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후/이태준/시대의 비극과 열정을 읽다

1년365일하루도빼지않고늘온갖잡다한책들을읽고있는활자중독자인나지만,말로만듣던,백과사전정도의상식뿐인작가의중단편집을읽는다는것은예상보다지난한시간이걸리는독서였다.일단요즘엔거의씌여지지않는단어들이나형용사사투리들이섞여있고,모르는단어가나오면사전찾아보고..이렇게한문장문장을새겨가며읽으려니읽는속도도안나고부지런히읽었음에도결국일주일이꼬박걸리고말았다.책을읽는다는건맨앞표지부터맨끝에작가연보와뒷표지까지책이담은모든활자를다읽는다는것인데,내가이름과작품제목이나몇개알고,<수연산방>이멋지다는소문만알뿐,부끄럽게도아직한편도읽어보지못했던작가이태준.그래서문장한줄한줄을새김질하며읽은,23편의단편소설과중편소설<농토>그리고7편의동화.

시대의비극과열정을서정적으로녹여낸소설들

이책에실린작품들중어느한작품인상적이지않은것이없으나,이중내가좀더인상적으로읽었던작품은낚시에대한추억과웅덩이로돌을안아다나르는노파에대한단편<무연無然>,함경도사투리가많이나오는<바다>,경주를배경으로한모던하고아련한로맨스<석양>,표제작인<해방전후>,읽다가너무힘들어서..지주와일제의횡포에끝없이착취당하는억쇠네가족의비참한처지가마음아파서..허덕거렸던<농토>다.펄벅여사의<대지>는흉년기근이라는자연재해에서빚어지는참담한상황이라면<농토>의경우는착취자와피착쥐자,인간성에대한묘사가더예리하고강도도세다.

외조부께서는’담금질’이라고,앉아서하는낚시질만다니셨다.내가몇번따라가본데는쇠치망이라는데다.동네앞을지나내려오는약간흐린개울물과금학산깊은산골짜기에서부터칠송정이니선비소니여러소를이루며흘러내려오는,차고맑은하내천이합수되는데다,석벽밑은아무리가뭄때라도바닥이들여다보이지않는다.이시미가나와소를잡아먹어쇠치망이란이름이생겼다는데로,고기도흐린물것과맑은물것이다모이는데다,싯누런붕어도있고,무지개처럼오색이영롱한무당치리로있고,은비늘에청옥빛이도는참마자떼와검고가시는세나맑은물고기중에서도제일급인꺽지도있다.비가오는때거나비가든직후여서물이붉은때에는지렁이미끼로붕어와드럭마자와미어기를잡는것이요.물이맑아지면어울담에서돌미끼를잡아참마자와꺽지를낚는것이다.…내가갑갑해하는눈치면외조부께서는낚시는담가놓은채로나를이끌고원두막으로가셨다.참외는진흙밭에서아침이슬에딴백사과였다.희고둥글고홈마다푸른줄이진것인데배꼽을따면불그스름한것은무르익은표였다.요즘멜론을연상시키는향기와단맛인데그연삭삭한맛은멜론이당치못할것이다.

그러나나는외조부님보다는외삼촌들을따라다니기가즐거웠다…장마뒤면가끔호화스러운무당치리가끌려나온다.은어비슷하게생긴것으로등은검으나몸은푸른바탕에붉은빛이거칠게죽죽그어졌다.배에는약간누른빛까지돌아여울놀이에서는가장유쾌한꽃고기다.가뭄때에는이보다맑고기름지기는더한갈베리,날베리들이물린다.선비소에서부터진소까지오리도못되는데를내려가는동안,두사발들이족댕이가차버리는것이항용이다.낚시를물만한놈이면적어도찌뽐짜리에서부터굵은놈은거의한자에이르는놈이간혹있다.-무연/325-326

글을쓴다는것은자기가알고경험한일은토대로하란문장강화의예로올려도될성싶은,글속의정경이눈에잡힐듯묘사되어있다.일제강점기초반이어서일까?작가가어렸을적의시골풍경이어떠했었는지,낚시하는풍경이서정적이면서도세밀하다.

