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국보1호를잃어버렸습니다.슬프고안타깝기그지없습니다.
참담한화재중계를지켜보며불을끄지못한책임을누구에게따져묻기도한심하다는생각이들고요,
앞으로더는소중한문화재가불타는일이없어야겠습니다.
오래된목조건축물의화재시잘대응할수있는특별소방훈련도시급하다고생각됩니다.
언제다시숭례문의모습을볼수있을런지..
서울특별시중구남대문로4가에위치한조선초기한양의성문.
국보제1호.1396년(태조5)창건되어1448년(세종30)개축했다.조선왕조가도읍을한양으로정한뒤,정궁인경복궁의방향에의해남문인숭례문이정문이되었다.풍수지리에의해편액도다른문들과는달리세로로쓰여졌다.이는서울남쪽에있는조산(祖山)인관악산이북쪽의조산인북한산보다높고산의모양도불꽃이일렁이는듯하여관악산의화기를맞불로서꺾기위한것이며,오행에서남쪽을가리키는예(禮)를숭상한다는의미를담아숭례문이라이름했다.1934년일본이’남대문’으로문화재지정을했으나1996년에역사바로세우기사업의하나로일제가지정한문화재에대한재평가작업을하면서’숭례문’으로명칭을환원했다.앞면5칸,옆면2칸의2층건물인이문은화강석의무지개문을중앙에둔거대한석축위에세워져있으며,지붕은우진각지붕으로상하층모두가겹처마로되어있고사래끝에토수(吐首)를달았다.추녀마루에는잡상(雜像)과용두(龍頭)를두고,양성한용마루에는취두(鷲頭)를두었다.2층인이문의구조는위층의4모서리기둥이아래층까지내려와견고하게결구되었으며,위층중앙에는4개의고주를두었다.다포계형식의공포를얹은이문의위층은외삼출목,아래층은외이출목으로구성되어현재우리나라에남아있는다포계목조건축물중가장오래된것으로조선초기건축에서나타나는특징을잘보여준다.또1962년해체복원공사때발견된상량문(上樑文)은당시의건축생산체계와장인조직을밝히는데귀중한자료이다.현존하는성문중규모가가장크며조선초기다포계양식을대표하는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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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화재가난숭례문(崇禮門)은현재서울에남아있는목조건축물중가장오래된것이다.조선왕조가수립된직후인1395년(태조4년)에한성남쪽의목멱산(木覓山·남산)의성곽과만나는곳에짓기시작해1398년(태조7년)에완성됐으며이후500년동안몇차례의보수를거쳤다.현재남아있는건물은1447년(세종29년)에고쳐지은것이며,1961년부터1963년까지대규모해체·보수과정을거쳤다.
숭례문은서울도성을둘러싸고있던성곽의정문이지만도성남쪽에있는문이어서사람들은흔히남대문(南大門)이라불렀다.1406년(태종6년)에는명사신황엄이나주지역에갔다가서울로돌아올때"백관(百官)으로하여금숭례문밖에서영접하도록하였다"는기록이있다.이수광이쓴’지봉유설’에따르면숭례문현판글씨는태종의큰아들인양녕대군이썼다고한다.(-인터넷조선기사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