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탕의 유래

(서론)  지난 주 채승우 기자님의 ‘채승우의 두 컷 세계기행’에 낯익은 사진이 등장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수 백년 된 함맘(이슬람사회의 공동목욕탕)이다. 쉽게 말하면 진짜 ‘터키탕’ 이다. 오스만터키가 16세기 헝가리를 지배했을 때 세워졌다고 하니 거의 500년 가까이 된다. 한편 1990년 로마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한 세기의 ‘The Three Tenors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의 공연장인 카라칼라도 고대로마시대의 목욕장터였다.

이슬람사회를 여행하다보면 바자르(재래시장)와 함맘(공동목욕탕)이 그들 사회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집트와 터키에 남아 있는 오래 된 함맘을 둘러 보고 문헌을 찾아 보면 고대로마시대나 함맘의 전성기의 목욕문화가 우리나라의 대형 대중목욕통과 비슷하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다음 글은 2004년에 조선블로그에 올렸던 것을 재구성하여 소개한다.

 

chobl-bath-hammam-nevsehir

< * 터키 Nevsehir의 한 함맘, 가운데 8각형 대리석 돌판에 누워서 쉬거나 마사지를 받는다. 2000년 6월 촬영 >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바그다드를 점령했다는 소식(2003년4월)을 전하면서 바그다드의 대통령궁을 점령한 미군들이 대통령궁에서 목욕까지 하였다는 기사가 소개되었다. 이는 은연중 물자부족에 헐벗은 일반국민들의 생활과는 달리 후세인의 사치스러움을 강조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사막의 라이온’ 등의 영화에서 보듯 아라비아반도와 페르시아만은 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사막지대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목욕문화는 고대로마, 그리이스시대부터 시작된다. 그리이스시대의 유적은 대부분 폐허로만 남아 있지만 로마시대의 유적들은 폐허 속에서도 그 자취를 엿볼 수 있는 것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형극장과 목욕탕터 이다. 언젠가 로마월드컵 때에 세기의 Three Tenores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가 처음으로 합동공연을 한 로마시내의 공연장인 ‘카라칼라’도 로마제국 카라칼라황제가 세운 대형목욕탕터전인데 지금은 그 흔적만 간간이 남아 있지만, 그 유적을 배경으로 운치 있는 공연장을 만든 것 이다.

 

chobl-bath-rome-caracala

< * 고대로마제국시대의 공동목욕탕터전 Caracala, 로마시내 콜로세움 근처에 있다. 1990년 로마월드컵때 “The 3 Tenors” 공연한 장소 >

 

고대로마제국의 목욕탕 . . . . . 남자들의 사교장소

현재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목욕탕터전을 둘러 보면 고대그리이스, 로마인들은 열탕과 함께 뜨거운 증기욕 등 지금 못지 않은 다양한 방법의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구조의 목욕탕은 앙카라에 남아 있는 로마목욕탕 유적에서 지금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로마제국시대의 초기에는 주로 왕족과 귀족들을 위한 목욕시설이 있었지만 B.C.25년 Agrippo황제에 의해서 일반시민을 위한 목욕탕이 세워지면서 이른바 대중목욕탕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처음 등장한 대중목욕탕은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체력단련실, 식당 등이 부속으로들어서면서 목욕탕은 단순히 몸 만 씻는 곳이 아니라 남자들의 사교장소로 이용되어 고대로마인들의 종합레저타운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chobl-bath-ankara

< * 터키 앙카라시내에 있는 고대로마시대목욕탕터전, 2000년 6월 촬영 >

역대 로마제국의 황제들 중에서 목욕탕건설에 적극적이었던 사람으로는 폭군으로 악명을 떨친 네로황제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등도 포함된다. 당시와 지금의 윤리적 잣대로 단순비교는 곤란하겠지만 어느 정도 퇴폐적인 분위기도 지금 못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내용은 포르노영화같기도 하지만 형편없는 영화로 넘기기에는 워낙 유명한 배우 피터오툴이 출연한 영화 Caligula에서 당시의 문란한 목욕문화를 엿볼 수 있다.

