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의 55년만의 만주여행 (3)

호텔에짐을풀고우선아시아나항공사무실을찾아가감사의뜻을전하러갔습니다.전화로만통화를했던

조선족직원은무척반갑게맞아주었고3일의체류기간동안통역을맡아줄조선족여행사직원을한명소개

받았습니다.제생각에는아무리1시간30분의짧은비행이지만,그어느때보다도긴장된여행인만큼그

날은충분한휴식을하시기를권했지만눈앞에자신이근무하였던병원을두고서호텔방에서쉴만큼마음

의여유는없으셨던것같습니다.

우선통역이호텔방에도착하자장인어른은통역을맡은김양과미리준비한지도를대조해보면서옛날을

회상하시며찾아가보고싶은곳을말씀하셨습니다만번번히김양은머리를저으면서잘모르겠다는표정을

지어지켜보는제가안타깝기도하였습니다.그도그럴것이김양은길림성연길출신으로장춘에온지는얼

마되지않기에장춘의역사에대한것을알리가없었습니다.

이미시간은오후4시30분,비교적늦은시간이었지만장인어른의재촉에우리는만철병원을찾아서나섰

습니다.호텔방문을나서는저의어깨에는장인어른의55년만의만주방문을마치다큐멘타리라도제작하는

프로덕션의카메라맨처럼디지탈비디오카메라와육중한캐논620카메라가매달려있었고,장인어른의손에

는언제준비하셨는지,누가주인이될지도모를선물꾸러미를담은가방이들려져있었습니다.

택시를타고만철병원까지가는길은이미55년전의만주땅은아니었습니다.어디가어딘지전혀모르겠다

는표정을지으신장인어른의눈에가벼운경련이나기시작하였습니다.멀리서눈에익은건물이보이기

시작한것이었습니다.병원현관은정문에서상당한거리임에도불구하고장인어른은차에서내리시는것이

더욱급하셨습니다.그리고정문에서병원현관까지빠른걸음으로걸어가셨습니다.현관앞에걸음을멈춘

장인어른의눈가는벌써촉촉히적셔져있었습니다.감격해하시는모습이저까지가슴이뭉클해지는것을

느끼게하였습니다.만철병원은옆에별관이새로들어섰을뿐,예전과마찬가지의모습이었던것입니다.

바뀐것이라고는만주철도병원에서장춘철로의원(長春鐵路醫院)으로명칭만달라진것이었습니다.

서둘러현관을들어갔지만이미진료시간이끝나서직원들조차보이지않았습니다.장인어른은아무나가

운만입은사람을보면말을붙혀보려고따라가시고누군지확인도하시지않은채가져간선물을가방에

서꺼내주자그사람들은당황하였습니다.그들은아무한테서나선물을받는다는것이익숙하지않은정

도가아니라전무한경험인것이었습니다.마침복도에서한젊은여의사와만나이병원을찾아온사정을

설명하자우리일행은병원장한테안내되었습니다.

우리일행을맞은병원장은처음에는어리둥절했습니다.사전에통고된공식적인방문도아니고느닷없이

한노인이찾아와내가55년전에이병원에서근무했다며멀리한국에서일부러비행기를타고찾아왔다

고하니그럴만도했을것입니다.병원장은55년만에찾아온병원선배를자기의집무실로안내하였습니다.

그러면서한국에서55년만에선배가찾아왔다는것에무척반가움과동시에자랑스럽다는뜻을밝혔습니다.

그런데기적과같은일이벌어지려고하고있습니다.장인어른은당시함께근무한중국인여의사의Dr.長

의얘기를하시는데통역을통해그말을전해들은병원장은그분이얼마전까지근무하다정년퇴임하였다

는말을한것입니다.이럴수가!장인어른은그때그여의사한테중국어를배웠다며그때배운중국어를

몇마디기억하자병원장은놀라며인적사항을계속확인하였습니다.그런데그여의사는동생이치과의사

라는것까지일치하였습니다.그러자곧병원장은핸드폰을꺼내그여의사한테전화를하였습니다.장인

어른은완전히흥분하셔서제가옆에서지켜보며그장면을카메라에담기만할수가없을정도로건강이

걱정이되었습니다.

그런데옆에서장인어른의얘기와병원장의얘기를통역을통해들으니이상한점이있었습니다.장인어른

의연세가82세인데,장인어른은만철병원에서첫사회생활을하셨다면그중국인여의사는최소한장인

어른과동갑이될텐데최근에은퇴하셨다는것이어쩐지이상하게들렸습니다.마침전화로확인하려던중

인여의사는베이징으로여행을가서없는데닷새후에돌아온다고하자,장인어른은체류기간까지이틀

연장하여Dr.長을만나보려하시는것이었습니다.그리고중국인여의사한테배웠다며중국노래를읊기까

지하셨습니다.

<사진-장인어른께서한잡지에밝히신만철병원에함께근무한중국인여의사Dr.張에대한회고>

순간고민하게되었습니다.처음에는장인어른의기대가무산되는것이안타까워모른채하고넘길려고했

지만중국인여의사를만나고가시겠다고하니사실확인이필요하게된것입니다.저는통역을맡은김양

을통하여중국인여의사의나이를확인해보니그때서야병원장의얘기와장인어른이말씀하신중국인

의사의나이에열다섯살이나차이가나는것이었습니다.

참기이한일이벌어진것입니다.워낙중국의인구가많다고는하지만같은성을가지고자매가직업까지

같은사람이같은병원에서시차를두고근무하였던것입니다.이런사정이밝혀졌을때실망하시는장인어

른의모습이보기에안스러웠지만어쩔수없는일이었습니다.하지만그일을계기로병원장은다음날원

무과직원을시켜서1942년부터1944년사이에근무한직원의생존여부를알려주겠다는약속을하였습니다.

그리고오신김에엣추억을되살리며병원을구경하고가시라며,직접소아과병동에전화를하여소아과

과의료진들은퇴근을하지말라고지시하며앞장섰습니다.

소아과병실에는전화로내용을전해들은의료진들이모여있었는데의사와간호사의구분이없어서누가

의사고누가간호사인지몰랐습니다.장인어른은만철병원당시의일을회상하면서일본이얼마나조선족

과중국인을차별하였는지를설명하시고그때어려웠던일,그리고보람있었던일을얘기하여주시며후배

의사들과다정한시간을갖게되었습니다.

저로서는참다행이었습니다.그이상의기적이일어나서장인어른이감정을추스리지못하시게되면건강

이염려되었기때문이었습니다.그날장인어른께서준비한선물을모두내놓으시며여기근무하는모두가

내후배이니선배의정성을받아달라며건네주었습니다.

지금은장춘철로의원으로명칭만바뀌었을뿐,55년전의추억을되살릴수있었던불과2시간도채안되는

만철병원방문은이번여행의목적을100%달성한것이나다름없었습니다.장인어른의추억담은직원들의

퇴근시간에쫓겨서병원현관으로나와서도이어졌지만,아쉬움이남은장인어른은병원가족들을다음날점

심식사에초대를하시고,후배들의배웅을받으면서병원문을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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