읽다가이페이지는접어두고책을끝까지읽고나서작가의고향인강원도철원군묘장면산명리지도검색까지해봤다.물론소설속의화자가어린시절외할아버지와외삼촌들을따라다녔던깊은소나여울들은어른이되어찾아가니동척(동양척식주식회사)이길을내느라메워져버렸고,웅덩이가되어버렸다고했지만,그래도저행복한풍경의작은흔적이라도보고싶었다.낚시라곤망둥이두어마리낚아본게전부인나지만,소설속의풍경이그리워져서심지어철원쪽이라면방세도싸겠지?이런저런몽상까지도들척였다.그리고아침에월간조선에실렸던<월북작가이태준의비극적인가족사>란글도찾아읽었다.1946년월북한후52년부터사상적검토를당하고56년숙청되어지방지의교정원으로배치되었을때,이태준의가족들이당한수난은말할것도없고,그좋아하는낚시도할수없었단이야기가나오는데뭉클했다.

작가가글도못쓰게하지만,쉬는날이래도낚시조차맘대로갈수없는사회.강제이혼당하고아이까지뺏앗겨야했던이태준의딸들..

‘담금질’이란말그대로낚싯대를드리우고앉아서기다리는낚시일것이리라짐작이되지만,’어울담”이시미”미어기”드럭마자’는무엇일까?찾아보니*‘미어기’는메기,’이시미’는이무기,강원도방언이다.

"퍽니힐허지않아요?"
"니힐!"
오릉의아름다움은이처녀가발견한이소나무의중턱에서가가장효과적인포즈일것같았다.볼수록그윽함에사무치게한다.능이라기엔너무나소박한그냥흙의모음이다.무덤이라기엔선에너무나애착이간다.무지개가솟듯땅에서일어땅으로잠긴선들이면서무궁한공간으로흘러간맛이다.매아미소리가오되고요하다,고요히바라보면울어야할지탄식해야할지그냥나중엔멍-해지고만다.니힐을형용사로쓰는수밖에없을것이다.
"여기능들이모다이렇소?"
"괘릉무열왕릉다가봐도이런맛은여기뿐인가봐요."
-석양/298

경주다시가야겠다.오릉의니힐을공유하고싶은마음이굴뚝같아지는,

차에서내려몇걸음옮기지못하고둘이는우뚝서버린것이다.절이라기엔너무나목가적인서정이무르녹았다.청운교,백운교흐르는듯한돌층계에는곧무희라도나타나춤추며내려올듯하다.
"전여기옴저돌층계를오르락내리락허는게젤좋아요!신라여자들은어떤신발이었을까?"
-석양/307

나역시도신라여자들은어떤신발이었을까궁금하다.경주박물관에서신발을보았던가?기억이안나는걸보면제대로못본것이다.

현의생각에일본인작가들의행동이야말로이해하기에곤란하였다.한때는유종열같은사람은,’동포여군국주의를버리라.약한자를학대하는것은일본의명예가아니다.끝까지이인륜을유린할때는세계가일본의적이될것이니그때는망하는것이조선이아니라일본이아닐것인가?’하고외치었고,한때는히틀러가조국이없는유태인들을추방하고,진시황처럼번문욕례를빙자해철학문학을불지를때이것에제법항의를결의한문화인들이일본에도있지않았는가?그들은지금무엇을하고찍소리도없는것인가?조선인이나만주인의경우보다는그래도조국이나저희동족에의진정한사랑과의견을외칠만한자유와의무는남아있지않을것인가?진정한문화인의양심이아직일본에있다면…-해방전후/365

<해방전후>는’한작가의수기’라는부제가붙은소설이고,제목대로해방전후의한국예술가들의사상적갈림과조선작가연맹의움직임이르포나수기형식으로생생하게묘사된작품이다.자력으로쟁취한독립이아니라외세에의해이루진독립이란것.이독립을지켜나가기위해서어느방향으로가는것이옳은지하는작가를비롯한당시대인들의고뇌와갈등이그대로그려져있다.

단편23편을다읽을때까지만해도,인상적인문장이있는페이지마다늘하던대로3엠시트에페이지넘버와키워드를메모해붙여나갔었다.그러다중편인<농토>를읽기시작하면서는보시다시피책에직접줄을긋기시작(이건도서관책이아니라내책이니까!)

소근거림과귀여움은흙에서솟는푸샛것들만도아니었다.하루억쇠는나릿님의술안주로물고기사냥을나섰다.점둥이네반두를얻어가지고앞개울서부터돌을들추며척바위골로올라왔다.

물에는송홧가루가미숫가루뜨듯했다.가만히반두를대고돌을들추면버들치와날메리아니면가재한두마리라도나온다.아씨께서봄가재는지지면자기낭자에꽂힌산호뒤꽂이처럼붉은것이곱거니와국물이달아입맛이난다했다.

