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리턴’사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대한항공의 조현아 전 부사장이 결국 구속되었다. 지난 12월8일 뉴욕공항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조현아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이 보여준 추태 때문에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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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사건은 구속까지 갈 사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재벌 상속녀의 갑질’로 부각되어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냉정하게 그 과정을 들여다 보면 최근 종영한 드라마 미생에서 나오는 마부장과 같은 성질 고약한 직장상사의 히스테리에 의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같은 고용인인 부장과 과장, 대리가 아니라 가해자가 로얄패밀리로 부르는 오너 가족이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사건 당시의 뉴욕 J.F.Kennedy 공항 … 가장 한가했던 시간에 발생

사건이 발생한 곳은 세계 최대의 상업도시인 뉴욕의 J.F.Kennedy 공항이다.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뉴스프로그램에 출연한 패널이 뉴욕공항이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공항 중의 하나인데 대한항공 때문에 다른 항공사들도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며 이 문제가 미국에서도 사법처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뉴욕에는 케네디공항, 라과디아공항과 인근 뉴저지의 뉴왁공항까지 대형공항이 3개나 있어 케네디공항은 항공기 이착륙수를 기준으로 세계에서 17~19위에 오르는 공항이다. (인천공항은 30위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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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 J.F.Kennedy 공항, 네모 표시된 곳이 대한항공이 사용하는 제1터미날 이다. – 자료출처 : 미국 FAA 저작권이 공개된 사진화일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시간이 자정이 넘은 새벽 1시 경으로 자정부터 새벽3시 까지 케네디공항의 항공편은 모두 15편 정도로 이중 대한항공이 이용하는 터미날1의 경우 대한항공이 이날 마지막 항공편이어서 대한항공 KE086편의 램프 리턴 때문에 케네디공항이 큰 혼잡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KE086편 얼마나 멀리 이동해서 되돌아 왔나 ?

램프리턴 사건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논란 중의 하나는 리턴을 한 지점이 될 것 같다. 항공기는 자력으로 후진을 하지 않는다. 항공기가 출발할 때는 토잉카 또는 토잉 트랙터가 항공기가 자력으로 나갈 수 있는 위치까지 뒤로 밀고 나가 진행방향으로 방향을 전환시킨 후에 항공기가 자력으로 이동하게 된다. 공항은 항공기의 이동로 자체가 직진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 유도로(taxiway)나 활주로(runway)에서 되돌아 나오려면 멀리 우회하여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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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잉카에 의해 이동하는 대한항공 A380기, 인천공항에서 촬영

대한항공이 처음에는 램프에서 10m 이동한 지점에서 되돌아 왔다고 하는데 언론보도에 의하면 대한항공이 축소 보도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램프리턴으로 지연된 출발시간이 20분 정도였다는 것을 보면 항공기는 주기장에서 벗어 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만일 항공기가 이미 주기장을 벗어나 유도로를 향하고 있었다면 램프리턴을 위해서는 토잉카를 다시 동원하든지 멀리 우회해야 하고 램프 접안을 안내할 지상요원(marshaller)를 준비시켜야 하는데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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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wing카로 항공기를 주기장 한 가운데로 옮긴 후(push back) 토잉카를 떼어 내고 항공기의 이륙을 지켜보는 항공유도원들(Marshallers), 타이베이 쑹산국제공항.

이번 사고조사에서 기장에 대한 얘기가 없는 것이 의심점이기도 하지만 부사장의 지시가 있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사무장의 램프리턴 요청에 기장이 무리가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기에 램프리턴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항공법의 항로변경에 해당하나 ?

그렇다면 과연 이 정도 가지고 항공법의 항로변경위반을 걸고 넘어질 수 있는 일인가 ? 이는 변호사나 판검사 등의 법조인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일반인으로서는 상식에 준해서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항공기가 주기장을 벗어나 유도로나 활주로에서 이륙을 대기하던 중에 발생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마 그런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부사장이 무서워도 사무장이 기장한테 게이트로 되돌아 가라는 요청을 했을리도 없고 기장도 그런 요구를 들어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 조현아 전부사장에 대한 사법처리의 가능성을 얘기할 때 항로변경 얘기가 먼저 나온 것은 아니었다. ‘땅콩리턴’ 사건의 본질이 재벌상속녀의 갑질로 밝혀지면서 조 전부사장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처벌할 방법을 찾다가 항로변경에 의한 사법처리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즉 조 전부사장의 부적절한 행위 자체가 사법처리 대상이라기 보다는 얄미운 짓을 한 사람을 처벌할 방법이 없을까 찾아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KE086편 기내에서 폭력이 있었나 ?

사실 이 사건이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대국민사과와 이어 조현아 전부사장이 국토부조사에 앞서 기자들 앞에서 죄송하다는 사과의 표현을 할 때 순간의 잘못으로 곤혹스런 입장에 빠진 조 전부사장한테 동정심까지 일면서 어느 정도 수그러 들 것 같았다. 그러나 꺼져가는 불씨를 살린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조현아 전 부사장이었다. 조 전부사장이 국토부조사를 받고 귀가하는 길에 승무원에 대한 폭력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조 전부사장은 폭력이 있었다는 것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며 마치 남의 일을 말하는 태도에서 여론은 다시 들끓기 시작하였다. 사실 당시 기내에서는 ‘단원고 유가족 대리기사 폭행사건’과 같이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은 폭력은 없었지만 회장의 딸이자 부사장의 승무원에 대한 행동은 직접적인 물리적 신체접촉은 없었어도 승무원들이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정도로 엄연한 언어폭력에 해당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아마 ‘폭력’을 부인한 것은 본인의 뜻 보다는 주변에서 사법처리 대상이 될 만한 사안은 무조건 잡아떼라는 조언을 받은 것이겠지만 꺼져가는 불씨에 소방호수가 아닌 주유소 급유호스를 들이 댄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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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콩리턴’ 사건이 벌어진 대한항공 A380 일등석 객실, 2011년 6월 촬영

