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눈에는악마가/루스랜덜장편소설/황금가지
루스랜덜의이추리소설은단순히재미난읽을거리로서의추리소설(미스테리)이아니라
그냥소설이라불려도손색이없을정도로세부적인묘사가뛰어나다.
1976년에출간된이책을이제야읽는데..30년을넘는시간차에도그당시의영국하류층
모습이아주생생하게묘사되어있다.가난한사람들이사는낡은다가구임대주택과
한건물에사는세입자들의모습이영화를보듯이미지가또렷하고,
그러면서전혀시대차를못느끼게한다.단인터넷이보급되기전이라소설속에선
주인공인앤서니가유부녀와금지된사랑을편지로주고받는다는것과이임대주택엔다섯
가구가공동으로복도에비치된한대의전화기를사용한다는것이그래서연인들의
의사소통에도시간이걸리고,비슷한이름때문에개인적인편지가다른사람에게전달되기도
한다는것등이가장두드러진차이점이다.
그리고이소설에는요즘화제가되고있는사이코패스의원형같은인물이나온다.
바로이낡고초라한건물의최초의세입자이자집주인의동창이기도한아서존슨으로
어느날비슷한이름인앤서니존슨이이사오면서두사람의삶이서로얽혀들어가게된다.
이책에선아서를정신병질자라고표현하고있는데,정신병자와정신병질자는분명다르다.
내가알고있기로는정신병자라함은자기행동을인지못하는상태의경우로,
그래서행동(범죄)에대한책임을질수없는환자를가르키는말이고,
정신병질자(사이코패스)는자기행동을인지하고사회생활도적당히해나가지만,
도덕심이결여되어있는이상성격자인사람을가르킨다.
(이것이사실은그경계가좀모호하긴하다.)
이책의연쇄살인범인아서존슨의경우는그래도최근의우리사회의사이코패스로알려진
연쇄살인범강호순과는조금다르다.
물론일상적인생활,외부에보이는자기자신의이미지는잘통제해나가는편이지만,
극도의편집증적증세를보이는아서는인간관계에있어서도극히민감한반응을보이고,
사회적인인간관계도지극히편협한상태이다.
(특히여성과의성적인관계뿐아니라일상적인친분관계조차전혀이루어지지않는다.)
내가이책을읽으면서저절로강호순을떠올리게된것은여기주인공연쇄살인범아서의
살해방법이강호순과똑같기때문이다.아서는길에서우연히마주친여성들을뒤따라가
목졸라살해한다.소설의도입부에아서가지하실에다여자마네킹을가져다놓고,
마네킹을목을조르는이상행위를보여준다.
(아서에게는목조르기가가장속시원한이탈행위이고,이사람을대신한마네킹이있는동안은
살인도안한다.아서에겐그대상이마네킹이었던살아있는여성이었던별차이가없고,
목을조른다는행위자체에매료된것으로보여진다.)
아서란인물은태어나자마자생모에게버림받고독신인이모손에길러졌다.
이이모란인물이지나치게엄격한성격으로모가많이난사람이다.
조카를사랑으로길렀다기보다는,미혼모인동생의아이를돈으로사서
자기삶의외로움을달래려고(애완동물을키우듯이)키운것이다.
생모에게서버림받은것이나억압적이고가학적인성향의이모밑에서자란것이
아서란내성적이고마음약한인물을정신병질자로몰고간것이고,
아서가살인을하게되는동기도좌절감의탈출구로말하자면극도의정신적인긴장감을
해소시키는방법으로택한것이다.
이렇게보면약한여성을유인목졸라죽인다는비슷한유형의연쇄살인범이라도
소설속의불행한삶을사는아서보다강호순이훨씬악한인간이다.아서의경우비참한
출생의내력이라든지그존재감을초라하게짓눌려놓은이모의가혹한양육방식,그에따른
혼자남은아서의폐쇄적이고비굴한삶에는연민까지도느낄수가있는데,
강호순은오로지쾌락만을위한살인을한경우이기때문에동정의여지도없는살인마이다.
루스랜덜은1960년대이후의영국사회에대해분노와좌절을느꼈다고했다.
그리고그분노와좌절을소설속에담아냈다.