 

고대로마제국목욕탕시스템 . . . . . . 우리나라 대형목욕탕에서 부활 

로마시대 목욕탕의 주요시설을 보면 apodyteria(탈의실), frigidarium(냉탕), tepidarium(온탕), calidarium(열탕) 등과 우리나라의 한증막과 같은 laconicum, 체력단련시설인palestr-ae(피트니스룸),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수면실, 시를 읊거나 독서를 할 수 있는 휴게실, 소규모 공연을 위한 극장, 파티를 위한 연회실 등을 갖추었다고 한다.

chobl-bath-hammam-istanbul

< * 터키 이스탄불 터키탕의 내부, 탈의실, 휴게실 등이 별도로 있다. 아침 문을 열기 전 주인의 허락을 받아 내부를 촬영했다. >

목욕도구로도 strigil이라 불리는 S자형으로 굽은 금속판인 때밀이 도구가 있었으며 맛사지사에 의해 맛사지도 받았다고 하니 이것도 우리나라의 이태리타월과 때밀이의 원조인 셈 이다. 이쯤 되면 냉탕과 열탕을 번갈아 드나들고 때밀이한테 때를 밀며 뜨거운 목욕탕 바닥에서 누워 몸을 지져 목욕을 마친 후 휴게실로 나와 사람들이 벌거벗고 왔다 갔다 하는 곳에서 손톱 발톱을 깎으며 삶은 계란이나 자장면까지 배달해서 먹는 우리나라의 동네 목욕탕과 비교해 보면 비록 품위에서야 차이는 있겠지만 어쩌면 고대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로마제국의 목욕문화가 우리나라에서 부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슬람사회의 목욕시설 . . . . . . 함맘 Hammam, 종교적 목적에서 시작

역사적으로 화려한 시절을 누렸던 로마제국에서의 목욕문화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넘기겠지만, 척박한 땅과 모래사막 뿐인 아라비아에서의 목욕이라면 어찌보면 거리가 멀고 사치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아랍지역은 물이 귀한 곳이기는 하지만 모래열풍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한테도 목욕은 어느 생활습관보다도 중요한 일 이었다.

 

chobl-bath-hammam-cairo

< * 이집트 카이로 구시가의 바자르에 있는 함맘의 내부,  아직 지역 주민들의 사교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2002년 촬영 >

 

그러면서 7세기에 무하마드가 알라의 계시를 전해 받고 이슬람교를 창시하여, 무하마드가 예배전 몸의 청결을 강조하자 아랍사회에서는 함맘이라 불리는 목욕문화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요즘 터키 뿐 만 아니라 오스만터어키제국이 점령하였던 유럽의 일부 도시에 남아 있는 터키탕도 이슬람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어로 함맘은 열의 전파자라는 뜻으로 무하마드는 함맘의 열기가 번영과 증식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그때까지는 아랍사회에서는 찬 물로만 샤워를 하는 정도였다. 아마 몸을 담글 정도의 충분한 물을 얻기가 어려워서 그랬을 것같다. 그 후 아랍세력이 시리아와 북아프리카 등 로마제국시대의 식민지를 차례 차례 점령하자 로마시대에 세워진 목욕탕을 보고 뜨거운 증기욕을 받아 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알콜성 음료를 금지하는 이슬람사회에서는 여가생활의 대체적인 수단으로 받아 들여졌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chobl-bath-mosque

< * 이슬람사원(Mosque)에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손과 발 등 몸을 청결히 하도록 간이 목욕탕시설을 갖추고 있다. >

 

아랍이 이러한 고대로마제국시절의 목욕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독특한 방식으로 아랍사회에 맞게 변형되었고, 위생과 청결을 강조하는 이슬람 법에 따라 모든 이슬람사원은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기 전에 몸을 씻을 수 있는 간이 목욕시설을 설치하였다. 로마시대에서는 목욕의 마지막 절차가 독서실이나 연회실에서 끝났지만 아랍의 함맘에서는 목욕이 시작된 탈의실이 있는 휴게실로 나와 모여 앉아 차를 마시거나 잡담을 건네며 몸의 물기를 마르게 한다. 로마시대의 목욕탕과 마찬가지로 함맘도 단순한 목욕시설이 아닌 사교적인 장소로 자리잡게되어 함맘은 수크라 불리는 재래식 시장과 함께 아랍마을의 중요시설로 자리잡게 되었다.