 

대한항공의 실수 1 …… 디지탈시대에 아날로그식 대응

이 사건에 대응하는 대한항공의 대책은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었다. 동승했던 일등석승객을 회유하려 했던 일이나 사무장의 입을 막으려 한 일은 인터넷 등의 소셜미디어가 없는, 권위주의가 판쳤던 70, 80년 대에서나 있었을 법한 방벙이었다. 몇년 전 라면상무파동때 소셜미디어의 위력을 느꼈을만한 대한항공이 이번 일에는 당사자가 부사장이라는데 얽매여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대한항공의 실수 2 …… 회사 이미지 실추보다 중요했던 회장의 딸 구하기로 화를 불러

대한항공의 가장 큰 실수는 ‘땅콩사건’으로 이미지가 실추되어 위기에 빠지는 회사를 살리는 것 보다는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무시하고 조현아 전부사장 구하기에 전념했다는 점이다. 조 전부사장이 국토부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폭력’은 없었다고 부인하는 것도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한 꼼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폭력’을 시인하면 국민들의 분노는 가라앉겠지만 구속될 가능성이 있으니 여론의 비난을 받더라도 구속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르는 일이다. 대한항공의 한 임원은 국토조사부 조사관과 내통하고 있었으며 대한항공 직원의 관련 이메일을 삭제하도록 지시하는 등 증거인멸의 정황이 들어난 것은 문제를 더욱 확산시키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조현아 게이트로 번진 땅콩리턴 … 사건의 본질 보다 감추려 했던 것이 화근을 불러

결국 ‘땅콩리턴’ 사건은 닉슨이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 올리게 되었다. 워터게이트 사건도 공화당이 민주당 선거사무소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다 발각난 사건이었지만 닉슨과 백악관이 이를 은폐하려고 시도하여 대통령이 중도에 사임하게 만든 초대형 정치스캔들로 번졌던 것 처럼 ‘땅콩회항’ 사건도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일을 대한항공 임원들이 관련 승객과 승무원을 회유하고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은 ‘땅콩회항’ 보다 더 죄질이 나빠 결국 대한항공 임원과 국토부 관계자 및 그들이 그렇게 지켜주려고 했던 조현아 전부사장까지 구속되게 만들었다.

죄는 별것 아니데 사람이 미워진 ‘땅콩리턴’ 사건

흔히 죄는 미원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데 이번 땅콩회항사태를 보면 죄는 별 것 아닌데 사람을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상항이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는 ‘폭력’ 이란 법률적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모든 국민이 인지하고 있는 포괄적인 ‘폭력’까지 부인한 조현아 전부사장의 잘못된 판단은 스스로의 모습을 더욱 추하게 만들고 말았다.

국민정서법 … 또 다른 갑질은 아닐까 ?

이렇게 ‘땅콩리턴’ 사건의 전개를 되돌아 보면 여론에도 문제는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분명 조현아 전부사장의 기내에서의 행동은 비난 받아야 할 추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조사 받는 과정에서 사과를 하면서도 폭행은 아니었다며 발뺌을 하는 모습은 분명 죄보다 사람이 더 미워지게 된 경우였다. 그러나 단순히 밉다는 여론에 밀려 무리하게 항공법을 적용시켜 구속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분명 이런 막연한 국민정서법은 또 다른의 갑질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된다.

 

대한항공의 처벌 ? 

땅콩리턴으로 대한항공에 대한 제재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이미 여론에 의해 미국의 교포사회에서는 대한항공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대한항공의 제재는 벌금이나 운항금지조치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문제도 대한항공이 자초한 일이다. 처음부터 조현아 전부사장 깨끗이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를 했으면 조현아 개인의 문제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데 대한항공은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토부 로비와 승객 및 승무원에 대한 회유작업을 벌이고 관련 이메일을 삭제할 것을 지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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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은 초대형점보기 A380 10대, B777 37대, B747 36대를 포함하여 154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대한항공의 시스템이 승객을 무시하거나 관련법규를 위반한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우리가 땅콩리턴 사건을 비난한 핵심 중의 하나는 10% 정도의 최대주주 일가가 대한항공이란 대기업을 개인기업을 다루듯이 전권을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조현아 전부사장의 대한항공은 지분은 미미한 수준이며 가족의 지분을 합해도 10%에 불과한데 이 사건과 무관한 90%의 주주들에 대한 처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불매운동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대한항공은 지금 세계적인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했다. 그 성장의 원동력은 CEO의 탁월한 경영능력도 있겠지만 승무원을 비롯한 직원들의 노력도 무시하면 안 된다. 땅콩리턴 문제로 대한항공이 제재를 받는다면 대한항공의 해당 승무원은 이중으로 제재를 받는 셈이다. 운항금지조치도 현실적으로 대한항공에 대한 제재 이전에 승객들의 불편을 초래할 뿐이다.

대한항공이 대주주 가족이 저지른 일에 조직적으로 관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지만 대한항공의 정책이나 시스템에 의한 승객들의 불만이 아니라면 대한항공은 땅콩리턴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켜줄 만한 우리나라의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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