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能弘道 非道弘人 -김노경의 묘터를 찾으며

우리일행이옥녀봉을오른것은옥녀봉중턱검단에자리잡은추사의부친김노경의묘터를보기위해서였다.

봄산은어찌이리눈물겹게고운것일까.

김노경과추사를비롯한선인들이앞서걸었던길을우리일행도발자욱새기며따라걸었다.

가파르고좁은산길엔파릇한어린잎이생명의싹을내밀며웃는다.

계곡가득봄이다.생명이다.산이살아있구나!마음이신선해진다.

돌무께마을의<과지초당>에서한시간정도가파른산길을오른곳,여기가김노경의묘터이다.추사의부친이었던김노경,죽어서까지도멀리임금님이계신도성을바라보는자리에묘터를잡았는데,그말년은관직에서완전추탈된상태라(죄인이라)묘비하나세우지못했던것.묘비조차세울수없었던당시의추사일가를생각하면쓸쓸함이봄눈처럼마음을시리게한다.

후일사후복권되고나서관은본가가있는충남예산으로이장했단다.

묘터아래추사가부친의묘를지켜며3년시묘살이를했을것이라고짐작되는자리이다.

김노경묘터뒤에서잠시숨을고르는허홍희학예관(추사전문가),’여기묘비하나만있었더라면..’

*김노경(金魯敬,1766~1837)은조선후기의문신으로,자는可一,호는酉當이다.그는영조의부마였던월성위한신의손자로서음사로관직에나가대사헌을거쳐판의금부사등요직을두루거쳤다.

아침에<추사김정희家의’家禍’와’윤상도옥사’>-안외순(이화여대)의긴논문을읽었다.

탄핵과상소문으로이어진조선후기의정치행태를읽어내려가면서,추사일가에게내려진정치적인탄핵은사실명분도뚜렷하지않은것들이었는데..어쩌면이렇게철저하게한집안을망가트렸을까..안타깝기그지없다.추사일가도일가지만,당시의임금님들순조,헌종,철종임금들은그끊임없는탄핵,상소문들을어찌견디셨을까?추사일가가탄핵받아야만했던진짜원인은중국(청나라)과가까웠다는데있었단다.당시김노경일가의학문과명성이중국에까지알려져있었는데,그명성과연이가화의원인이었다니!

이논문의끝맺음말이人能弘道非道弘人이다.

그뜻을찾아보았다.

“사람이도를넓힐수있는것이지(人能弘道인능홍도),도로써사람을넓히는것은아니다(非道弘人비도홍인)”.(위영공,476).

공자께서말씀하셨다.
“사람이道(도)를넓히는것이다.道(도)가사람을넓히는것이아니다.”
이것은인간을떠나서도가있을수없고,도를떠나서인간이존재할수없는것처럼,
도와인간은불가분리(不可分離)의관계에놓여있으나,그실천의측면에서말하면인
간의행위를통해서도가실현되는것임을강조한것이다.

자기가어떤지위에오르고싶다고생각하면먼저남을그자리에세우려는마음가짐이필요하며,또내가이루고싶은것을먼저남이이루도록하여내가갖고싶은것을먼저남이얻도록해주라는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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