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기적과 COVID-19 시대의 장례식

어머니께서 1년 남짓 송탄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입원 중 갑자기 크리스마스날 돌아가셨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저녁에는 함께 입원해 계신 고모님과 크리스마스 케익을 자르고 25년 전 다녀 오신 성지순례여행 비디오를 보시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셨다. 장남은 그 병원의 병원장이고 차남인 나는 의료진으로 있어 두 아들이 근무를 마치고 어머님과 고모님을 모시고 병실에서 조촐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크리스마스날 아침, 어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CT검사 결과 예상치 못한 혈관 내막이 찢어진 Aorta Dissection 이라고 한다. 보통 이런 경우 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머니는 5시간 동안 의식을 잃지 않으시고 연락을 받고 뒤늦게 온 가족들이 오는 대로 포옹을 하며 작별인사를 마치고 눈을 감으셨다. intubation(기도삽관)을 해서 말씀은 하시지 못하셨지만 메모지에 필담으로 의사 표시를 하고 자식들이 도착하는 대로 인지하시고 포옹을 유도하셨다는 것은 크리스마스의 기적 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증손녀 딸을 보시더니 할머니 지갑에 있는 돈은 증손녀 것이라며 유산까지 챙기셨다. 지방에서 올라 오느라 늦은 조카를 제외하곤 모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시자 어머니는 이제 그만 가시겠다는 의사표시를 필담으로 하셨다.  90 넘으신 노인네 필체같지 않게 맞춤법도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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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 직전 마지막 남기신 필담.

COVID-19시대에 장례식을 치루는 것은 큰 부담이다. 특히 요즘 요양병원이 취약지구로 주목을 받고 있어서 더욱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가족들끼리 논의해서 서울의 대형병원 장례식 대신 문상객 없이 요양병원에 있는 장례식장을 이용해서 가족끼리 조용히 지내기로 했다.
문상객을 공식적으로 맞이하지 않으니 좋은 점도 있다. 남의 이목을 의식해서 빈소를 필요 이상으로 치장을 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도 70을 앞 둔 상주들의 두 다리 무릎을 상하지 않고 장례를 마칠 수 있었다. 대신 휴대폰과 카톡이 불이 났다. 문상을 받지 않으니 통화라도 하자며 연락이 끊이지 않고 연락이 오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장례식장 측에서는 수의나 모든 단계에서 최상급을 권유했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 기준으로 결정했다. 영정사진도 예쁘게 장식할 수 있다고 제의했지만 우리는 어머님이 환자복을 입으셨지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런 표정을 하고 계신 사진을 선택했다.
우리는 직계가족끼리 장례를 치루기 때문에 발인도 까탈스런 절차를 따르지 않아도 되지만 장례식 의식을 담당한 직원은 여전히 유족들한테 주문하는게 많다. 운구행열 뒤로 가족들이 따라 가는것 조차 자연스럽게 하면 되지 왜 애들도 아닌 성인들을 두줄, 세줄로 따라 오라고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예식을 진행하던 습성이 배어 있는 것이다.

어머니-H[1]
하관예배는 주일이라 목사님을 모실 수 없어 집사인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매부가 예배를 인도하였다. 본인은 부족한 사람이 예배를 주관하게 되었다며 양해를 구하는데 아마 어머니 께서는 어느 유능한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예배 보다는 사랑하는 사위가 주도하는 예배에 더 만족하셨을 것 같다.
조문객을 받지 않는다고 공지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의 부담을 가진 문상객들이 온 것 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몇 달전 가까운 동창 몇 명이 떠났다. 그땐 문상 후 투명 플라스틱 칸막이가 쳐진 식탁에서 나 홀로 식사를 마치자 마자 쫓겨 나듯 장례식장을 나서야 되어 허전한 생각도 들었지만, 요즘 장례식은 유가족을 위한 것 보다는 문상을 온 친지들의 술자리를 마련해주는데 더 큰 비중이 실렸던 것도 사실이다.
입장이 바뀌고 보니 가족끼리 지낸다고 너무 형식을 무시한 성의없는 장례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비록 자의는 아니고 타의에 의해서 간소하게 장례를 지내고 보니 우리가 너무 형식에 치우친 관혼상제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친 김에 아이들의 결혼식도 나무 형식에 치우치지 않게 치룰 생각을 해 보아야 겠다.
뭣이 중헌디 . . . . . . .

결국 상주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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