..진달래는한물이울어물에도낙화가떠내려오는데양지짝산기숲의나무끝마다에는솟는것이아니라하늘에서뿌리는것처럼반짝이는속잎들은어찌보면잔잔한물결도같다.새끼친멧새들이쫑쫑거리고그연둣빛파도를잠겼다떴다하며난다.-농토/147

시들방귀같은수작그만두래라!-농토/443

..논밭에서난곡식은그만두고내몸에달린모가지도내것이랄수없이백성들의권리란극도로박탈되어있었다.소작료건내몫엣거건곡식이란곡식은지주와의문제가아니라나라와의문제로서,벼만이아니라밀이든좁쌀이든무슨잡곡이든일단면소에서칼자루들을앞세우고나와제해처럼거둬가는것이었다.우선감자나고구마를먹게하더니논바닥에거름이나하는콩깻묵을먹으라고배급이나왔다.짚은비가새는이엉도못해잇는다.가마니짜서바쳐라,관솔을해다바치어라,머루덩굴을걷어다바치어라,피마자를,살구씨를,참나무껍질을,놋그릇을,소를개를잡아껍질을,그리고머리를’마루가리’를해라,각반을쳐라,’몸빼’를입어라,잠꼬대까지국어(일본어)로안하면비국민이다,너는지원병이다,너는학병이다,너는징용이다,너는보국대다,너는결방단이다,너는반공감시추원이다,이바람에안손이없는억쇠내는농사는커녕나오라는무슨회니무슨연습이니에나갈손포가없거니와몇가지세금,몇가지저금,몇가지채권이것을감당할도리가없고이것이밀리면동네이사장이나면장의미움을사고그들의미움을사면보국대니징용이니하고북해도나남양으로남보다먼저끌려나간다.-농토/482

문장의리듬과강약이판소리한대목을듣는듯하다!

책사진찍은것도못찾겠어서결국다시찍었다.책을받자마자바로사진찍어둔것같은데..

596페이지나되는책을꼼꼼이읽느라힘들었다.한스토리로죽연결되는장편소설과달리단편소설은하나하나가독립된작품이라평소처럼쓱쓱책장을넘길수가없다.책한권을읽는데꼬박일주일이란시간이걸린것도처음이다.그래도읽고난소감은왜이제서야이태준의작품집을읽었을까.조금만더신경썼더라면진작에읽었을것을..후회도된다.이태준을안읽고어찌한국근현대문학을말할수있을까.그러면서작가이태준이월북을한것이그의개인적인비극을넘어우리문학사에얼마나큰손실이었나하는것까지느꼈다.읽는데힘은들었지만,지금의청소년들은누구라도쉽게접하는작품들이란것이감사하고부러운한편나자랄때는월북작가란딱지때문에읽어볼기회조차없었던것이아쉽다.

여자는..머리는틀어올리었고저고리는노르스름한명줏빛인데고동색스웨터를,아이업듯,두소매는앞으로늘어뜨리고등에만걸치었을뿐,꽤날씬한허리아래엔옥색치맛자락이부드러운물결처럼가벼운주름살을일으켰다.빨간단풍잎하나를들었을뿐,고요한아침산보인듯하다.

‘누굴까?’

그는장정고운신간서에서처럼호기심이일어났다.가까이축대아래로지나가는것을보니새양봉투같은깨끗한이마에눈결은뉘어쓴영어글씨같이차근하다.까마귀/28-29

이시대의교양있는여성의외모가어떠했던지보여주는아름다운문장이다.여자가바로내눈앞을지나가는듯하고,’새양봉투같은이마”뉘어쓴영어글씨같은눈결’이란다!시적이면서도그시대의아름다움에대한세밀한묘사.

이광수와김동인김유정이효석의소설들을두루루읽어댄것이내사춘기시절이었으니,사실이소설들을지금와다시읽는다면다른느낌으로다가오리라싶기도하고,마찬가지로내가사춘기시절에이태석을읽었다면어떻게받아들였을까?이것역시궁금하다.아마<코스모스피는정원>의서정성부터감동으로끌어안았겠지..

학창시절문학소녀들모아서열정적으로월보만들기를지도하던문학담당선생님들(시인,소설가셨던)들은어린(중학생)내게방과후선생님책상에감춰둔김지하의’오적’을읽도록해주셨고,신동엽의’금강’은꼭읽어보도록하라는언질을주셨지만,이태준에대해선전혀언급이없으셨다.시가아니라소설이어서였을까?월북한작가여서였을까?

해방전후-이태준중단편전집2 저자 이태준 출판사 애플북스(2014년09월22일) 카테고리 국내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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