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다큐멘타리란자체가많은시간과인내를요하는작업이란걸전제하고라도,
이영화에서는롱테이크를많이썼다는감독의자랑아닌자랑도읽었는데..
생각만큼롱테이크장면이많지는않았다.이것역시우리지형적인한계이지싶기도하다.
그래도봄부터시작한장면이계절을넘어가는모습은아름답다.참아름답다.
단사계절이골고루영상에담기지는않았는데..겨울부분이거의안보였다는아쉬움도있고,
대부분의관객들이이영화를보면서눈물흘렸다고하는데,혹자는이정도다큐멘타리라면
티브이<인간극장>과별차이를못느끼겠다는의견도더러있는걸로안다.
그러나티브이가보여줄수있는한계라는것이있다.보다가실증나면언제라도채널을돌릴수있는
티브이와달리영화란시간과공간의유한성이비슷한이야기를보더라도더진지하게
집중적으로접하게하는효과가있는데,<워낭소리>에겐고마운꼭필요한설정이었다.
올해가소의해이고,작년한해우리는광우병과촛불시위로소와함께
전국민이몸살을앓았던기억도생생하고,
화면은진솔하고,아름답고,늙은소와늙은농부의노동으로일관된생애가눈물겹기도한데,
아조금아쉽다.더긴시간을두고더세밀히찍어두었더라면어땟을까?하는아쉬움.
영화를보는내내늘’아파아파!’하는할아버지가먼저돌아가시려나
걸음도제대로못걷는소가먼저쓰러지려나조바심냈는데..결국소가먼저죽는다.
-소멸되어지는것들의아름다움에대해생각하다.
이소가평균수명의두배가넘게살수있었던것이바로할아버지와함께한고된노동의
결과가아니었을까?오지의농사꾼이가진부지런함과우직함으로부지런히몸을움직이고,
말썽많은공장에서생산된사료가아닌,농약안친꼴만을베다먹이는할아버지의고집덕에
소가장수하고건강할수있었다는은근한주장도보이는데..
난어째아우슈비츠정문에써있다는,‘노동이너희를자유롭게하리라.’란말이떠오르는걸까?
영화내내과묵한할아버지대신할머니가나레이터처럼내뱉는이야기대부분이,
‘평생죽도록일만했다.나나저소나주인잘못만나이고생이다.’하는소리.
우리부모님세대대부분이이런힘든노동의삶을사신것이아닐까?
이런식의재래식농사도거의사라져가는현실이고영화속의우시장에서도일소는구하기
힘들단말도나온다.소를이용한농사자체가이젠사라지는것중의하나인것이다.
이영화를보고난내감상의가장큰것은눈으로보이는화면보다
보이지않는것-죽음,사라짐,소멸에대해많은생각을하게해준다는것이다.
묵묵히일만하다가죽음을맞는소나그소와너무도닮은늙은농부를보며,
이영화의진정한주제는바로죽음이아닐까?하는생각이들었다.
그만큼영화전반적으로죽음이,소멸의서글픔이진하게깔려있다.저최씨할아버지같이
우직하게근면하게농사를지으며살이가더는있을것인가?
영화가짧고,또아름다운영상물을보여주기위한이충렬감독의욕심으로의도적으로연출된듯한
이미지들이조금눈에거슬리긴하지만,
사라지는것의아름다움과소멸의엄숙함에대해곰곰생각하게해준<워낭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