느낄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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