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돌을 내리누르듯이-고선사지 삼층석탑

탑이어디서시작되었나?아침엔이것부터공부했다.물론오래전에배웠던이야기는그사이다흐미해져버렸으니말이다.아주간단하게줄여서말하면탑이란부처님의진신사리를안장하고불자들의불심을집중시키기위해서사원(절)의한가운데세운건축물을가리킨다.

돌속에선한마음들이들어가있다.

아니거대한돌덩이만큼온화한마음들이서로지긋이내리누르면서,또서로따뜻하게껴안고있구나!

내가고선사지삼층석탑을대하고느꼈던첫인상이다.작년에보았던비슷한시대에비슷한양식으로만들어진감은사지삼층석탑과는또다른느낌이다.감은사지에서는석탑보다는문무대왕에대한생각을많이했었다.그런데이고선사지삼층석탑은오로지석탑이자체만을마음과기억에담았다.

해저물기직전의부드러운빛이삼층석탑을감싸고있어거대한석탑이따뜻하게느껴진다.

돌이부드럽다.그러면서당당한자태는가슴이뭉클해지는감동도준다.

나는불자도아니고,불교에대해서도잘모른다.하지만우리문화와한국인의정체성에대한인지를하기위해선,불교의기본정신에대해서알고는시작해야한다.늘마음만공부해야지해야지하면서화엄경공부도등록해놓고단이틀출석하고말았을정도이니..나는공부하는버릇이여지껏이모양이다.포슽만들기위해서<고선사지삼층석탑>과불탑에대해벼락치기공부를한다.오늘도또이렇다.하지만잊지않고있는것은이탑을보았을때의감동,황홀함이다.

탑은웅장한몸체에군데군데파손되어있기도했지만,전혀전제적이라거나위압감을주진않는다.탑이크고넓고따뜻하다.넉넉하고무량한마음이다.

부처가되었든,이고선사의주지였던원효대사가되었던,아니면이돌탑을쌓은불자들의간절한신심이되었든,그시대석공들의노고가되었든간에장방형의크고넓은돌뭉치들은또하나모난돌덩이같은나를너그럽게내리누르면서,겸손해지거라,부드럽게살거라.누군가에게위로가되는사람이되거라.그보다는먼저스스로를위로할줄아는사람이되거라.돌이돌을내리누르면서,고선사지삼층석탑은그넉넉한품으로나를이렇게다둑이며안아주었다.

이목잘린돌거북은서당화상(원효대사)비의비신을받치고있었던비좌(비석받침대)이다.서당화상비의비신(碑身)은깨어진채로발견됐지만,그비석의받침돌인돌거북(귀부(龜趺)은수몰전고선사터에남이있다가석탑과같이경주박물관으로옮겨졌단다.비록목이잘려나갔지만돌거북은여전히생생한형상으로옛석공의솜씨를보여준다.

고선사의주춧돌들과눈사람같은내그림자.

국보제38호
경주고선사지삼층석탑(慶州高仙寺址三層石塔)
지정(등록)일1962.12.20
소재지:경북경주시인왕동76국립경주박물관
시대:통일신라

원효대사가주지로있었던고선사의옛터에세워져있던탑으로,덕동댐건설로인해절터가물에잠기게되자1975년에지금의자리인국립경주박물관으로옮겨세워놓았다.탑은2단의기단(基壇)위에3층의탑신(塔身)을쌓아놓은모습인데,통일신라시대석탑양식의전형적인형태이다.

기단은여러개의돌로구성하였으며,각면에는기둥모양을새겨놓았다.탑신도여러개의돌을조립식으로짜맞추었으나,3층몸돌만은하나의돌로이루어져있다.이는사리장치를넣어둘공간을마련하기위한배려로,석탑을해체하여복원하면서밝혀졌다.지붕돌은윗면에완만한경사가흐르는데,아래로미끄러지는네귀퉁이에서또렷이들려있어경쾌함을더해주고있다.밑면에는계단모양으로5단의받침을새겨놓았다.

통일신라시대전기인7세기후반에세워졌을것으로추측되며,전형적인석탑양식으로옮겨지는초기과정을잘보여주고있다.이러한양식은이탑과함께경주감은사지동ㆍ서삼층석탑(국보제112호)에서시작되어이후경주불국사삼층석탑(국보제21호)에서그절정을이루게된다.(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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