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자른 봄날

십년만에미장원엘다녀왔다.

내가살아가는방법은그렇다.정규직으로근무하는건질색인사람이고,생활비는필요하고,소극적이고우유부단한성격에남은건알량한자존심과남들보기엔기이한자신감뿐.

최대한검소하게살아가는버릇이다보니비싼화장품은사본적도없거니와어디가서맛사지한번피부관리한번받아본적이없다.내또래들이필수적으로사용하는아이크림도선물받아한두차례써본게다다.그래서우울하냐면그렇지도않다.나는나내스타일이란게있고,나란존재에대한자긍심도있으니까.때론이자긍심이건방으로오해받는일도종종있는데,이해시키려애쓰지않는다.상대방을파악하고이해하는것도그사람의역량이다.설명한다고해서시각차가바뀌진않는다.

알량한수입에길고양이를돌보다보니오늘도아침부터고양이사료주문할일로끙끙대고있다.내고물자전거가너무너무아슬아슬해서이거분명조만간사고날거야..바퀴가터지던지,아니면브레이크가말을안듣던지.브레이크가한쪽이망가진상태로계속타고있으니까..

그러다가맘에드는중고자전거를보고는걍저질렀다.알루미늄자전거라가벼워서비탈길오를때힘이좀덜들겠구나.양쪽브레이크멀쩡하고,바퀴멀쩡하고,뒷짐받이가없는데..그건못쓰는자전거에서하나떼다달으면되고,"이자전거얼마예요?""이거십만원에누가사겠다고한건데..""그분한테는이비슷한거있으면그걸구해주시구요.이자전거는저한테파세요."어거지로샀다.그러면서지금당장돈이없으니돈은나중에드리겠다고했다.이무슨배짱이얍!외상으로마구잡이내걸로만들어버린것.십만원은나중에고민하자.정안되면자전거를도로돌려주는방법도있으니까…

안양으로머리자르러갔다.

그전에해인이엄마를오랜만에만났더니,(바로지난달해인이는동숭동서울의대기숙사에입소했다.)상큼한단발머리가보기좋다."그머리어디서잘랐어?""이거울조카가소개해줘서강남에가서자른건데,머리잘잘랐단소리많이들었어.해인이데리고조만간한번더갈건데,같이갈래?"거긴25000원이란다.울동네서사람들이젤많이가는박철헤어커커의팀장한데머리자르는건3만원이고,으와,내수준엔다비싸다.(십년넘게미용실을간일이없으니솔직히요즘미용실서머리만지는값이얼마인지도모르는나다)

이런이야기를영주씨한테하니까,

"우리동네미장원으로와.내십년단골미용실인데,머리도잘자르고가격도싸.커트는만원,파머는3만원이야."

이래서안양까지간거다.

내머리카락은가늘고힘이없어서파머는엄두를못낸다.만약파머를하려면남들보다훨비싼값을내고해야만하는머리이다.그래파머는생각도못하고머리자르는것도늘집에서내가잘랐다.

그런데미용사가깜짝놀란다.

"직접자르신거맞아요?커트넘자연스럽게잘자르시네요.왠만한미용사보다솜씨가좋으세요."

칭찬에헤벌쩍.

"그런데이머리파머하시려면ㅇㅇㅇ파머로하셔야하는데요.."

요즘은파머종류도많아서정확한이름이뭔지는잊어버렸는데..암튼가볍고머리칼손상이덜가는걸로해야하고,그파머는8만원이란다.당근안한다.영주씨야내가10년만에파머를한다면자기가파머비용을내겠다고했지만,그렇게하면안되지.그냥커트만해달라고했다.

미용사는그간많이자란머리를한뼘정도는쓱쓱자르고전기고데기로뒷손질까지해준다.

십년만에미장원에와서머리손질을하고나니거울속의내가다른사람처럼보인다.

좀더여성스러워보인달지..내가봐도예뻐보인다.아,이래서여자들이미용실을드나드는구나!

"내일결혼식갈일이있는데,이머리모양흐트러지지않게하려면낼은머리를감지말고나가야겠네."

정말이다.십년만에미용사가만져준머리.고데기로말은우아한웨이브가흐트러질까봐하룻밤잠잔그대로머리를감지않은채외출.압구정성당이명수시인장남결혼식에참석했고,내킨김에후배들만나러인사동까지건너가돌아다녔다.

짧아진머리칼에스치는바람이가볍다.창밖은후르르봄이다.

조용필-창밖의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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