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돈무앙공항의 추억

태국의 옛관문공항인 방콕돈무앙공항의 이름이 오랜만에 외신을 타고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북한의 밀수품무기를 실은 우크라이나의 수송기가 급유를 위해 돈무앙공항에 착륙하였다가 공항당국에 의해 발각된 것이다. 이 수송기는 방콕과 스리랑카에서 중간급유를 받고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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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무앙공항 전경, 두 활주로 사이에 골프 코스가 보인다. (양곤-수완나붐 기내에서 2007년8월 촬영)

 

돈무앙공항은 1914년 개항한 거의 한세기의 역사를 지닌 유서깊은 공항이다. 비록 2006년 방콕의 신공항 수완나품공항이 개항하면서 화려했던 역사를 마감하는듯 했지만, 수완나품공항의 부실공사로 제기능을 하지 못하자 할 수 없이 국내선 일부 노선을 돈무앙으로 다시 옮겨 상용공항의 명색을 이어나가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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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콕 돈무앙공항 전성시대, 이륙 준비중인 항공기들이 줄지어 활주로를 향하고 있다. 2006년 8월 >

내가 처음으로 방콕 돈무앙공항에 내린 것은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던 1988년 겨울이었다. 그때 올림픽을 치루는 나라에서 국민들의 외국여행을 금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국내외의 따가운 시선에 따라 일반국민의 해외여행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면서 경유지였던 홍콩공항에 이어 두 번 째로 밟아본 외국공항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김포공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돈무앙공항의 엄청난 크기에 놀라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을 실감할 수도 있었는데, 그 이후 외국여행을 하면서 매년 방콕공항을 서너 번 경유하게 되어 돈무앙공항은 내게 가장 많은 추억을 남기고 있는 가장 친숙했던 공항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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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륙중인 기내에서 본 골프코스의 모습, 항공기 이착륙에 상관없이 플레이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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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장 옆의 활주로를 따라 이륙하는 쿠웨이트항공의 A340 여객기의 모습이 보인다. >

그런데 방콕의 돈무앙공항은 공항구조가 재미있는 곳이다. 국적기를 이용하여 태국을 찾는 승객들은 보지 못했겠지만, 방콕의 돈무앙공항의 평행한 두 활주로 사이에는 골프장이 있다. 공항단지내에 골프장이 있다면 몰라도 활주로을 따라 골프장이 있다는 것은 의외다. 공항당국이 어련히 알아서 결정했으련만 타이거우즈 정도의 장타를 날리는 골퍼가 만일에 OB를 낸다면 이착륙하는 항공기에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걱정을 하곤 했다.

골프장의 진입로는 두 활주로를 잇는 유도로를 건너게 되어 있다. 따라서 항공기가 유도로를 따라 이동하면 진입로에는 기차건널목처럼 차단기가 내려져 차량통행을 막는 모습도 가끔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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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활주로를 연결하는 유도로(Taxiway) 건너질러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차단기가 있다. >

지난 여름휴가때에는 라오스로 가는 길에 일부러 돈무앙공항을 찾아가 보았다. 방콕의 수완나품공항에서 라오스의 비엥챤(Vientiene)까지 논스톱 항공편이 있지만 일부러 돈무앙에서 라오스의 접경도시 우돈타니로 가는 국내선을 이용하였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방콕-비엥찬의 직항요금보다 돈무앙-우돈타니의 저가항공을 이용하면 요금이 훨씬 절감되면서 태국-라오스국경을 메콩강 국경다리를 건너는 체험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돈무앙-우돈타니를 운항하는 타이항공의 자회사인 저가항공 Nok Air의 깜찍한 모습에 내 마음이 끌렸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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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나품신공항의 부실공사로 인해 돈무앙공항의 국내선터미날을 개장하였지만 한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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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공항의 계류장에 새 주인을 기다리는 듯한 벌거벗은 소속불명의 여객기들이 보인다. >

국제선이 철수하고 국내선 일부만 남은 돈무앙공항의 모습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체크인 카운터도 게이트앞 탑승객대기실도 한산한 모습이다. 할 일을 잃어버린 국제선 Concourse의 탑승브릿지도 녹이 슨듯 고철덩어리로만 보인다. 멀리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기다리고 있는듯한 정체불명의 헐벗은 비행기들도 보인다. 비록 돈무앙공항이 부활했다고는 하지만 명예로운 절차이기 보다는 못난 동생(수완나품신공항) 때문에 꺼져가는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듯한 안스러운 모습이니 씁쓸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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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대기 항공기로 북적대던 돈무앙공항국제선터미날의 한산한 모습 >

그래도 한 세기를 통하여 태국의 관문공항으로 역할을 다한 화려했던 시절을 구가했고 지금의 초라한 모습이 돈무앙의 탓은 아닌 만큼,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곳에 꽃이 핀듯한 겉모습만 번드르한 우리나라 일부 지방공항에 비해서는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공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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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의 저가항공사 Nok (새) Air의 깜찍한 모습. 방콕의 돈무앙공항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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