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로의 초대-조정권(제4회 목월상 수상작)

고요로의초대

조정권

잔디는그냥밟고마당으로들어오세요열쇠는현관문손잡이위쪽

담쟁이넝쿨로덮인돌벽틈새를더듬어보시구요키를꽂기전조그맣게

노크하셔야합니다적막이옷매무새라도고치고마중나올수있게

대접할만한건없지만벽난로옆을보면

오랫동안사용하지않은장작이보일거예요그옆에는

낡았지만아주오래된흔들의자

찬장에는옛그리스문양이새겨진그릇들

달빛과모기와먼지들이소찬을벌인지도오래되었답니다

방마다문을,커튼을,창을활짝열어젖히고

쉬세요쉬세요쉬세요이집에서는바람에날려온가랑잎도손님이랍니다.

많은집에초대를해봤지만나는

문간에서있는나를

하인(下人)처럼정중하게마중나가는것이다

안녕하세요안으로들어오십시오

그무거운머리는이리주시고요

그헐벗은두손도.

-이시는쉽게읽힌다.눈으로읽어도잘읽히고소리를내어읽어도좋다.

우리는시인이초대하는고요-적막의집으로들어간다.그럴듯한담쟁이넝쿨과벽난로와흔들의자가있는집안에서편안히조용히쉬라고강조하지만,그쉬는이는결국시를읽는손님이아닌시인의머리-정신세계이다.시인은문간에서있는자신을(자신의무겁고,헐벗은실체를)고요의세계속으로들여놓는다.결국자신의몸과정신을나눠서초대하는이야기이지만,마지막몇줄을읽기전까지는시를읽는이가바로초대받는듯한설레임과가볍고달콤한유혹이있다.시인은결국자신만의하인이되어고요-고독속으로들어간다.무언극의한장면을보는듯한이시가난재미있고인상적으로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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