로마제국시절에는 목욕문화가 종교와는 상관이 없었지만 아랍의 경우는 목욕과 잡담을 즐기는 외에 종교적인 정화목적으로 함맘을 이용하였다. 아랍문화의 산물인 함맘은 로마제국시대의 목욕문화를 접목시켜서 오스만터어키시절에는 이른바 터키탕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는유 럽에도 Turkish Bath 터키탕의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물론 오스만터어키가 지배하지 않았던 영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에도 19세기에 들어서 터키탕이 소개되었지만, 한때 오스만터어키가 지배하였던 헝가리에는 아직도 예전에 사용되었던 터키탕이 지금도 계속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chobl-bath-hammam-kiraly

<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450년된 터키탕 Kiraly, 오른쪽 돔지붕이 증기탕이고 왼쪽 녹색건물이 마사지실 이다.  2007년 3월 촬영 >

 

함맘은 마을의 사교생활의 한 부분이므로 자신의 집에 개인목욕시설이 있는 부자들도 함맘에는 자주 들렀다고한다. 함맘은 이슬람사원과 정부의 도움으로 지어지기도 하지만 부자들이나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도 속죄의 표시로 함맘을 지었다고한다. 초기 함맘시대에는 여자들은 함맘을 이용할 수 없었지만 위생효과가 너무나 탁월하여 여자들도 병후 또는 산후 조리에 함맘의 이용을 허용하였다고 하며 지금 남아 있는 함맘도 요일을 구별하여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가며 함께 사용하고 있다.

 

chobl-bath-after-delivery-care

< * 터키 이스탄불의 함맘 휴게실에 걸린 그림, 산모가 아이를 낳은 후 함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 흑인 하녀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

Hammam의 쇠퇴 . . . . . .  

1800년대 중반부터 서구사회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부자들이 스스로의 현대식 목욕시설을 집안에 갖추게 되자 함맘을 지원하는데 인색해지게되고 가난한 자들만 이용하게 되자 함맘의 운영이 어렵게 되었고 오래된 건물을 수리하거나 유지하는 등 직접적인 운영비도 만만치 않게 되어 요즘은 아랍의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자취를 감추고 있는 추세다.

chobl-bath-hammam-damascus

< 시리아 다마스커스 시내에 있는 함맘과 내부 모습, 휴일이라 내부 사진촬영이 가능했다. 2010년8 월 촬영>

 

지금 남아 있는 함맘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스탄불의 구시가지에 있는 것으로 터어키탕의 원조를 주장하며 영업하는 곳이 몇 군데 된다. 그 외에 요르단이나 시리아 등에서 그 명맥을 찾아 볼 수가 있지만 웬만한 가정에서도 목욕시설이 갖춰지면서 남아 있는 함맘, 터키탕들은 목욕하러 찾아드는 사람은 줄어들어가는 추세고 호기심에서 찾아 온 관광객이나 은밀한 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 이곳을 찾아 이용하는 사람들은 시선관리를 잘 할 필요가 있다.

 

chobl-bath-hammam-damascus-inside

< * 시리아 다마스커스 시내의 한 함맘, 상체를 벗은 사람이 마사지맨, 좀 짓궂은(?) 사람이다. 2010년 8월 촬영 >

 

2 Comments

  1. manager

    2016년 11월 29일 at 6:16 오후

    김동주 원장님 안녕하세요.
    편지 쓰기 좋은 계절을 맞이하여 시작된 포토엽서 이벤트가 15회차를 맞이하였습니다.
    양재천 사진사님의 추천으로 김동주 원장님께서 15차로 선정되셔서 포토엽서를 보내드리고자 하오니 주소와 연락처, 성함 및 다음 추천자와 추천 사유를 다음 주소에 비밀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http://blogs.chosun.com/mblog/984
    약소하지만 지인분들과 소식 나누시는데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 다음 추천자는 다음의 리스트를 참조하셔서 기존에 선정되지 않으신 분들 중에서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blogs.chosun.com/mblog/category/event

    • 김동주

      2016년 12월 19일 at 7:59 오후

      예쁜 엽서를 받고 인사가 늦었네요.
      감사합니다.

Leave a Reply

응답 취소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