내가느끼기론분노와좌절은1960년대뿐이아니라오늘날,우리사회에도팽배해있는감정이다.
시위나범죄,정신병질자는다이사회,현실이주는좌절,분노에서유발되는건데..
화염병을던지는사람의심리를생각해보면그렇다.
예전과다르게이런좌절이나분노도현실적인것보다는심리적인부분이더크다는것이
지금21세기의문제인것같기도하고,
…수수께기와같은단서와실마리만풍성한이전방식의추리소설은,아직도그런추리소설이있다면
확실히없어져야합니다.이제추리소설은주인공이이끌어가는이야기이상이어야합니다.우리가
살고있는세상을고찰할수있는소설이어야할것입니다.
-루스랜덜의1996년’아이리쉬타임즈’와의인터뷰에서
RuthRendell
그래서강호순은사이코패스가아니다!
그런데이책을읽으면서느낀것은정말강호순이사이코패스인것일까?하는것!
내생각으론강호순은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그냥성도착적인연쇄살인범인것같다.
물론도덕적인불감증이란면에서는사이코패스적인기질이다분하지만,그외의일상생활을
너무나태연하게해낸것을보면강호순이진짜사이코패스일까?하는의구심이생긴다
여기이소설의주인공인아서는극도의신경증적인생활태도를보이고,
대인관계나이성과의관계형성도제대로안될뿐만아니라늘조바심내고,
폐쇄적인데다가사소한일상에집착하는등의모습을보이는데반해,
강호순이범행은우발적인데다가,일상생활도지극히평이하게해나갔고,
온갖방법을동원해보험료를타낸것등을볼때내생각으론강호순은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도덕심이결여된지능적인성도착형범죄자로분류하는게옳은것같다.
난아주어려서부터범죄를다룬추리소설에중독되다시피한사람이고,
정말국내에출간되어진추리소설은거의다읽었다고해도과언이아닌데..
추리소설에매료되다보니까범죄를다룬인문사회학서적까지도더러눈에띄는대로읽었는데,
내기준으로보면강호순은대단히센세이셔널한연쇄살인마일순있어도사이코패스는아니란거다.
대부분의연쇄살인범이나사이코패스라고불리우는사람들이보통평균이상의지능을가지고있다.
보험료를여러군데서요령껏타낸것을보면강호순의지능도평균이상은되라라짐작이되지만,
그범행이치밀하거나하지도않고,우발적인데다가뻔뻔하기도한데,
이것을사이코패스로분류하기전에사실강호순이대단한지능범도아니면서다수의살인을저지른데는
우리경찰력의한계내지는범죄수사의헛점이더문제인것같다.
사이코패스란말이유행어처럼번져가고,강호순이스타아닌스타로떠오르는걸보는내시각은
답답함을느낀다.사회가성숙되길바라고,범죄를분석하는일도이것을기사화하는것도
좀더성숙된시각이필요하다.어제또강호순은다른범죄를고백했는데,
이런행동만봐도강호순이란인간이얼마나영악한범죄자인가하는걸알수있다.
범죄를통해서라도자기자신에대한사회적인관심을끌어올리고,자기존재의중요성을부각시키려
하는것이나자서전을출판하겠다는의사같은걸보면,
더구나강호순이검거된가장큰증거가감시카메라에찍힌것인데,이것도사실돈에큰아쉬움도없는
그가일부러살해된여대생의카드로적은액수를인출한듯한인상이깊다.
(자기범죄행위에대한자부심이랄까?자랑같은것이다.)
강호순이감시카메라앞에서이돈을빼지않았다면이나마의증거도없었을테고,
경찰의연쇄살인범검거도어려웠을거고,자백을이끌어낸형사의노고는인정하지만,
이것도강호순이헛점을일부러(?)드러냈기에가능한일이아니었던지?
이런저런앞뒤상황을분석해보면강호순은교활한성도착형지능범이지.사이코패스가아니다.
그는뻔뻔한연쇄살인마일지는몰라도결코사이코패스는아닌것같다는게내결론이다.
내눈에는악마가
저자
루스렌들
출판사
황금가지(2005년03월15일)
카테고리
국내도서>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