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국에서 만난 어느 노숙자

#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은 고려대학교 공학부 4학년에 재학중인 우리 큰 아이가 여행을 하면서 느낀 바를 고려대학교 고대신문에 연재한 글을 옮긴 것 입니다.

[독자투고] 나를 찾아 떠난 여행 – (1) 샌프란시스코

세계 최강국에서 만난 어느 노숙자

지난 해 1월, 방학을 이용하여 잠시 어학연수를 갔을 때의 일이다. LA와 함께 미서부 최대의 도시로 손꼽히는 샌프란시스코는 미국내에서도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도시 이다. 많은 부자들이 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쯤되면 벌써 삐까뻔쩍한 고층건물들과 고급스러운 주택들, 그리고 세련된 옷차림과 당당한 발걸음의 사람들을 떠올릴 법하다. 하지만 하나 놀랄만한 점은, 이러한 도시에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홈리스(Homeless)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는 서울역이나 특정지역에 가야지만 노숙자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도심에도 많은 홈리스들이 구걸하고 있다. 서울로 따지자면 시청 앞에서도, 명동에서도, 강남역 주변에서도 집이 없어 갈 곳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밤낮을 가리지않고 배회한다는 것이다. 흑인도 많지만 예상 외로 백인들도 많이 있었다. 그 홈리스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동냥을 한다.

<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유명한 언덕길인 Powell Street>

 

보통 ‘배가 고프니 1달라만 달라’, 혹은 상가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 좀 주면 안 되겠느냐’는 식으로 말을 건낸다. 밤에는 정말이지 길을 걸어다니면 약 5분마다 한 명씩 나에게 말을 건낸다. 그렇다고 그들이 매우 위험한 존재라고는 볼 수 없다. 다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동냥을 요구하다 보니 나중엔 좀 지치기까지 한다. 대부분의 홈리스들은 돈을 주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또 다른 길을 가고, 만약에 돈을 주지 않고 미안하다며 그냥 지나치면 자신도 더 이상 동냥을 하기 위해 달라 붙지않고 가던 길을 간다. 반면에 뉴욕 등의 동부 대도시의 경우는 다르다. 그곳의 겨울은 미서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 겨울의 서울보다도 춥기 때문에 맨 정신으로는 길거리에서 생활하기 어렵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동북부의 홈리스들은 마약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매우 공격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상당히 위험한 편이지만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노숙자들은 치안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까지는없다.

<유명 인사들이 주로 숙박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호텔>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약 3주간 머물렀을 당시에는 그동안 한국에서 본 홈리스들보다 더 많은 홈리스들을 만난 것 같았다. 세계 최강국가 미국의 또 다른 어두운 모습을 보는 듯했다.  물론, 홈리스들 중에서는 일하기가 정말 싫어서 그렇게 된 사람들도 있지만,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들도 많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베테랑들도많고 – 베테랑에 대한 복지수준이 형편없어서 대도시 등에서는 시위및 모금활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가족없이 혼자 일하며 살다가 불의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홈리스가 된 사람들도 있다. 내가 그사람들이 홈리스가 된 이유를 다 알수는 없으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현재 그들은 돈 없이 집도 없이 떠도는 불쌍한 사람들 이다. 이유에 상관없이 그런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도와 주면서 살아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 이지만, 항상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난 그곳에서 묘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달라 지폐 하나가 그리 큰 돈은 아니다. 하지만, 여행객들은 이런 작은 돈 하나 하나에도 신경이 쓰이기 마련 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진 않겠지만 나 같은 배낭여행객들은 밥 한끼를 먹어도 가격이 크게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고 그 당시에는 정말 단돈 1달라 마저도 신경이 쓰일 경우가 많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많은 홈리스들이 나에게 동냥을 했다. 하지만 난 위와 같은 생각에 무심코 그들을 외면했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 바로 앞에도 홈리스가 한 명이 있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사람이 와서 맨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그는 다른 홈리스들 처럼 동냥을 하지는 않고 단지 측은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기만 한다. 어느날 그와 눈이 마주치고 난 상당한 혼란을 느꼈다. 그래도 지금까지 정말 나 혼자만 잘 살지는 않겠다고, 불쌍한 사람들 보면 조금이라도 돕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던 나였는데, 막상 나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수 많은 홈리스들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측은한 마음만 느꼈지, 단돈 1센트 하나 준적이 없었다. 물론, 어디를 가나 너무 많은 홈리스들이 있기에 내가 그들을 다 돕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평상시 나의 생각과 지금의 나의 행동이 전혀 일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나서 일종의 죄책감 마저들었다.

< 언덕으로이뤄진도시,샌프란시스코의시내>

홈리스들이 어떤 이유로 인해 홈리스가 되었는지 난 모르고, 그 숫자가 너무 많아 내가 일일이 다 도와줄 수 없다는사실도 안다. 하지만 그런것들 다 떠나서, 결과적으로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난 측은한 마음만 느끼고 행동으로는 조그마한 것 조차 실천하지 못한 생각만 잘난 놈이란 것을 알게됐고, 그런 내 모습을 보았을때,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내 자신에게 화가나기 시작했다. 숙소 옆에 앉아 있던 그 사람에게 나는 그날밤, 스타벅스에서 핫초코 하나를 사다 주었다. 그도 나의 호의가 뜻밖이었는지 고맙다는말과 ‘God bless you’라는 말을 계속하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돈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날밤엔 유난히 날씨도 쌀쌀했고, 그사람에게는 돈 몇푼보다는 따뜻한 차 한잔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라도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내 능력도 한계가 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은 그렇게 따뜻한 음료수 한 잔, 동전 몇 푼, 아직은 거기까지다. 내가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희생하면서까지 그들을 도와준다면 난 어쩌면 그들에게 정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들을 도와줄 용기가 없다. 어쩌면 난 누릴것은 다 누리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로만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그런 ‘헛 똑똑이’일지도 모른다. 헬렌켈러가말했다.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어도 무언가는 할 수 있다고.  내가 할수 있는 무언가가 그 홈리스에게는 하나의 작은 정성으로 비추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고대 학우들도 항상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에게 모든 것은 아니더라고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살았으면 한다. (김우진·공과대기계04)

45thstreet@gmail.com

 

2006년04월10일

http://www.kunews.ac.kr/news/search.php?qrel=5&query1=ku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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